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다리’ 포수는 자세가 낮아 블로킹에 유리하다. 사진은 두산 포수들의 훈련 모습.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보호장비 무게만 3㎏, 고단한 포수들
포수의 얼굴은 경기 내내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타자로 타석에 설 때를 제외하면, 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투수의 공을 불과 18.44m 떨어진 곳에 앉아 눈앞에서 받아내야 한다. 당연히 온 몸을 보호할 장비가 필요하다. 종류도 여러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마스크부터 시작해 가슴 보호대, 발가락 보호대, 다리 보호대, 무릎 보호대, 목 보호대까지 세분화돼있다. 헬멧은 당연히 착용한다. 마스크에는 교차 막대(포수의 시야를 확보하고 눈과 얼굴을 보호하는 역할)와 목 보호대가 부착돼 있다. 이 모든 장비의 무게는 무려 3㎏에 달한다. 경기 내내 3㎏을 몸에 매단 채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한 여름에는 그 무거운 장비들 안으로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체중이 2~3㎏씩 무섭게 줄어든다. 이뿐만 아니다. 공이 뒤로 빠지기라도 하면 총알같이 튀어 올라 전력질주를 해야 하고, 타구가 포수 머리 위로 높이 뜨면 쫓아가 잡아내야 한다. 포수가 한 경기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횟수가 평균 130회에 이르고, 에너지 소모량은 42.195㎞를 완주한 마라톤 선수와 맞먹는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것은 기본. 점수 한 점을 뽑겠다고 홈으로 죽자 사자 달려드는 상대팀 주자를 향해 두려움을 참고 굳건히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참 고되다.
한화 투수 안영명과 포수 조인성이 경기 중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몸만큼 머리도 힘들다
몸이 힘들다고 머리가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다른 포지션에 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더 많다. 투수들과도 미팅해야 하고, 야수들과도 대화해야 한다. 선발 투수의 컨디션과 기분을 파악하는 한편, 상대 타자들의 특성까지 꿰뚫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바뀐 사인은 없는지 확인도 하고, 수비 시프트도 숙지한다. 경기가 시작된 후에는 진짜 치열한 머리싸움이 시작된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구종과 코스를 결정해야 하고, 흔들릴 때면 마운드에 올라가 다독여야 한다. 상대 타자와 주자의 움직임을 눈으로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것은 물론, 벤치와 끊임없이 사인도 주고받는다. 그 와중에 심판의 비위도 맞추고, 자신의 타석에도 들어서야 한다. 경기 후에는 호투한 투수와 홈런을 친 타자, 몸을 날려 화려한 호수비를 한 내야수와 외야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반대로 경기에 졌을 때는 포수의 리드와 도루 허용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잊을 만하면 수시로 “요즘 참 쓸 만한 포수가 없다”는 질책이 귓가를 때리기도 한다. 이럴 때나 저럴 때나 포수는 조용히 3㎏ 무게의 장비를 챙겨 라커룸으로 돌아간다. 심신이 모두 녹초다. 참 외롭다.
#포수는 수비로 돈을 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포수는 공격보다 수비로 능력을 평가 받는다. 연봉 고과를 매길 때 수비 부문에서 가점과 감점의 항목이 가장 많다. A 구단의 고과 항목에 따르면,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는 도루저지와 홈 태그아웃(이상 5점)을 성공했을 때 가장 많은 점수를 얻는다. 좋은 블로킹(3점)이 그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만약 한 경기에서 도루 저지와 홈 태그아웃을 성공시켰다면, 홈런을 친 것에 버금가는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팀이 이긴 경기에서는 ‘포수의 좋은 리드’라는 항목에서 5점이 더 추가된다. 반대로 수비 실수 때문에 깎여야 하는 점수도 많다. 패스트볼(-2점)과 패스트볼 시 실점(-3점) 연결, 블로킹 미스 및 타격방해(-2점)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그만큼 연봉 산정에 악영향을 미친다. “포수는 수비만 잘 하면 타율 2할 3~4푼만 쳐도 되는 포지션”이라는 증언이 결코 틀리지 않다.
그 수비 능력이 포수 자신의 평점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투수의 고과평점과도 직결된다. 투수가 폭투(-2점)나 폭투로 인한 실점연결(-3점)로 감점을 받지 않으려면, 포수의 블로킹 능력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부 감독들은 ‘다리가 짧은’ 포수들을 선호하기도 했다. B 야구인은 “최근 투수들은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많이 구사한다. 원바운드 공도 많이 던진다. 그런데 다리가 길면 블로킹이 불리해진다. 도루저지나 주자견제를 위해 일어설 때도 시간이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에게는 긴 다리가 선망으로 여겨지지만, 블로킹 능력 하나로 연봉이 좌지우지되는 포수에게만큼은 오히려 짧은 다리가 덕목이다. 참 힘들다.
#도루 허용은 모두 포수의 책임일까
때로는 포수들도 억울할 때가 있다. 대부분 도루저지를 포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인식한다. 도루저지율은 포수의 수비 능력을 판단하는 공식 기록이고, 경기 중에 연속 도루라도 허용할 때면 팬들은 포수부터 나무란다. 그러나 포수들은 내심 억울하다. 원로 야구인 C는 “투수가 슬라이드스텝(퀵모션)에서 이미 스타트를 빼앗기면 포수가 아무리 빨리 2루에 송구를 해도 주자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며 “벤치에서 사인이 날 때만 주자 견제를 하는 투수들은 주자를 묶어둘 수 없다”고 했다. 전임 감독 D도 “투수들의 투구 폼을 전력 분석팀에서 분석하면서 어떤 타이밍에 뛰어야 할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갈수록 도루저지에 투수의 몫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두 야구인 모두 투수 출신이라 더 흥미롭다. E 포수 역시 “포수의 도루저지율은 어떤 투수와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현저히 달라진다”고 증언했다. LG 봉중근처럼 견제 동작이 빼어나 주자를 잘 묶어놓기로 유명한 투수는 포수의 도루저지율에도 도움을 주지만, 반대로 유독 등판할 때마다 도루를 자주 허용해 포수를 애먹이는 투수들도 존재한다는 의미다.
