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싱글들 사이에서 ‘골프 맞선’이 인기다. 작은 사진은 영화 <타짜>의 한 장면.
“라운딩 하는 것만 봐도 사람을 알 수 있다. 그게 바로 골프 맞선의 매력이다.”
골드싱글 이 아무개 씨(42)는 요즘 골프맞선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남을 시작하는 기존 맞선과 달리 좋아하는 골프를 치며 여성을 알아간다는 점에서 1석 2조다. 넓고 탁 트인 환경에서 사람을 만나다보니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당연지사. 또 코스를 돌며 긴 시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성공률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무엇보다 골프를 친다는 건 일정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있다는 뜻이기에 복잡하게 상대방의 경제수준을 에둘러 물어보는 수고가 줄어든다.
이 씨는 “골프는 데이트에 최적화된 운동이다. 복장부터 잘 챙겨 입을 수 있지 않냐. 상대 여성이 그날 갖춰 입고 나오는 것만 봐도 경제력, 센스, 취향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 땀을 많이 흘리거나 몸을 많이 쓰지도 않고, 상대의 플레이에 적당히 호응하면서 분위기를 이끌 수 있어 더 좋다. 주선자들이나 2 대 2로 만나는 경우가 많아 어색해질 염려가 적다는 점도 골프맞선의 매력이다”고 말했다.
물론 골프맞선의 관건은 두 사람의 골프실력이다. 아무리 인상이 좋아도 연신 ‘오비’만 날리면 호감을 줄 수 없다. 그렇다고 한 쪽의 실력이 모자라는데도 배려 없이 플레이를 펼치면 그 역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골프맞선을 해봤다는 신 아무개 씨(여·32)는 “아버지 친구 분의 소개로 선을 보러 나간 적이 있다. 낯을 좀 가려 주선자 쪽이 골프맞선을 제안하기에 응했다. 나는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해서 잘 치지 못할 때라 내심 잘 치는 사람이 나오길 기대했다. 가르쳐주고 배우며 관계를 쌓으면 좋지 않나. 하지만 나온 남자도 썩 잘 치진 못하더라. 거기서 호감이 반감되기도 했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샷을 날리다보니 진땀 빼느라 제대로 얘기할 기회도 얻을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오프라인 골프맞선도 유행이지만 온라인을 통해 골프데이트 상대를 찾는 사이트들이 더 인기가 높다. 한두 명만 치러 가기엔 비용 부담이 높기 때문에 골프 동행도 구하고, 데이트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유명 골프 사이트에서 부킹하려는 골프장 이름, 소요 비용 등을 적어 동반자를 구하는 건 흔히 있었지만, 최근에는 소셜데이팅 형식의 ‘골프팅(골프+소개팅)’ 전문 사이트가 등장했다. 월 라운딩 횟수, 평균 타수, 보유 골프회원권 등의 정보와 함께 성별, 나이, 닉네임, 사진 등이 사이트에 게시된다. 이용자들은 올라온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 쪽지를 보내 매칭을 시도하기도 하고, 부킹 정보를 올려 상대를 초청하기도 한다.
다른 소셜데이트 사이트와 달리 이곳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40세가 넘는다. 골프를 즐기는 중년 남녀들이 주 회원인 것. 가입한 남녀 비율은 7:3 수준이다. 골프인구의 약 85%가 남성인 점으로 볼 때 여성회원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 다른 라운딩 동행을 구하는 사이트와 다른 점은 ‘스폰서 초청’, ‘애프터 초청’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골프팅을 원하는 이들은 원하는 성별, 인원과 함께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 상대를 찾는다. 필드 초청은 여성 상대를 찾는 남성들이 올리는 글이 대부분이다.
한편 골프팅이 흔해지다보니 부부동반으로, 사업상으로 골프를 치는 이들의 라운딩 시 불만도 상당하다. 서로 신경전을 하며 더 잘 치려고 몇 번씩 연습스윙을 해 진행을 밀리게 하는가 하면, 지나친 애정행각으로 불쾌감을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 평소 부부동반으로 골프장에 종종 찾는 나 아무개 씨(여·37)는 얼마 전 한 퍼블릭 골프장을 갔다가 골프팅 커플 때문에게 데였다. 나 씨는 “뒤늦게 함께 가기로 한 지인이 펑크를 내 다른 팀 2명이랑 조인을 하게 됐다. 만나서 보니 누가 봐도 불륜인 것 같더라. 팔짱을 꼭 끼고 다니더니 계속 공 주우러 간다는 핑계로 어디로 사라졌다가 돌아오고, 라운딩 내내 더듬고 난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에게 계속 웃기지도 않은 음담패설을 농담으로 던져 기분을 망쳤다”며 경험담을 전했다.
골프팅 사이트 관계자는 “사이트 오픈 5개월 만에 1만 3000명이 가입했다. 오프라인에서 골프맞선을 하는 이들을 보고 착안했다. 평균 연령이 높아 노골적인 골프 스폰 제안을 하거나 은밀한 만남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건전한 만남을 사이트를 통해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긴 하나 남녀가 모이는 곳이라 쉽진 않다”고 귀띔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자칫 등골 휜다 골프채 등 배보다 배꼽 ‘헉’ 한 골프복 브랜드 패션쇼 모습. 이 아무개 씨(36)의 하소연이다. 골프가 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비싼 운동이다. 성수기, 비수기냐에 따라, 골프장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20만 원 안팎의 그린피와 카트비, 그늘집 비용 등을 합치면 수십만 원이 든다. 여기에 골프텔을 잡기라도 하면 비용은 훨씬 더 늘어난다. 물론 3~4명이서 라운딩을 나가면 비용은 더치페이가 기본이지만, 골프팅을 할 때는 얘기가 다르다. 이 씨는 “고액 연봉의 싱글이라 사실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비용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라운딩 가자고 조르면서 캐디피 한 번 내지 않는 골프여친 때문에 짜증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라운딩 비용도 만만찮지만 골프팅을 위한 ‘부대비용’은 더 든다. 골프복, 골프채, 레슨비 등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보통 ‘더블데이트’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쪽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복장은 더 신경 쓴다. 앞서의 이 씨는 “회원권이 있는 지인과 골프팅 사이트를 통해 여성을 초청해 라운딩을 간 적이 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신청자가 몰려 미모의 여성으로 초청 대상을 고르고 골랐다. 지인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나도 라운딩 일주일 전부터 평소 신경 쓰지도 않던 골프복을 장만했다. 퍼블릭 골프장만 다니다가 프라이빗으로 가니 사람들 복장부터 다르더라. 신경 쓰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