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군 영내매점(PX) 운영 과정에서 부당한 거래가 포착됐다. 불법과 꼼수로 들여온 물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었던 것. 당시 국군복지단 고위 실무자로 근무하던 민진식 대령은 군 내부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없었다. 진상 파악은 물론, 개선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앞서의 대령은 ‘공익 제보’에 나섰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감사원 등 군 외부 기관을 통해 PX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한 것. 민 대령의 공익제보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고 만연하던 PX 관련 비리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업체 관계자들은 모두 처벌받았다.
그런데 민 대령의 선·후배 등 지인들에 따르면, 공익 제보를 한 그가 오히려 각종 수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로 불리던 그가 군 내부에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 것. 고발 이후 강제 보직 전환, 개인 비리가 있다는 소문, 국방부의 거듭된 징계 ‘시도’ 등으로 그는 지속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이를 두고 민 대령 측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군의 보복성 징계”라고 주장하지만, 국방부는 “적법한 징계”라고 맞서고 있다.
# ‘바가지’ 씌우는 PX?
국군복지단은 지난 2011년부터 PX 신규 납품 품목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판매가 최고 할인 제도’를 도입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가격과 비교해, PX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할인 비율이 높을수록 물품이 선정되는 방식이다. 당시 민 대령은 납품 업체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군납업체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물품을 대상으로 판매가를 부풀려 허위 영수증을 만든 뒤, 낙찰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군 장병들이 할인은커녕 시중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물품을 구입하고 있었다.
<일요신문>이 민 대령의 지인들을 통해 입수한 당시 문제가 된 훈제치킨 영수증을 예로 들면, PX 판매 가격은 5600원, 시중가는 무려 2만 5000원이었다. 원래 물품 가격에서 72%를 깎아 납품하겠다고 한 점이 최고 가산점을 받아 군납업체로 선정된 것이다. 그런데 시중에서 앞서의 훈제치킨은 거의 찾을 수 없는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으며 실제 판매 가격도 1만 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민 대령은 이러한 의혹을 지난 2012년 11월 국방부 감사관실과 군 검찰에 제보했다. 그런데 결과는 무혐의 처분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다. 민 대령은 곧 서울서부지검에 별도의 형사 고발을 했다.
이후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통해 PX 납품 비리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허위 영수증을 발급한 의혹을 받은 마트 측에서, 원래 가격보다 턱 없이 높은 가격으로 허위 발급한 사실을 인정했다. 영수증 단말기 프로그램 상에서 메뉴 등록 값을 바꿔 손쉽게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증언도 속속 나왔다.
파문이 확산되자 국방부는 지난 2014년 “군 PX 상품 고가 판매, 납품 비리 등의 제하로 보도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국군복지단 자체 가격 조사를 통해 판매가격 조작이 의심되는 품목은 사전에 계약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 국방부 납품비리 부인,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는 국방부 발표와 정 반대였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2014년 10월 판매가를 부풀린 허위 영수증 비리 관련자 11명을 기소했다. 예비역 중령인 국군복지단 근무원은 입찰 정보 등 제공 명목으로 3000여 만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비리에 연루된 대부분의 제조업체 관계자들이 물품 가격을 부풀린 허위 영수증과 거래 실적 자료를 제출한 사실도 적발됐다.
민 대령은 이후 국민권익위원회에 ‘복지단 납품 비리에 대한 국방부의 묵인 규명’ 민원을 제기했다. 국군복지단의 관리 소홀에 대한 문제점과 국방부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 조치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PX 납품 관련 책임자로 수차례 결재를 했던 복지단장과 담당 과장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이와 관련 복지단은 감사원에서 “징계업무가 잘못됐다”며 기관주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또한 내부 고발자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민 대령의 각종 민원과 소송 문건 등에서 그가 “내부 고발 이후 국방부로부터 보복성 대응으로 의심되는 일을 겪으며 압박을 받아왔다”고 호소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 대령을 잘 알고 있는 한 예비역 장교는 “본인도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현재 상황은 상상을 벗어날 정도로 가혹하다는 게 민 대령의 반응이다”라며 “국방부가 비리 의혹 조사보다 민 대령을 흠집내는 데 치중한다고 여기고 있다. 당사자가 많이 괴로워했다”고 귀띔했다.
# 내부 고발자 또는 배신자
민 대령은 비리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인 지난 2012년 11월, 국방부에 무보직으로 파견됐다. 이를 두고 민 대령 측은 ‘강제 전출’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예정된 보직 기간이 되기도 전이었지만 비리 의혹의 중심에 있는 복지단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 강제로 발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후 2013년 5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무보직 파견 기한이 연장됐다.