투수 출신인 F 야구인도 같은 증언을 했다. “피치아웃 사인이 났는데 실수를 했다면 포수의 잘못이지만, 그 외의 웬만한 도루 허용은 대부분 투수의 책임”이라며 “투수의 역량에 따라 포수의 도루저지율이 많게는 80% 이상 좌우된다고 봐도 된다”고 했다. 특히 슬라이드 스텝을 ‘기본’으로 여기는 한국·일본의 투수들과 달리, 미국 출신의 외국인투수들은 슬라이드 스텝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때도 많다. F 야구인은 “그런 용병 두 명과 함께 시즌을 치른다면, 포수는 1년 내내 자신의 기록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참 어렵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왼손잡이 포수는 왜 없나 투수 하면 주가 ‘쑥’…너도나도 전향 33년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한 가지. 바로 ‘왼손잡이 포수’다. 다른 모든 포지션에서는 왼손잡이가 각광을 받지만, 포수만큼은 예외다. 역사가 훨씬 긴 메이저리그에서도 왼손 포수는 약 30명 정도만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1000경기 이상 출장한 왼손 포수는 1884년부터 1900년까지 뛰었던 잭 클레멘츠가 유일하다. 심지어 1902년 이후부터는 단 11경기에만 왼손 포수가 등장했다. 1989년 왼손잡이였던 베니 디스테파노(피츠버그)가 3경기에 포수로 나선 게 가장 최근 사례. 그러나 원래 포지션이 아니라 팀 사정상 대체 요원으로 나섰을 뿐이다. 대체 왜 왼손 포수는 이렇게나 보기 어려울까. 2루뿐만 아니라 3루 송구도 오른손잡이에 비해 불편하다. 오른손 포수가 1루로 던질 때와 마찬가지로 몸을 한번 틀어서 송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B 감독은 “우완의 송구는 팔의 스윙 궤적 상 주자를 태그하기 좋은 방향(포수 시야의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지만, 좌완은 공의 궤적이 그 반대로 휘어서 수비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자는 1루 쪽에서 2루로 달려오기 때문에, 포구와 동시에 태그 아웃시키는 논스톱 플레이는 거의 할 수 없는 셈이다. C 수비코치도 “실제로 포수의 2루 송구를 받아 보면 2루수 방향으로 오는 송구가 주를 이룬다”고 했다. 미트 문제도 있다. 오른손 포수는 미트를 왼손(주자가 홈을 향해 달려오는 방향)에 끼운다. 반대로 왼손 포수는 미트를 오른손에 착용하니, 홈 블로킹이나 태그 때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0.1초가 아까운 홈 승부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왼손잡이 포수용 미트는 아예 구하기도 어렵다. 기성품이 나와 있지 않고 모두 주문 제작을 해야 한다. 한 회사가 미트 1000개를 만들면 3개 정도가 왼손잡이용. 이마저도 왼손잡이 아버지가 아들과 캐치볼을 하기 위해 주문하는 정도다. 물론 이 모든 이유는 단지 일반론에 따른 ‘분석’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왼손 포수 클레멘츠는 송구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명포수로 알려졌다.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D 배터리코치는 오히려 야구계 전반의 현실을 지적했다. “왼손잡이인데 어깨까지 좋으면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포수가 아니라 투수를 하게 된다”는 얘기다. ‘150㎞를 던지는 좌완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잡아 오라’는 야구계 속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어깨가 좋은 ‘좌투’ 외야수들이 거의 없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송진우 KBS N 해설위원의 차남 송우현은 초등학교 시절 유일한 왼손 포수로 화제와 기대를 모았지만, 중학교에 재학하면서 결국 투수로 변신했다. 이후 다시 내야수로 포지션을 바꿔 넥센에 지명됐다. [은] |
투수와 포수의 궁합 ‘해태왕조’ 주전포수 장채근 가운데 손가락 ‘쭉’ ‘네 맘대로 던져라~’ 투수와 포수는 그라운드에서 부부나 다름없는 관계다. 둘 사이를 오가는 사인 하나와 공 하나에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둘이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순간 그라운드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반대로 그들이 대립하는 순간 경기는 산으로 간다. 투수와 포수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덕목은 당연히 ‘신뢰’. 투수가 포수를, 혹은 포수가 투수를, 혹은 양 쪽이 서로를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 해태 주전포수 장채근. 연합뉴스 삼성 이지영-윤성환 배터리(위), 두산 김재환-니퍼트 배터리.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 최근에는 점점 더 배터리 사이의 교감이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전담 포수제’를 운영하는 팀들도 많아졌다. 삼성 윤성환-이지영 배터리, 두산 더스틴 니퍼트-김재환 배터리, 넥센 앤디 밴 헤켄-비니 로티노 배터리 등이 최근 화제를 모았던 조합들이다. 많은 야구 관계자들은 포수 기근 현상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포수가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투수와 포수의 소통 장벽을 언어가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