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연 영정 사진을 들었던 김지훈이 마약 투약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 ||
문제는 음모론 정도로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많은 의혹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위기의 연속, 사면초가다. 성상납, 술 접대 강요 등 연예계의 이면에서 루머로만 떠돌던 사안이 장자연의 자살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고인이 관련 내용이 담긴 문건을 남기고 자살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소속사 대표 김성훈 씨가 귀국하면 일사천리로 풀릴 것처럼 보였지만 김 씨가 송환된 이후에도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렵게 구속하는 데 성공했지만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경찰은 또 한 번 거센 비난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반면 올해 들어 경찰이 연예계와 관련해 가장 혁혁한 공을 올린 부분은 마약 수사다. 주지훈으로 시작해 오광록을 거쳐 김지훈까지 경찰의 연이은 연예인 마약 수사는 말 그대로 눈부신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와 ‘연예인 마약 수사’ 사이에 묘한 상관관계가 엿보인다.
우선 경찰이 장자연 문건 파문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연예인 마약 사건이 불거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주지훈 마약 투약 사건이다. 지난 4월 24일 분당경찰서가 중간수사발표를 통해 사실상의 수사 중단을 선언하자 경찰은 부실 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 26일 주지훈이 마약 투약으로 불구속 입건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수사 중간에 수사 내용을 발표하며 주지훈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그러자 경찰이 주지훈을 장자연 문건 파문 부실 수사 논란 무마용으로 활용했다는 비난이 집중됐다.
그렇게 중단된 고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에 다시 관심이 집중된 것은 장자연이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인 6월 14일을 즈음해서였다. 매스컴들이 이 무렵 고 장자연 문건 파문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경찰은 또 하나의 대형 마약 사건을 발표했다. 경찰은 6월 8일을 즈음해 중견 영화배우와 연극배우, 영화감독 등이 연루된 대마초 사건을 남대문 경찰서 외사과가 수사 중임을 공개했고, 11일 오광록을 검거했다. 이후 하루 이틀 간격으로 영화감독 김문생, 기타리스트 이원재, 영화배우 정재진 등을 연달아 검거됐다. 연예계가 또 다시 연예인 마약 수사로 떠들썩해지면서 장자연이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의 의미는 퇴색해버렸다.
다시 한 달여가 흘러 김 씨가 강제 귀국 조치돼 구속됐고 경찰은 지난 10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검찰 안팎에선 회의적인 목소리만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이번엔 가수 김지훈이 엑스터시 및 대마초 투약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 논란과 연예인 마약 사건의 묘한 시점적 일치가 세 번이나 반복되면서 또 다른 음모론이 등장했다. 세 번째 교차점에서 만난 김지훈은 장자연의 장례식 당시 영정 사진을 들었던 인물이다.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몇 안 되는 연예인인 김지훈은 유가족과도 친분이 두텁다. 한 스포츠 신문에서 유가족 단독 인터뷰를 했을 당시에는 김지훈의 부인 이종은 씨가 기자와 함께 유가족의 집을 찾았을 정도다.
경찰은 김지훈이 마약류 관리법 위반 재범임을 강조하며 구속하려 노력했지만 법원은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다른 연예인 마약사건과 달리 김지훈의 수사는 경찰이 아닌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이 담당하고 있다.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대다수의 참고인이 김 씨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김지훈에게 고 장자연과 관련된 결정적 증언을 해주는 조건으로 플리바게닝(특정 증언을 하는 조건으로 혐의나 형량을 경감받는 것)을 제안하려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김지훈이 구속될 경우 플리바게닝을 제안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에 검찰이 구속영장 발부에 정성을 들였고 또 그만큼 아쉬워했다는 것.
항간에선 이를 위해 검찰이 김지훈에 대한 표적 수사를 벌였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현재 하나의 음모론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만큼 경찰의 고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와 연예인 마약 수사가 묘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