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과 롯데그룹의 제2롯데월드 신축 관련 합의서 내용을 보면 롯데가 공군 측에 부담한 비용이 세간에 알려진 3000억 원이 아니라 951억 원에 불과했다. 사진은 완공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롯데월드타워. 일요신문 DB
그러던 것이 MB(이명박) 정부 초기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제2롯데월드를 신축하는 방향으로 무게를 두자 공군도 제2롯데월드를 위해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 3도 조정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 10도 조정 △서울공항 폐쇄 △높이 203m 이하로 제2롯데월드 허가, 네 가지 방안을 내놨다. 이 안들은 지난 2008년 9월 30일 국회 국방위원들이 국방부 벙커에 갔을 때 국방부 장관이 직접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대체공항 건설부지가 없어 불가능에 가까운 공항 폐쇄나 활주로 방향을 조정한다는 안보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4번째 방안인 ‘203m 이하 허가’는 사라졌다. 제2롯데월드 문제를 다뤘던 행정조정협의회에 국방부는 나머지 3개 안만 건의했고, 활주로 이전 비용과 필요한 시설비용을 롯데 측이 댄다고 해서 4번째 안을 빼놓고 건의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리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 당시에도 제기됐다. 활주로를 3도 틀어 만에 하나 국가안보, 국민의 생명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사기업인 롯데가 적당한 높이로 짓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한 여당 관계자도 대통령이나 국빈이 이용하는 곳에 한 치의 위험도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공항 이용자가 대통령 등 특수인 아니냐”며 “지난 2013년 악천후 속에서 삼성동 38층 아파트에 엘지 헬기가 추돌 사고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끊임없는 논란 속에 2009년 제2롯데월드 사업은 드디어 빛을 보게 된다. 기다리던 건설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제2롯데월드를 위해 서울공항의 동쪽 활주로 방향을 3도 틀고 비용을 롯데가 지불하는 것으로 정부와 합의를 맺는 데 성공했다. 롯데로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지난 2006년 5월에 공군본부가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안으로 제출한 자료에서도 각도에 따른 비용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활주로를 동쪽으로 7도 조정하는 안은 탄천을 일부 복개해야하고 1조 2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등의 이유로 추진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초기 1조 200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소요 경비가 줄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적은 비용이 든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지난 2009년 6월 4일 공군과 롯데 측이 맺은 ‘공군본부와 롯데물산 간 제2롯데월드 신축 관련 서울기지 비행안전 및 작전운영 여건 보장을 위한 합의서’에 따르면 제3조 책임 항에는 ‘을(롯데)은 제2롯데월드 신축에 따라 발생하는 서울기지의 비행안전과 작전운영상의 제한요소를 해소하는 데 필요로 하는 사항에 대해 갑(공군)과 을이 합의한 장비 및 시설보완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고, 갑은 이와 관련된 제반 법적절차에 협조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장비 및 시설보완’에 대해서는 ‘서울기지 보강사업 추진현황’이라는 또 다른 문서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문서 상단에는 ‘총 사업비 : 951억 원(시설 722억 원, 장비 229억 원)/전액 롯데 측 부담’이라고 적혀 있다. 사업기간은 지난 2010년 12월 31일부터 2013년 9월 5일까지로 돼 있고 서울기지 동편활주로와 원주기지 KA-1 수용시설에 대한 공사비가 각각 549억 원, 173억 원으로 총 722억 원이 잡혀 있다. 또한 안전을 위해 공군 측이 롯데에게 요구한 장비에 대한 비용으로 정밀접근 레이더, 정밀감시장비 등은 229억 원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롯데물산 관계자는 지난 1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전체적으로 공군에 확인해야 하는 부분으로 현재 에어쇼 관계로 공군본부가 바빠 추후 확인해서 답하겠다. 