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추다르크로 불린다.
‘애칭 정치’의 중심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있다. ‘추다르크.’ 추미애와 잔다르크의 합성어다. 본인도 이 애칭에 아주 흡족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자신의 고향인 대구에서 DJ를 지지해달라는 유세단을 이끌면서 애칭이 붙었는데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이념을 초월해 전직 대통령의 묘를 참배하면서 국민대통합 동선에 거침이 없다는 평가와 합쳐져 더욱 자주 쓰이는 모습이다.
여권에서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무대’가 가장 많이 회자된다. 정치권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름보다는 그의 별칭을 쓴다. ‘무성대장’의 준말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를 지휘하면서 붙었다는 얘기가 정설이다. 일부는 ‘무식대장’으로 폄하하기도 하는데 김 전 대표 본인은 자신의 별칭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7월 전당대회 직후 김 전 대표는 자신의 별칭에 대해 ‘마초’(macho)의 이미지가 심하다고 했고, 측근들은 당시 ‘MS’로 불러달라고 은근히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지난 20대 총선 공천 당시 정두언 전 의원이 “김 전 대표의 이야기는 30시간밖에 가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일부는 ‘30시간의 법칙’이란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부각되고 있는 별칭 중에는 김종인 전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제할배’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경제민주화’를 넣은 장본인으로 1940년(77세)생의 올드보이라는 느낌과 함께 별칭이 만들어졌다. 본인은 할배라는 호칭을 싫어하면서도 ‘경제’라는 단어는 흡족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유대’로 불린다. 말 그대로 이름과 전 직책의 조합인데 ‘무대’와 ‘유대’가 매칭이 되면서 본인은 썩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얘기가 있다. 유 의원을 좋아하는 그룹을 ‘유빠’라고 하는데 이는 방송인 유재석 씨를 추종하는 세력의 ‘유라인’ 혹은 ‘유빠’를 차용했다는 설이 있다. 일부가 김무성 전 대표와 그를 묶어 ‘MSM’이나 ‘K-Y라인’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서청원 전 최고위원은 ‘서 대표’다. 2002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한 뒤 꾸준히 그렇게 불리고 있다. 친박계 대주주 혹은 맏형 격이라는 의미까지 최근에는 더해졌다. 여권 친박계가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름장어.’ 쟁점이 될 법한 현안이나 자신을 둘러싼 구설수에서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비유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해외 언론은 그를 ‘미꾸라지‘라 칭하기도 한다. 친박계 핵심으로 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던 최경환 의원은 ‘초이’(Choi)다. 자신의 경제정책이 ’초이노믹스‘라 불리면서 그런 별칭이 붙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당이 모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은 좋지 않은 의미로 ‘손학새’로 불린다. 하지만 손 고문은 자신의 이니셜인 ‘HQ’로 불리길 원했다고 한다. 행복지수(Happiness Quotient)를 의미하니까 좋지 않느냐는 해석을 스스로 붙였는데 원하던 만큼 입에 감기지 않았다. 손학새는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자신이 붙었던 한나라당 대선 경선 이후 당적을 변경하면서 생겼지만 그의 면전에서 그렇게 부르는 이는 없다.
스스로 애칭을 만들다 오히려 비아냥거림이나 조롱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 당시 자신을 ‘우아한 독종’이라 자칭했다가 반응이 좋지 않아 그 뒤 단 한 번도 이 애칭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최근 ‘홍트럼프’라 불리는데, 미국의 대선 후보로 나선 트럼프와 자신의 성이 붙은 것으로 꼴보수의 이미지가 강하게 함축돼 있다는 평가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노무현의 오른팔’이라 불리고 있고,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양산 호랑이’ ‘노무현의 그림자’ ‘영원한 비서실장’ 등 다소 긴 애칭이 여럿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는 정치권에서 ‘찰스’로 불린다.
그렇다면 왜 영문 이니셜의 시대가 가고 별칭이 남발하는 정치권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GH’라 잠시 부르던 때가 있었지만 입에 붙지 않아 어느 날부터 흐지부지됐다.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두고 일부에선 ‘WC’는 절대 안 쓸 것이라 우스갯소리를 한다. 화장실을 뜻하는 단어를 설마 쓰겠냐는 것이다. 원 전 원내대표를 두고 일부는 ‘큰바위 얼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듯 발음이 불편하거나, 이니셜이 다른 의미를 가질 땐 크게 회자하지 않는다.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칭한 ‘MB’는 ‘메가바이트’라는 뜻과 합쳐지면서 ‘2MB’의 조롱조로 통용됐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MJ로 불리긴 하지만 유명하진 않다.