또한 민 대령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한 민원서류를 보면, 내부 고발 이후 민 대령을 대상으로 4건의 징계 요구, 3건의 뇌물 수사 의뢰가 무보직 파견 시기에 갑자기 쏟아졌다. 특히 민 대령은 민원을 통해 “‘민 대령도 뇌물 수수 등 비리를 저질렀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전파됐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조직을 괴롭힌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다수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 대령은 국방부 회의록 등을 근거로 군 내부에서 자신이 ‘하극상, 군 기강 문란 행위자’로 지목돼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 대령을 둘러싼 징계 요구 및 뇌물 수사 의뢰와 각종 소문은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뇌물을 줬다는 사람도 없었고, 입증할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 ‘상관 복종 의무 위반’에 대한 징계 요구는 인정됐다. 이로 인해 지난 2013년 5월 ‘감봉 3개월’의 징계가 내려졌다. 이는 지난 2012년 7월 민 대령이 상관인 국군복지단장이 최종 결재한 보고서의 지시 사항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 대령은 한 대기업 계열의 마트 입점이 경남의 한 군인아파트 쇼핑타운 내에서 수의계약 형태로 진행하는 내용을 보고, 국유재산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수의계약 대신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 국방부는 이를 두고 민 대령이 복지단장의 지시 사항을 어긴 것으로 본 것이다.
민 대령 측에 따르면 그는 이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군 예산 낭비와 현행법 위반 우려가 있어 처리한 업무가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징계 조사 과정에서 국방부는 복지단장 지시에 대한 근거 자료도 제출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민 대령은 오히려 징계 처분이 내부 고발에 대한 보복성 대응의 일환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민 대령은 국방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11월 승소했다. 민 대령에 대한 징계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민 대령의 복종 의무 위반은 인정했지만, 이것이 적법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점 등을 참작하면 징계 처분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판결 근거에서 ‘보복성 징계’ 의심을 포함시켰다. 재판부는 징계 전후 사정을 검토해, 국군복지단장이 지난 2012년 8월 앞서의 복종의무 위반과 관련해 민 대령에 대한 징계 처분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내부 고발이 본격화된 이후 징계 의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을 근거로 들며 “징계 처분의 동기가 민 대령의 복종 의무 위반만을 문책하려는 것인지에 관해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민 대령이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 소송 판결문 일부. 2014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징계 처분은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징계 처분 동기가 복종 의무 위반만을 문책하려 한 것인지에 대해 의심이 든다고 판시했다.
# 반복되는 징계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해 3월 민 대령에게 다시 징계를 내린다. 행정법원의 징계 취소 처분이 내려진 사안 그대로 다시 ‘근신 10일’ 처분을 한 것이다. 민 대령의 한 지인은 기자와 만나 “당시 국방부는 ‘행정법원의 징계 취소 판결은 양형 기준이 과하다는 내용이었다’는 입장이었다. 법원에서 징계 사유는 인정했으니, 군 인사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징계 수위를 낮춰 다시 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 대령은 다시 행정법원에 재징계 처분도 부당하다며 ‘행정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지난 7월 19일 재판부는 “징계 사유는 인정된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민 대령 측은 “여기에 불복해 다시 소송을 제기하면 국방부는 이번 법원 판결을 근거로 또 다시 같은 사안으로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은 내부 고발에 대한 보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긋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합당한 징계를 내렸다”며 “소송이 진행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 내부 고발자들의 수난
일각에서는 군 내부에서 어려움을 겪는 내부 고발자가 민 대령뿐만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 대령의 내부 고발 이후 상황이 지난 2009년 해군 납품 비리를 고발했다가 곤경에 처해야 했던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의 경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김 전 소령은 계룡대 근무지원과장으로 근무하는 과정에서 해군 납품 비리를 군 내부에 공익제보했다. 하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김 전 소령이 언론을 통한 양심선언에 나서 파문이 확산된 이후 재수사를 통해 비리가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김 전 소령은 각종 징계 처분과 동시에 한직을 전전하다 끝내 군복을 벗었고, 올해 비영리 단체인 국방권익연구소를 개설했다.
김 전 소령은 <일요신문>과 만나 “군 내부의 각종 부패 행위는 곧 국가와 국민의 피해로 연결된다. 특히 군은 다른 조직보다 공익제보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미흡하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할 때 내부 고발자를 보호해주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