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계획을 완전 철회할 방침을 밝혔다. 최 총장은 “오전 9시 교무회의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의 전면 폐지를 결정하고 결재를 마쳤으며, 교육부 측으로부터 이화여대를 제외한 9개 대학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 사업(평단사업)을 진행키로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발한 이화여대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진행한 지 일주일 만의 일이다.
이화여대는 재학생 및 졸업생들의 반발로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계획을 완전 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일 이화여대 재학생 및 졸업생들의 ‘졸업장 반납 시위’.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바로 이틀 전인 1일 기자회견에서 최 총장은 “이미 이사회 승인까지 난 사업을 되돌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다”며 미래라이프 대학 사업 철회에 대한 확답을 피해 왔었다. 이처럼 이틀 만에 학교 측이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은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사태가 비단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최 총장의 동문을 비롯한 졸업생들과 교수, 전국교육대학생연합과 전국대학총학생회까지 이화여대의 독단적인 결정에 대해 반기를 들고 성명서를 제출하면서 학교로서는 벼랑 끝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학내 의견 수렴 과정의 부재와 학교 재정 악화라는 숨겨진 문제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 사업을 강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이화여대 미래라이프(LiFE: Light up your Future in Ewha) 대학 사업은 교육부가 올해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온 ‘평단사업’에 선정되면서 내년도 1학기 시행을 위해 오는 9월부터 신입생을 받을 것을 계획했다. 평단사업은 고교 졸업자들이 취업 후 원하는 시기에 언제든지 학업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선취업 후진학’을 목적으로 올해 처음 도입된 사업이다. 대학별로 연간 30억 원 내외의 사업 예산이 지원되며, 이화여대는 고졸 여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 대학을 설립해 뉴미디어산업전공(미디어 콘텐츠 기획·제작)과 웰니스 산업전공(건강·영양·패션) 과정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대해 “근본적인 교육 제도의 변화 없이 무분별하게 남발된 졸속 교육 정책”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여성의 재교육을 위한 평생교육원이 이미 대학 내에 설립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단과대학이나 교육기관과 중복되는 과정을 새로 만드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학위를 판매하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단과대학 신설이라는 중요한 사안을 학생들은 물론 교직원들조차도 농성 직전까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들의 지적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지난 7월 28일 본관 점거 농성을 통해 처음으로 평의원(교수)들과 미래라이프 사업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날은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에 따른 학칙 개정을 위해 평의원회가 열렸으며, 학생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강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화여대의 평단사업 지원에 대한 석연치 않은 이유가 밝혀지면서 학생들은 더욱 반발했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추진 과정에서 학내 의견 수렴 과정 부재와 학교 재정 악화 문제까지 불거졌다. 지난 2일 이화여대 본관 건물 앞에 이화여대를 규탄하는 피켓이 걸려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페이스북 페이지 ‘세이브 아워 이화(Save Our Ewha)’는 이날 학생과 평의원들 간의 대화를 녹취한 영상을 페이지에 게시했다. 영상에는 평의원 2명이 “교육부에서 짧은 기간 동안에 (평단사업)신청서를 쓰라고 압박했다” “작년에 1000억 원 상당의 적자가 발생해 학교가 절박한 상황이다”라고 언급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학이 재정 적자를 이유로 교육부 재정 지원 사업을 신청했고, 단기간에 신청과 선정이 이뤄지면서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지난 5월 11일 교육부의 평단사업 추가 접수부터 지난달 15일 이화여대가 선정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단 2개월에 불과했다. 오는 9월부터 신입생을 모집해 과정을 운영하는 점까지 고려해도 학교에 주어진 시간 역시 길게 잡아봐야 2개월 남짓이다. 정부 지원금을 위해 사업 선정에 ‘올인’했던 학교가 그 짧은 시간 안에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없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미래라이프 대학 사업 계획서 제출 사흘 전이었던 지난 6월 7일, 대학평의원회에서 한 평의원이 “사업에 대해 학생들에게 공론화해 의견을 수렴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언급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재정 악화 문제의 경우 역시 학교 측의 공식 해명은 아니더라도 평의원회에서 거론될 만큼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화여대는 올해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재정 지원 사업을 전부 싹쓸이했다. 올해 이화여대가 선정된 재정 지원 사업은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CORE, 코어사업), 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PRIME, 프라임사업)이다. 각각 3년 동안 96억 원과 연간 50억 원의 지원금을 받으며, 지난 7월 15일 추가로 선정된 평단사업을 통해서는 연간 30억 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최소 3년 동안 이화여대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금액은 총 336억 원에 달한다. 재정난이 문제였다면 이처럼 학교 측이 정부의 재정 지원 사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하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 측이 언급한 재정 적자 문제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이화여대는 2014년 기준 8442억 원의 적립금을 보유해 전국 사립 대학교 가운데 1위를 차지했던 바 있다. 지난해 대학 입학전형료 수익은 전국 3위로 7억 1924만 원 상당이었으며, 2016년 평균 등록금은 847만 1900원 상당으로 전국 사립대 가운데 3위에 올랐다. 이처럼 외부로 공개된 재정 규모나 수입 등이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를 운운하며 지원금을 미끼로 한 대학 구조조정에 가장 먼저 앞장서고 있어 더욱 큰 반발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화의료원의 만성 적자와 병원 등 신축 건물 신설로 인한 재정 위험을 학교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화의료원은 2018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마곡지구 제2부속병원(마곡병원)과 의과대학을 신설하고 있다. 투입되는 예산은 대략 6000억 원 상당으로 부지 매입비용만 2000억 원이 소요됐다. 이 가운데 1100억 원은 이대 동대문병원 매각비용으로 충당했다. 건축비는 903억 원이 투입되며, 이화의료원이 별도로 180억 원의 공사비를 분담하기로 했다. 지출되는 비용 가운데 이화여대 의과대학이 분담한 금액은 484억 원 상당이다. 1차 모금 운동으로 지난해 9월 기준 90억 원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턱없이 모자란 건립 비용 충당을 위해 지난해에는 이화여대가 은행에서 약 3000억 원을 대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미 이화여대 부속 목동병원의 지속적인 적자를 경험했던 이화여대가 마곡병원 신설로 거액의 자금이 유출되면서 재정에 무리가 온 것이 아니냐는 게 학생들이 제기한 의혹이다. 이외에는 8000억 원에 이르는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던 이화여대가 재정난을 운운하며 지원 사업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평의원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3년 전 적립금 최고치를 찍은 뒤 등록금 동결 등 문제로 매년 학교 재정이 적자를 보이고 있다”라며 “이화여대의 경우는 최근 기숙사, 단과대학 등 건설비로 많은 돈이 지출됐다. 이대로 5, 6년 지나면 적립금이 0원이 될 수도 있어서 각 대학들이 모두 생존 경쟁으로 재정 지원 사업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쓰여야 할 자금이 정확한 사용처와 경위도 모른 채 사라지고 있고, 학교 본부는 막연하게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국가사업에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다”며 “학교 본부는 그 많은 적립금과 이자가 어디로, 어떻게 사용됐는지 공개함으로써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