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금발 머리의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사각사각’ 머리를 빗는다. 가끔 조용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일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몇 분간 머리 빗는 소리만 들려준다. 지루할 것만 같은 이 동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무려 9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름하여 ‘ASMR’ 동영상이다.
‘ASMR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마리아가 빗질하는 소리를 담은 영상의 한 장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우리 말 그대로 번역하면 ‘자율감각쾌락반응’이다. 아직 정식 학술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일상 속의 자연스런 소리를 들음으로써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불면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이렇게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소리에는 ‘사각사각’ 머리를 빗거나 ‘바스락바스락’ 종이를 구기거나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거나 혹은 ‘또르르륵’ 와인을 따르는 소리들이 있다. 수년 전부터 미국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한 ASMR 동영상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동영상이 올라오면서 점차 화제가 되고 있다. ‘귀청소’ ‘이어클리닝’ ‘두피 마사지’ 등으로 검색할 수 있으며, 간혹 ‘뇌르가슴’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럼 정말 효과가 있긴 한 걸까. 마리아의 경우를 보자. ‘ASMR의 여왕’이라고 불리면서 유튜브에 ‘젠틀 위스퍼링’이란 채널을 만든 그녀의 ASMR 동영상은 현재 수십여 개에 달한다. 카메라를 향해 “이제 모든 게 좋아질 거예요”라고 속삭이면서 손톱으로 나무를 ‘톡톡’ 두드리거나 머리를 빗거나 책장을 넘기거나 손수건을 접는 등 단조로운 행위를 녹화한 동영상들이 그것이다.
실제 그녀의 팬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마리아의 목소리는 키스처럼 부드럽다”면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덧붙였다. 마리아 본인도 ASMR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에는 200만 개가 넘는 ASMR 관련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맥주 거품 소리, 자갈 위에서 타이어 굴리는 소리 등이 인기다. 에로틱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긴장을 풀기 위해서 듣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 역시 ASMR이 성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보다는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카메라를 응시한 채 입김을 후 불면서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말아요. 모든 게…다…잘…될거예요…쉬이…쉬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