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공직자 직계비속의 면제 현황’에 따르면 4급 이상 고위공직자 자녀 가운데 군 면제자는 무려 784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질병이 732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무려 93.4%나 됩니다. 고위공직자의 자녀 가운데 군에 입대하지도 못할 만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입니다. 그만큼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가의 처우가 척박하다는 뜻일까요? 국민들이 세금을 적게 내고 있어 고위공직자들이 가족의 건강도 챙기지 못할 만큼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고위공직자들이 국사에 전념하느라 가족의 건강을 돌볼 틈이 없었던 것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위공직자와 그들 가족의 평소 이미지와는 매우 상반된 통계 수치입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국적상실 및 이탈로 면제를 받은 이들이 30명(3.8%)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원섭 산림청 청장,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이시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등 고위공직자 26명의 직계비속 30명이 ‘국적상실 및 이탈’로 병역면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2의 유승준’이 고위공직자의 아들 가운데 무려 30명이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직 4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아들만을 대상으로 한 수치인만큼 전직 고위공직자까지 대상을 넓히면 제2의 유승준은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게다가 유승준보다 먼저 이 같은 방식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원조 유승준’인 고위공직자의 아들들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현재 유승준은 한국 국적 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아예 한국 입국조차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과연 유승준과 같은 ‘국적상실 및 이탈’로 병역면제를 받은 고위공직자의 아들들도 같은 처지일까요?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제출받은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평균 20여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는데 이들은 37세 이후 국적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병역의무부과 연령인 37세를 넘겨 병역을 면제받은 뒤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한 이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유승준이 홀로 전국민의 비난을 짊어지고 한국에는 입국조차 못하고 있는 동안 일부 고위공직자의 아들들은 같은 방식으로 병역을 면제받고도 자유롭게 한국에 입국하고, 나중에는 국적 회복까지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까닭에 유승준에게 공개 사과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유승준의 한국 입국과 한국 국적 회복을 허용해줄 것은 병무청에 요구합니다. 여전히 기자는 유승준을 스티브 유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의 입국 및 국적 회복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되는 데 유승준만 안 되는’ 듯한 모양세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지난 5월 유승준이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심경 고백을 했을 당시 그리 당당하게 유승준의 잘못을 지적했던 병무청은 이제 비슷한 사례의 고위공직자의 아들들에게 어떤 대응을 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만약 유승준과 똑같은 기준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유승준의 한국 입국과 국적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같은 상황의 고위공직자 아들들에게도 같은 입장을 보여야 진정한 대한민국의 병무청일 것입니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그냥 두 손 들고 유승준의 입국을 허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병무청장이 직접 꽃다발을 들고 유승준이 입국하는 공항에 마중 나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사정은 있을 것입니다. ‘국적상실 및 이탈’로 병역면제를 받은 고위공직자의 아들들이 모두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국적 상실을 하거나 이탈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사정이 있어 국적 상실 및 이탈을 한 것인데 이로 인해 병역이 면제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까지 모두 병역 기피자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병무청에선 유승준의 국적회복 요구에 대해 국적법 제9조를 언급했습니다. ‘국적회복에 의한 국적 취득’을 다루고 있는 국적법 9조에는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였거나 이탈하였던 자’는 국적회복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승준은 국적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들지 않으면 국적회복이 허가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반면 ‘국적상실 및 이탈’로 병역면제를 받은 고위공직자의 아들들 가운데에는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였거나 이탈하였던 자’가 아닌 것으로 구분된 이들이 상당수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입국이 자유롭고 추후 국적 회복도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유승준이라고 사연이 없을까요? 정말 그는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것일까요? 적어도 유승준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군대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누구는 병역 기피가 목적이고 또 누구는 병역 기피가 목적이 아니었음을 구분하느냐 일 것입니다. 그런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유승준은 한국 국적 회복은커녕 입국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유승준만 그런 게 아니라 고위공직자의 아들들 가운데에도 ‘국적상실 및 이탈’로 병역면제를 받은 이들이 30명이나 되는 데도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국회에선 법 개정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적법 개정안은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적 상실이나 이탈한 사람에 대해 국적 회복을 아예 불허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국적 상실 및 이탈이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이뤄진 것인지 가늠할 기준이 불명확한 터라 아예 모든 병역 불이행 국적 상실 및 이탈자의 국적 회복을 불허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1년 넘게 이 국회법 개정안은 법사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또한 백군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스티브유법)은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거나 이탈한 사람에 대해 입국금지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이 질문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국회의원의 아들들 가운데에는 이런 사례에 해당되는 제2의 유승준이 없을까요?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