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2대 요리로 꼽히는 중국 요리. 오늘날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중국 음식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혁명의 맛>은 한족, 몽골족, 여진족, 후이족 등 여러 민족의 대립과 융합의 역사가 중국의 깊고 넓은 음식 문화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중국인들이 지금처럼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게 된 것은 명나라 때였다. 청대에 이르러 베이징 요리는 봄에 만발한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다. 건륭제는 ‘만한전석’이라는 최고의 궁중 요리를 완성시켰다. 만주족과 한족의 진미 150가지를 한 상에 올린 만한전석은 제국 통치의 이념을 담은 정치적 요리였다.
검소했던 황실의 타락과 부패는 역설적으로 요리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 이전까지 황실이 금했던 상어 지느러미에 탐닉했던 서태후는 지칠 줄 모르는 탐식가였다. 서태후의 ‘맛의 사치’ 덕에 중국 요리는 전례 없이 화려한 백화제방 시대를 맞았다.
20세기의 사회주의 혁명과 문화혁명 역시 음식 문화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저자는 베이징의 오랜 서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뒷골목 ‘후퉁’, 공산당 간부들의 화려한 연회, <마오쩌둥 어록> 암송이 필수 코스였던 1970년대 거민식당 등 당시 외국인이 쉽게 경험할 수 없었던 역사의 현장을 탐사해 마오쩌둥 시대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이 책은 ‘음식’을 소재로 삼아 중국 역사를 들여다보는 독특한 문화사이자 흥미로운 풍속사다. ‘황제들의 중국’과 루쉰의 시대, ‘공산당의 중국’과 문화혁명의 시대, 그리고 현재의 중국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종횡무진하는 ‘혀’의 탐사기다.
<혁명의 맛>을 읽고 나면 중국요리는 ‘달고 맵고 기름지다’라는 생각이 일종의 선입견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중국 4대 요리(베이징 요리, 상하이 요리, 광둥 요리, 쓰촨 요리)의 특징과 기원은 물론이고,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 양고기 꼬치구이처럼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요리가 탄생한 과정을 ‘중국 음식을 사랑하는 미식가’의 입장에서 애정 어린 목소리로 들려준다.
특히 저자는 오로지 한국어판을 위해 9장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을 썼으며, 이 글에서 한국, 중국, 일본에 고추가 전파된 경로, 조선족과 여진족의 음식 문화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둥베이 요리 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교양인. 정가 1만 6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