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번 수사가 혐의 사실을 포착한 일반적인 수사가 아닌 정치적 필요에 의한 수사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의 수사나 소환 통보 일정이 청와대 거부권 행사와 묘하게 맞물리며 의혹의 시선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이 최고위원이 경남기업 관계자로부터 2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첫 보도됐고, 3일 뒤인 25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정부 시행령을 수정, 변경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은 하루 뒤인 26일 ‘배신의 정치’란 단어를 쓰며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며 사실상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검찰이 이 최고위원에게 소환 조사 출석을 요구했던 날이다.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이 최고위원에게 ‘유승민 사퇴’에 나서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도 같은 의견을 내놨다. 이 당직자는 “만약 청와대에서 유승민 사퇴를 결심했다면 최고위원 중에서 사퇴 쪽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고위원을 늘리는 방법을 고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에 친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이 서청원 최고위원과 이정현 최고위원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의원을 검찰 수사를 통해 압박해 같은 목소리 내게 하려고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계파색이 옅은 이인제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주장에 동조한 것을 두고 정가에선 검찰의 이 최고위원 소환 압박과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사진은 6월 1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로 왼쪽부터 김태호 유승민 김무성 서청원 이인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새누리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옅고 범 비박계로 분류됐던 이 최고위원은 ‘공교롭게도’ 친박계와 뜻을 같이해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대표적인 친박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이정현 최고위원에 이 최고위원도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 이 최고위원은 비공개 최고중진역석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파국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안에서도 이 최고위원의 행동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새누리당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이 최고위원이 언제부터 친박이었나. 갑자기 사퇴 쪽으로 목소리를 높여서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한길 의원에 대한 수사도 성완종 리스트나 이 최고위원에 맞춰 야당 중진 의원을 수사에 포함시켜 ‘여야균형 맞추기’를 통한 물타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의원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문무일 경남기업 특별수사팀장이 지난 2일 성완종리스트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이인제 김한길 의원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 수사는 피해가면서 정치적 노림수로 해석될 수 있는 수사 방향을 튼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두 의원에 대해 수사가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이름부터 노출시켜 망신을 주거나 정치적인 압박을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구체적인 정황이 부족하고 이 최고위원은 구체적인 진술이 있다고는 하지만 수사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검찰이 소환 통보에 불응한 두 의원을 상대로 체포까지 언급하면서 의혹이 더 짙어지는 빌미를 제공했다. 국회 회기 중에 현직 의원을 체포하려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체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이 같은 태도가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퇴시키기 위해 검찰이 주변을 털어 비위 사실을 확인했으리라는 추측이 큰 의심 없이 믿어지는 데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구체적 사실이 담겨 있는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인물들도 못 잡는데 리스트에도 없는 의원의 혐의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느냐”며 “청와대 실세는 조사를 안 하고 의원들은 체포까지 언급되는 상황이 검찰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