일각에서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YS,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JP를 두고 핍박받는 정치인에게 이니셜이 붙었다는 말을 한다. 억압받던 시대에 이들의 이름을 직접 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니셜을 따 부르다 별칭이 됐다는 얘기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GT로 불렸고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정치인들은 GT계로 분류된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애초에 ‘PP’(President Park)로 불리다 유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 역시 박 전 대통령에겐 핍박이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본인 스스로는 ‘HC’로 불리길 원했다고 전해진다. ‘창(昌)’이라는 별칭이 날카롭고 유연하지 못하다는 이미지가 있다면서 좋아하지 않았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2년 대선에 나섰을 당시 언론에 ‘CY’라 써달라고 했지만 오래 쓰이진 않았다. 2007년 대선에 나섰던 정동영 전 의원은 ‘DY’를 고집했지만 이니셜까지 쓸 정도로 거물은 아니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 ‘MH’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스스로 이니셜을 쓰는 정치인과 다른 정치를 하고 싶다며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대신 ‘노짱’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니셜을 꼭 써야 했다면 ‘Roh’라 썼다.
이정필 언론인
3선 당대표 밑에서 할 게 없다고? 새누리 중진들, 대선 출마 검토 속사정 ‘이번 판에는 나도?’ 대선 후보 구인난에 시달릴 것 같았던 새누리당이 정반대 분위기 조짐이다. 몇몇 4선 이상급 국회의원들이 19대 대선 트랙에 나올 채비를 하면서 다자 대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5선의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부쩍 의원들과 정치부 기자 스킨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오찬 회동은 물론, 자신의 의원실과 다른 의원실을 오가며 30분씩 차기 대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 등 SNS 정치도 활발히 재개했다. 여권의 뜨거운 감자가 된 ‘모병제’ 논란에 대해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위협으로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모병제 논란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글을 남겼다. 무엇보다 원 의원은 최근 추석 명절 선물로 천연조미료 세트 ‘해통령’을 대거 돌렸는데 뒷말을 낳고 있다.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뜻을 ‘해통령’에 담아 보낸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한 정가 인사는 “정치적 의미가 담기지 않은 정치적 행위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충청 대망론’을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4선의 정우택 의원은 사실상 대권 도전을 선언한 것과 같다. 싱크탱크 역할을 할 사단법인 ‘더좋은나라전략연구소’를 세우고 창립세미나까지 가졌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새로운 인물이 대선에 나서야 한다며 본인이 적임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정 의원이 충청대망론을 놓고 일합을 겨룰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다들 반 총장 편을 든다. 정 의원은 전략연구소 자리를 두고 역대 대선 후보들이 거쳐 간 국회 앞 빌딩을 여럿 수소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새누리당 전당대회 국면에서 당권보다는 대권을 시사한 4선의 나경원 의원도 대권 플랜을 짜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지난달 나 의원은 국회에서 ‘포용과 도전 모임(포도모임)’ 창립총회를 열고 보수개혁과 계파해소의 선봉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전대 당시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며 불출마한 그는 이번에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삼고초려되면서 대권 후보군도 영입해야 할 임무를 맡게 됐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 4선 이상 의원은 모두 19명. 이 중 서청원 의원(8선)은 하반기 국회의장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5선에선 원 의원 외에 이주영 정병국 심재철 정갑윤 의원이 있지만 이·정 의원은 최근 전대 당대표 경선 낙마로 내상이 깊은 상태이며 정 의원은 하반기 국회의장직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심 의원은 현재 국회 부의장이다. 4선 중 유기준 김재경 한선교 의원은 당 원내대표 경선과 당대표 경선에서 떨어져 대권 주자로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조경태 의원은 더민주에서 새누리당으로 옮긴 게 최근이고, 친박 색채가 강한 최경환 홍문종 의원은 총선 참패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군현 의원은 보좌관 월급을 빼돌린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이렇게 따지면 4선 이상급에서 대권 후보로 나올 의원은 거의 다 나온 상태다. 잠재적 세 후보를 합쳐 여권에선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와 반 총장까지 크고 작은 구룡(九龍)의 할거가 시작될 조짐이다. 고 성완종 전 의원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으로 1심에서 1년 6개월형을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도 대선 출마 의지를 접지 않고 있어 여권 내 현재 대권 주자는 열 손가락을 다 써야 할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당 일각에서는 “3선의 이정현 대표가 취임하다보니 4선 이상이 할 일과 할 수 있는 직책이 사라졌고, 그래서 대선 출마로 인지도를 높여보겠다는 취지가 아니겠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수억 원의 경선 기탁금을 내더라도 언론과 여론의 조명 속에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