<별에서 온 그대> 흥행 성공 이후에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드라마가 줄을 잇고 있다. 작은 사진은 현실적 스토리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이런 고민과 불평을 뒤로하고 내년 초 방송되는 드라마의 면면을 보면 소재가 겹치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빈 측과 캐스팅을 놓고 한바탕 설전을 치른 <킬미 힐미>는 이승기의 품에 안기는 모양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다중인격장애(DID)’를 겪는 인물이다. 무려 7개의 인격을 갖고 있다.
<킬미 힐미>를 뒤로한 현빈이 <시크릿 가든> 이후 오랜만에 선택한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 역시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고전에서 이름을 빌려온 것에서 알 수 있듯 이중인격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다. 현빈은 극중 나쁜 남자 지킬과 착한 남자 하이드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재벌을 연기한다.
<별에서 온 그대>의 히어로인 김수현이 차기작으로 검토하고 있는 <닥터 프랑켄슈타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뛰어난 의술을 지녔으나 냉혈한에 가까운 의사가 사랑하는 여인과 만난 후 따뜻한 인간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능력도 빼먹을 수 없는 소재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지구인을 뛰어넘는 엄청난 힘과 공간이동, 시간정지 등의 능력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하며 보여줬던 판타지가 여심을 흔들며 드라마의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도 일맥상통한다.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곤경에 빠진 여주인공에게 큰 도움을 주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어설픈 모방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성공을 거두자 분노하면 온 몸에 칼이 돋아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아이언맨>이 제작됐다. 방송 내내 혹평에 시달리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서 하늘을 나는 장면까지 삽입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려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3%대 시청률로 곤두박질쳤고 무리하게 억지 설정을 한 드라마의 운명을 보여주는 안 좋은 예가 되고 말았다.
<아이어맨>의 한 장면(위)과 <닥터 프로스트> 포스터.
이는 tvN 드라마 <미생>과 같이 현실에 발붙인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역행하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집필했던 박혜련 작가는 12일 첫 선을 보인 SBS <피노키오>에서 거짓말을 하면 재채기를 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설정을 가미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문을 사실로 만들고, 선량한 이들을 가해자로 만드는 언론의 허점을 꼬집으며 지난 4월 세월호 사태 이후 팽배한 언론에 대한 불신을 현실감 있게 파헤쳐 방송 초반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SBS 드라마국 관계자는 “대중의 입맛은 쉽게 변하고 트렌드도 생명력이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작품이 성공하면 아류작이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며 “남들을 쫓으려고만 한다면 성공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런 ‘뒷북 기획’이 연이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일부 스타들의 편협한 사고가 한몫한다”고 입을 모은다. <별에서 온 그대>가 한국과 중국에서 소위 ‘대박’을 내며 김수현이 최고의 한류 스타로 떠오르자 많은 스타들이 “도민준 같은 캐릭터를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들을 주로 기용하는 지상파 드라마가 러브라인에 목을 매는 것도 같은 이치다. 여주인공을 애틋하게 보듬어야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극중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상대역을 맡을 여배우로 누가 캐스팅이 되는지 먼저 묻는 스타들이 적지 않다. <미생>이라는 훌륭한 원작을 두고도 “러브라인이 없다”며 주저하던 지상파 방송사가 tvN에 <미생>을 뺏기는 우를 범하게 된 이유다.
또 다른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까칠한 남자가 자신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 사랑하는 여자에게만 따뜻하게 대하는 판타지 로맨스물, 이는 <별에서 온 그대>와 <아이언맨>에 동시에 적용되는 설명”이라며 “내년 초 방송되는 <하이드 지킬 나><닥터 프랑켄슈타인> 등도 비슷하다. 스타들이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기획에 목을 매니 같은 틀에서 찍어낸 듯한 드라마들이 연이어 제작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