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당시 이를 자세히 보도한 <제주일보> 지면들. | ||
대형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전담수사본부를 꾸리고 최첨단 과학수사 기법까지 동원, 사건 해결에 사활을 걸게 마련이다. 하지만 범인의 윤곽마저 그려내지 못한 채 사실상 수사가 중단된 미제사건들이 전국적으로 쌓여가고 있다.
피해자는 있지만 범인은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대체 왜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력의 한계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관심과 제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일선 형사들의 토로도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또 “미제사건으로 전락하는 길은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한 범죄수사 전문가의 충고에도 귀기울일 만하다.
<일요신문>은 최근 10년간 발생한 살인사건 중 여전히 미궁 속을 헤매고 있는 10건의 엽기·강력사건들을 선정, 다시 한번 당시의 범죄현장 속으로 들어가봤다. 아무쪼록 이번 연재가 미해결 사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작은 단서라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97년 한여름의 어느 날 조용하던 제주도 내를 발칵 뒤집어놓은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제주시 관덕정 뒤편 공사 현장에서 끔찍한 형상으로 죽어 있는 여인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일명 ‘관덕정 여인 살인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범이 드러나지 않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미제사건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전담 수사본부를 설치한 경찰은 제보 전단지를 도내에 다량 배포하고 범인 검거 경찰관에 대한 일계급 특진 조건을 내거는 등 수사에 전력을 기울였다.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해 진술까지 받아냈으나 법정에서 피의자의 진술 번복 등으로 살인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진범 여부를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10월 10일 기자가 제주경찰서를 찾았을 때 형사들은 약 2주 전 발생한 도내 또 다른 살인사건을 수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관덕정…”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형사과장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당시 수사과정조차 기억해내기를 꺼리던 형사과장의 입에서는 “우리는 ‘범인’을 잡았다. 법이 처벌을 못한 것과 경찰이 범인을 못 잡은 것은 얘기가 다르다”라는 ‘뜻밖의’ 성토가 쏟아져나왔다. 즉 당시 경찰은 분명 범인을 검거했으며 따라서 이 사건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미제사건’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 경찰 측의 얘기였다. 경찰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아 있는 관덕정 여인 살인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사건은 지난 97년 8월 14일 오전 8시경 제주 시내 관덕정 뒤편 옛 법원 건물 철거공사 현장에서 전라의 참혹한 모습으로 숨진 한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사망한 고 아무개 씨(당시 32세)는 제주시 삼도동에 소재한 P 단란주점의 여종업원으로 밝혀졌다. 사체는 얼굴과 뒤통수, 목덜미 부근에 심하게 폭행당한 것으로 보이는 상처 외에도 유두가 도려지고 음부가 찢겨지는 등 참혹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그러나 피해자는 사망한 고 씨뿐이 아니었다. 경찰 조사결과 사건 당일 고 씨는 영업을 마치고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현 아무개 씨(당시 49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현 씨 역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중상을 입고 혼절했으나 사건 직후 행인에게 발견돼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반면 현 씨가 발견된 지점과 불과 5m 떨어진, 방호벽으로 둘러싸인 철거 현장에유기됐던 고 씨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뒤에야 주위의 눈에 띄고 말았다.
사체 감정 결과 범행은 이날 새벽 3시 30분경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됐다. 워낙 늦은 시간인 데다가 사건 발생 장소 또한 인적이 드문 철거공사 현장인지라 수사는 목격자 확보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애초 경찰은 잔인한 범행수법으로 보아 치정이나 금전상의 원한관계 등에 의한 면식범의 범행으로 판단하고 고 씨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에 들어갔다. 또 사체가 엽기적으로 훼손된 점을 감안, 정신병자나 변태성욕자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해결될 것 같던 이 사건은 목격자는커녕 현장에서 이렇다할 증거물조차 나오지 않으면서 시간이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제자리만 맴돌던 수사는 느닷없이 걸려온 익명의 전화로 인해 뜻밖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사건 발생 23일 만인 9월 6일 새벽 사건을 전담하고 있던 중앙수사본부로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내가 살인범”이라는 동일인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장난전화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좀처럼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경찰로서는 결코 한 귀로 흘려버릴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즉시 발신자 추적을 통해 ‘제보자’가 제주 시내 5개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다. 그 결과 문제의 지문이 당시 경찰이 용의자 중 하나로 주목하고 있던 김 아무개 씨(당시 28세)의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전화통화 후 도주한 김 씨의 소재를 추적, 검거한 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용의자 김 씨는 강도강간 등으로 이미 몇 차례의 전과가 있는 인물이었다. 경찰은 김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관덕정 사건 발생 전후인 8월 3일과 9월 23일에 특수강도 및 강간미수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밝혀내고 10월 21일 김 씨를 일단 구속했다. 사실 당시 경찰은 김 씨의 범행 수법이 피해자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 후 범행을 저질렀던 관덕정 사건의 수법과 유사하다는 점을 주목, 그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이미 보강수사를 벌여오던 터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조사 당시 관덕정 살인사건의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다고 한다. 김 씨의 진술대로라면 이 사건은 애초 경찰의 예상과는 달리 치정이나 원한에 의한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었다. 또 그가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즉 금품을 노린 단순 범행이 살인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수법도 이전의 것과 유사했다. 당시 사건을 취재한 <제주일보> 담당기자와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김 씨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은 이러했다.
