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활동 당시에 아들 조성민과 함께한 아버지 조주형씨의 모습(왼쪽). 그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담한 현재의 심정을 밝혔다. | ||
조성민의 불륜을 의심하면서 불거진 이번 일은 잇따른 양측의 폭로전이 가세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조성민이 ‘불’을 당겼고 최진실이 ‘맞장’을 뜨면서 올 한 해 스포츠-연예계의 최대 핫이슈로 떠오른 두 사람의 파경 소식은 사실 결혼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두 사람이 깨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악담’을 했던 것. 그만큼 부부로 인연을 맺기에는 달라도 너무 다른 환경과 세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에선 조성민-최진실 파경과 관련해 양측의 입장과 어떤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그리고 조성민 아버지 조주형씨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예측했던 일 아닌가? 그래서 1년 동안 반대했던 거고….” 조성민-최진실 부부의 파경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 다음날 조성민의 부친 조주형씨는 어렵게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무거운 목소리로 ‘예상했던 일’이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특히 “끼리끼리 살아야 하는데 영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나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씨는 두 사람이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소릴 듣고 그날 밤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면서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눈감고 세상을 잊고 싶었는데 또 다시 눈을 뜨게 됐다”며 젖은 음성을 토해냈다.
기자들의 전화 공세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휴대폰을 꺼놓았다는 조씨는 ‘운 좋게’ 통화가 이뤄진 기자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겠다며 두 시간 가량의 인터뷰에 응했다. 조성민의 아버지 조주형씨는 처음 최진실과 결혼한다는 조성민의 얘기를 듣고 거의 1년 가량 거센 반대를 했다고 한다.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커플이라고 생각했던 것. “수백 번 생각해봐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이가 일본에 들어가서 내조에 전념하겠다고 굳게 약속을 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 않은가. 진실이의 말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최진실은 결혼 후 내조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시댁과의 약속을 1년도 채 되지 않아 깨고 말았다고 한다.
아들 환희를 낳자마자 방송 복귀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 방송 출연을 안할 경우 MBC측에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며 연기자 생활을 다시 하고 싶어했다. “위약금 물 돈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방송을 다시 하게 됐는데 솔직히 난 며느리가 출연한 연속극이었지만 거의 보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씨는 너무나 유명한 며느리를 둔 바람에 행동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뒤따랐다고 한다. 최진실의 시아버지라는 타이틀 때문에 혹시나 자식들한테 누가 될까봐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했고 가까운 친구들과의 교제도 가급적 피했다. 며느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어차피 ‘내 사람’이 됐으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조금씩 대화를 통해 고쳐나가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다.
“일본 생활이 갑갑했던 모양이다. 말도 안 통하고 남편 운동 나가면 집에서 혼자 지내는 생활이 처음엔 편하고 좋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갇혀 사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 나왔다가는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시아버지 입장에선 좀 서운했다. 내조를 약속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길 바랐는데 자기 뜻대로 생활하더라.”
▲ 행복했던 그때 지난 2000년 12월5일 조성민과 최진실의 결혼식 모습. | ||
힘들 때 그 술집에 가서 마담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난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진실이가 좀 참고 기다려주길 바랐다.” 조씨의 말에 따르면 최진실의 성격이 한 번 무슨 일이 생기면 집요하게 집중하는 편이라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남편을 의심하지 말고 마음을 편히 갖고 기다리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17일 새벽 최진실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게 됐다. “나랑 집사람더러 당장 서울로 오라고 성화였다. 현장을 덮쳤다는 것이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성민이가 그 여자네 집에 있는 현장에 형사를 대동하고 와 있다는 소리였다.
진실이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할 마음 없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당장 성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있냐고 묻자 선배네 집에서 자고 아침 먹으러 간다고 대답하더라. 차를 어디에 세워놨냐고 했더니 선배 집 앞에 세워놨는데 무슨 일 있냐고 묻길래 그럼 됐다 하고 끊었다.”
조성민은 나중에서야 새벽에 그런 소동이 벌어진 사실을 알고 크게 분개했다고 한다. 이혼은 안된다고 말한 사람이 어떻게 간통 현장을 잡겠다고 형사를 데리고 그 여자네 집 앞에 나타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흥분했다.
“하루는 진실이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성민이한테 한 시간 동안 맞았다는 거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그 길로 잠원동 집으로 갔다. 가서 보니까 손찌검을 한 건 사실이었는데 진실이도 성민이 몸을 할퀴고 때려 상처를 냈더라. 한심했다.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한다며 허락 안해주면 부모와 의절까지 하겠다고 했던 애들이 왜 이런 꼴로 사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린 그래도 항상 진실이 편에 서 있었다. 성민이가 자기한테는 가족이 없다고 말할 만큼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진실이 입장에서 성민이를 야단치고 타이르고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진실이도 그 부분은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조성민은 물론 최진실도 시아버지의 충고와 조언에 귀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운 질문을 꺼냈다. 최진실 주변에 떠돌아다닌 소문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조씨는 “일부러 나쁜 소문들은 안 들으려고 노력했다. 유명인을 헐뜯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하지만 성민이 입장에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조성민의 재산에 대해 물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돈을 모았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난 성민이의 연봉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솔직히 모아놓은 게 없다. 정신 나간 놈이다. 호화 생활하며 아낌없이 쓰고 다녔다. 만약 운동 생활을 계속 했다면 부와 명예는 따라오기 마련인데 너무 일찍 그만뒀다. 운동만 하던 사람이 사업한다고 잘 될 리가 있겠나.
자기 돈으로 해도 힘든 게 사업인데 처음부터 큰 빚을 지고 시작해서 사실 불안하다. 잠원동 집과 내가 살고 있는 양수리 집을 담보로 해서 은행 대출을 받아썼는데 어떻게 갚을지 걱정이 된다.” 투자액이 10억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조씨는 지금도 조성민의 야구선수로의 복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아직은 사업할 때가 아니라는 것.
돈의 노예가 될 나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사실 난 평범한 며느리를 원했다. 내가 직접 옷도 사주고 용돈도 주면서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으며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진실이는 완전히 ‘공주’였다. 성안에 갇힌 공주나 마찬가지였다.
가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네가 결혼한 이상 ‘공주’가 아닌 ‘평민’으로 살아야한다’는 잔소리였다. 그런데 그 벽을 허물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 같다. 진실이도 노력했다. 평범한 집안에 맞춰가려고 애는 썼는데 자신이 처한 환경이 너무 다르다보니 힘들었을 것이다.”
조씨는 두 사람의 이혼을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없이 기분대로 행동하는 철없는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나. 세상에 내보내놨으면 책임을 져야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무슨 벌을 받으려고. 지금 내 앞에 환희 사진이 있다. 그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그 천사같은 아이가 부모 잘못 만나 나중에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
조씨는 아들을 두둔하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인간적이었던 조성민이 조금씩 변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옆을 먼저 볼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자기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그걸 모른다. 더 이상 서로에게 상처 줄 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 환희가 커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하겠나.”
조씨는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자식 잘못 키워 이 꼴을 당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진실이랑 결혼한다고 우겨 내 가슴에 대못을 박더니 그 못이 서서히 빠질 만하니까 또다시 그 못을 박고 옆에 대못을 또하나 박았다. 가슴이 아파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