공군과 관련해서는 대략적으로 1000억 원이 소요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항간의 비용 3000억 원설은 대통령 전용기 관련 시설을 다 옮기는 걸 포함해 정치권에 떠돌았던 얘기로 활주로 변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문서상의 금액(951억 원)과 비슷한 사업비 규모를 확인해줬다. 그는 “다만 롯데는 공군과 장비 및 시설 보완 사항만 요구받았고 비용과 금액에 대해서는 요구 받지 않았다”며 “서울공항의 비행안전 및 작전 안전과 관련해 체결된 합의서에 따라 공군에서 요구한 장비 및 시설 보완을 롯데가 실시해 일체를 양도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제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2009년 2월 3일 국방위에 참석한 군 관계자들은 활주로를 3도 틀고 안전 장비를 보강하면 문제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서울기지 보강사업 추진현황’에 롯데 측이 제공한다고 합의된 내용을 보면 TAWS(지형인식 경보체계) 부착 비용은 공중기동기 47대 분량에만 그친다. 즉 나머지 비행기는 안전 장비 없이 서울공항에 뜨고 내려야한다는 것이다. 국방위에서는 안전하다는 공군의 해명이 맞다고 해도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 1호기에만 안전장치가 부착되면 서울공항에 외국 국빈들 비행기가 들어오겠느냐는 질책이 있었다.
공군본부와 롯데물산 간 제2롯데월드 신축관련 서울기지 비행안전 및 작전운영 여건 보장을 위한 합의서.
더군다나 전시에 47대 이외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 국방위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박연석 당시 공군 제15혼성비행단장은 “아무래도 많이 운항하는 조종사들한테 위험이 더 많이 닥칠 수 있다”고 하자 한 국방위원이 ‘평시에는 훈련 안하다가 전시에 성남기지에 착륙하는 조종사들은 안전장치 없이 내려도 괜찮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 전 단장은 “그렇다. 문제없다고 본다”는 다소 황당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공군과 롯데 측의 합의가 있기 두 달 전 열린 국방위원회에서는 제1, 제2롯데월드의 시너지를 위해 국가주요시설인 활주로를 틀자는 결론으로 사실상 확정되자 쓴소리들이 쏟아졌다. 서종표 민주당 의원은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서 의원은 “작년(2008년)에 보고를 받고 파악을 해보니 저는 이런 결론을 맺었다. ‘제2롯데월드 건물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 된 순간부터 결정은 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2롯데월드 사안에 대해 가장 대립각을 세웠던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롯데월드가 우리말로 하면 ‘롯데 세상’인데 요즘 완전히 롯데 세상이 돼 버린 것 같다. 국가 안보나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 정부가 일개 재벌의 기업 논리에 이렇게 질질 끌려 다니는지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단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2010년 6월 공군의 F-5E 전투기가 귀환하다가 강릉비행장을 2㎞ 앞두고 인근 해안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개도 없어 시야가 트인 날에도 비행장 앞에서 이런 추락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비행장 앞에 버티고 있는 고층 빌딩이 얼마나 심각한 시한폭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며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 권력에 의해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로 강행되고, 여기에 국방부와 공군, 예비역 장성들이 들러리를 서는 행태는 MB 정부 초기 안보정책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전 문제에 대해 롯데물산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 건설 부지는 공군 주활주로 및 동편활주로(부활주로)에서 6.05㎞ 떨어져 있어, 기본적으로 비행 안전구역 밖에 위치하고 있다”며 “전문기관 기술검토와 미연방항공청 공인 충돌위험모델(CRM) 시뮬레이션 결과 등은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초고층 건물과 충돌할 확률이 ‘10-15(1000조분의 1)’ 이하로 미연방항공청 안전기준인 ‘10-7(1000만분의 1)’보다 훨씬 안전하다. 비행안전구역은 비행 안전을 위해 법으로 설정해 놓은 곳으로 항공기 및 계기 오차, 조종사 실수 등이 모두 고려돼 안전 문제는 안심할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