‘사건 당일 새벽 술을 마시고 관덕정 인근에 도착했는데 여자 두 명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금품을 훔칠 목적으로 접근, 앞서 걸어가는 두 여성을 돌로 내리친 뒤 핸드백을 강제로 빼앗아 달아났다. 그런데 고 씨가 핸드백을 돌려달라며 뒤쫓아와 그를 인근 공사장 주변에 끌고가 폭행했다.’
당시 김 씨는 사망한 고 씨의 신체를 엽기적으로 훼손한 이유에 대해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난 94년 이후 3년 동안 사귀어온 여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여성에 대한 복수심이 발동, 이빨로 물어뜯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 씨의 진술을 받아낸 뒤 범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는 데 모든 수사력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경찰은 그가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김 씨의 자백과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범행에 사용된 둔기를 찾지 못하는 등 범행을 뒷받침할 물증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경찰은 김 씨를 범인이라 확신했고 검찰 또한 살인혐의 등을 인정해 그를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에 따르면 조사과정에서 김 씨는 단 한 번도 범행을 부인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허위진술 가능성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했지만 그의 진술은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는 등 상당히 구체적이었다고 한다.
그해 10월 26일 제주지검 검사의 지휘로 실시된 현장검증에서도 김 씨는 당시 범행장면을 태연하게 재연했다는 것. 또 빼앗은 고 씨의 핸드백을 소각한 장소까지 정확히 지목하는 등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정황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 경찰이 그를 범인으로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현장검증 다음날인 10월 27일 이미 강간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 씨에게 관덕정 강도살인혐의를 추가, 검찰에 송치했다. “두 차례 실시한 현장검증에서 김 씨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연했으며 범행사실을 시인한 점으로 볼 때 진범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경찰의 공식 수사발표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도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관덕정 여인 살인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기소된 뒤 법정에 섰을 때 김 씨의 태도는 백팔십도 돌변했다. 순순히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경찰·검찰 수사 때와는 대조적으로 무조건 모든 범행을 부인했던 것. 사건의 앞뒤 정황 및 김 씨의 자백을 토대로 그를 범인으로 확신하던 경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관덕정 살인사건은 물론 그 전후에 발생한 강간미수사건까지 무조건 자신의 범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김 씨는 법정에 직접 출두한 피해여성들의 증언으로 강간 등의 혐의가 인정됐지만 살인혐의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김 씨는 당시에 저지른 특수강도강간 등의 죄목으로 8년을 복역하다 지난해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 됐거나 관덕정 살인사건은 피해자는 있으나 범인은 없는 ‘찜찜한’ 사건으로 남은 셈이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몇몇 수사 관계자들이 “김 씨는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당시의 상황 등을 상세히 진술했다”며 “우리는 지금도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밝힐 뿐이다.
관덕정 살인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미제사건’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에 대해 한 수사 관계자는 “법적 처벌은 우리 관할이 아니라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잡지 못한 것과 법이 처벌을 못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말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범인을 잡았으니 미제사건이 아니다”라는 경찰의 항변은 현재 자유의 몸이 된 당시 용의자 김 씨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려 ‘제주도판 살인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과연 경찰의 심증대로 김 씨가 관덕정 살인사건의 범인일까, 아니면 김 씨의 법정 주장처럼 진범은 따로 숨어 있는 것일까. 공소시효(살인 15년)의 시침은 이 순간에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제주=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