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48개 넓이의 부지에 세워지는 강원도 고성 국회의정연수원 공사 현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골프 앤 리조트, ○○ 리조트, ○○○ 스키장….”
강원도 인제군 56번 국도를 지나자, 온갖 표지판들이 이목을 사로잡았다. 설악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리조트와 휴양지들의 홍보 문구였다. 미시령 터널을 빠져나와 톨게이트에 다다를 무렵 설악산 울산바위의 절경이 펼쳐졌다. 톨게이트 왼편으론 골프장과 리조트를 갖춘 강원도 최고의 휴양지가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일요신문> 취재팀이 의정연수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차량 한 대도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도로 때문이다. 도로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탓일까. 과거에는 설악산에서 고성을 가려면 속초 시내를 거쳐야 했지만, 이 도로를 이용하면 그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다. 미시령에서 고성으로 직행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던 것. 오로지 의정연수원을 위한 길이었다. 10분쯤 지난 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산 88-3.’ 고성 국회의정연수원 공사 현장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사무처가 고성을 연수원 부지로 선정한 이유는 뭘까. 의정연수원은 골프장과 리조트가 운집한 휴양지 안쪽,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울에서 고성까지, 차량을 이용해도 무려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토록 머나먼 곳에 연수원을 지은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2002년 지어진 강화연수원으로 국회 직원들을 교육하기에는 부족했던 걸까. 제20대 총선의 예비 ‘금배지’들이 이곳을 알고 있다면, 묘한 미소를 지을 법했다.
오후 12시 40분, 취재진이 도착할 당시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건설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현장으로 복귀 중이었다. 입구 앞에 걸린 표지판에서 의정연수원의 규모를 알 수 있었다. 부지는 39만 4139㎡(약 11만 9227평)으로 축구장 48개를 합친 것보다 넓었다. 시설규모(연면적)는 1만 3668㎡(4135평), 건물의 최고 높이는 15.7m였다.
지하1층과 지상4층으로 구성된 연수원엔 350석의 대강의실, 135석의 중강의실, 50석의 소강의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숙박시설은 총 20평형대가 81실, 30평형대가 2실로 총 83실로 구성됐다. 식당 매점 컴퓨터실 등 부대시설도 포함됐다. 발주처는 국회사무처, 시공사는 용우건설이다.
취재진이 5m 높이 회색 가림막을 지나 현장에 들어서자, 4층의 골조 건물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 H자 모양의 건물 전체가 눈에 들어올 만큼, 의정연수원의 규모는 상당했다. 외벽에 시멘트만 바르지 않았을 뿐 의정연수원은 온전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고성 의정연수원은 내부에 수영장 시설까지 만들 계획이었지만 운영상 어려움 때문에 철회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본관 뒤편의 숙소동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승합차 한 대가 공사 현장에 널린 흙구덩이와 돌무더기 사이에 멈춰 섰다. 점심식사를 마친 건설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한 것.
“이게 잘 나오니까, 공사가 일사천리지. 무지무지하게 빨라요.”
건설 노동자는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모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돈 안 나오면 중간에 가다가 멈춘다. 시공업체에서 돈이 제때 나오니까 공사가 빠르다. 다른 곳은 안 그런다”고 밝혔다. 시공업체 관계자는 “60% 정도 완성됐다. 지금 5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고 보탰다.
국회사무처는 공사 내내 예산 삭감 요구에 시달렸다. “수백억 원을 들여 휴양지를 짓는다”는 부정적인 여론 때문이다. 국회 직원들을 위한 ‘연수용‘이라고 국회사무처는 반박해왔다. 하지만 전례를 살펴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법. 2012년 당시 국회 직원 대부분이 휴양 목적으로 방문했기에 국회 의정연수원(강화군 양사면 인화로 137)은 논란에 휩싸였다. 강화 연수원은 4개의 숙소동과 1개의 강의동, 족구장으로 구성돼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직원의 강화연수원 총 사용건수는 총 582건, 사용 인원은 3638명이었다. 이 중 약 96%인 561건, 3320명이 가족모임과 휴양 목적으로 연수원을 방문했다. 교육과 연수 목적의 방문은 21건, 318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국회사무처가 강원도의 유명 휴양지 주변에 또 다른 의정연수원을 짓고 있는 것.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정연수원은 4300여 명의 국회 직원 교육을 담당할 예정이다. 휴양을 주목적으로 하는 시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의정연수원의 예산 규모도 상당하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고성 연수원을 위해 책정된 최초의 예산은 336억여 원이었지만 예산 변경으로 현재 예산은 356억여 원으로 늘어났다. 18일 현재 집행액은 182억여 원. 예산 편성 초기부터 삭감 논란이 일었지만 오히려 예산이 증액된 셈이다.
국회사무처는 의정연수원에 수영장 시설까지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해 도중에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처음 계획 구상단계에서 수영장에 대한 의견은 있었지만 타 연수시설 사례 조사를 해본 결과, 운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설계 단계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취재팀이 숙소동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설악산 공룡능선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의정연수원에서 속초 해수욕장까지는 차로 15분 거리. 산과 바다가 의정연수원 건물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의정연수원이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직원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해도, ‘과연 이곳이 최선의 장소였을까’라는 질문이 현장을 떠나는 취재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강원 고성=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