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자 노정윤이 직접 안내한 2층방. 그곳에는 유니폼 트로피 축구공 등 각종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 ||
90년대 한국축구를 주름잡던 ‘노테우스’ 노정윤(38)의 얼굴은 밝았다. 간간이 한국을 오갔지만 2년 반이 넘도록 미국생활에 주력해온 노정윤이 <일요신문>에 처음으로 미국 집을 공개하며 최근 근황을 소개했다.
노정윤이 정착한 미국 남가주(서던 캘리포니아)는 골프의 천국으로 불린다.
노정윤의 집도 LA 다운타운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리버사이드 외곽의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에 골프장이 지천이다. ‘프로자격증을 땄다’, ‘축구가 아니라 골프티칭으로 나가려고 한다’ 등 골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먼저 물어봤다.
“아내(유영옥 씨)가 골프선수 출신이에요. 원재숙 프로와 동기인데 고교시절엔 랭킹 6위까지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골프를 즐겼고, 특히 결혼 후 아내 덕에 한층 골프에 빠지게 됐지요. 한때는 축구 훈련시간보다 골프연습이 많았던 적이 있었어요. 제가 워낙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데 골프 덕에 오히려 몸 관리가 된 셈이죠(웃음).”
노정윤은 93년 고려대 졸업 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J리그에 진출해 코리안 성공시대를 처음으로 열었다.
네덜란드에도 진출했지만 일본에서만 9년 동안 뛰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였고, 또 경제적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골프는 한국보다 환경이 좋은 일본에서 자연스레 접하게 된 것이다.
“프로요? 하하 미국에서 프로자격증을 땄다고요? 소문 참 우습네요. 그거 USGTF(미국골프지도자협회)를 말하는 거예요. 잠깐 한국에 나갔을 때 재미삼아 도전했고, 실기테스트를 통과한 거죠. 한국에서 한 거예요. 이론 교육을 받으면 정식자격증이 나오는데 제가 뭐 그게 필요 있겠어요. 그냥 냅두고 있죠.”
당연히 축구를 접고, 티칭프로의 세계에 뛰어든다는 소문도 사실과 달랐다.
“울산에서 은퇴(2006년)할 때 코치 제의도 정중히 거절했어요. 가족 교육 문제도 있었지만 영어도 좀 배우고, 지도자로 준비가 될 때까지 개인적으로 시간을 갖고 싶었죠. 축구로 받을 수 있는 지도자 자격증은 이미 다 받아놨어요. 영주권 등 미국에서 가족들의 생활이 안정되면 한국으로 들어가서 축구할 겁니다.”
골프실력은 얼마나 될까? 스스로 밝힌 핸디캡은 1이다. 파72코스에서 평균 73타를 친다는 얘기다. 마음먹고 때리면 드라이버샷은 300야드가 넘고, 아이언샷과 쇼트게임도 아주 정확하다. 한마디로 준프로급 실력임에는 틀림없다.
노정윤은 오히려 큰아들 건형(14) 군이 요즘 아주 골프에 푹 빠졌다며 선수로 키워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장남은 자신을 닮아 운동신경이 좋고, 또 긴 팔다리에다 키도 180cm가 넘어 미국학교에서 무조건 운동을 시키라고 난리란다.
노정윤의 집은 새로 개발된 고급주택단지에 위치했다. 대저택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제법 좋은 수준의 단독주택이었다.
“집 뒤 테라스 보이시죠. 저쪽으로 걸어올라가는데 제가 재료를 구해와서 직접 만들었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2층의 방 하나에는 자신의 축구인생을 보여주는 유니폼 트로피 축구공 등 각종 기념품이 따로 전시돼 있었다.
노정윤은 미국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선수생활을 워낙 오랫동안 한 까닭에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했는데, 요즘 모처럼 아내와 1남2녀 세 아이들과 편안한 삶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큰 아이는 일본어를 조금 해요. 일본에서도 국제학교에 보냈는데 아무래도 미국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었어요. 그게 운동하는 아빠를 둔 탓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아빠를 자주 못 본 아이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도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연봉 없이, 대가족이 물가가 높은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부담이 클 듯싶었다.
“하하, 저 한국에 작은 건물도 있고 그래요. 일본에서 뛸 때 한 5년인가 정말이지 알뜰하게 돈을 모았어요. 은퇴 후에도 좋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였죠. 결국 일본에서 벌어서 미국에서 쓰는 셈인데, 그럭저럭 살 만합니다.”
원래 목표로 했던 영어공부나 지도자수업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노정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일본은 젊을 때 간 까닭에 말을 쉽게 배웠죠. 그런데 영어는 나이 들어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홍)명보 형을 비롯해, 유상철 김태영 등 미국에 온 축구 국가대표선수들이 제법 있어요.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축구지도자로 뭐 하기에는 많이 힘들어요.”
당연히 노정윤은 한국으로 돌아가 축구지도자 인생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홍명보(청소년대표팀 감독), 황선홍(부산 감독) 등 바로 윗 선배들은 물론이고 강철(부산 코치) 김태영(19세대표팀 코치), 최문식(포항 코치), 이임생(수원 코치) 등 동기들이 한국축구 새로운 지도자그룹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똑똑한 스타플레이어’인 데다가 한국 축구계에서 ‘로열’로 불리는 부평고-고려대 출신이기에 ‘지도자 노정윤’은 아직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노정윤의 최대 고민은 가족들의 미국생활이다. 영주권을 받아야 아이들의 향후 교육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가족들이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제가 다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하죠. 축구팬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미국에서 좀 재충전하고, 또 가족들에게 봉사한 후 한국으로 돌아가 선수시절 받았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말입니다.”
노정윤의 별명은 ‘노테우스’다. 워낙에 아시아 최고의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린 까닭에 독일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마테우스와 비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쉼없이 달리는 플레이스타일로 인해 ‘기관차’로도 불렸다.
2009년 가을 현재 노테우스 기관차는 확실하게 멈춰 있다. 하지만 나름 이것저것 정비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축구장으로 돌아올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리버사이드(미국 캘리포니아주)=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