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최 씨를 수차례 만난 적 있는 전직 캠프 관계자는 “강남 등지에서 수차례 만나 최 씨의 부동산 등 재산 내역에서부터 대통령과의 인연, 향후 관계, 의혹으로 제기된 재단 및 재산, 해당 시점에서의 관계 등등을 면밀히 물었다”면서 “당시에도 부동산 등 재산이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 씨의 키나 몸집의 모양새, 목소리 등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 씨는 중복되는 질문에도 일관성을 띠고 말해 거짓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 속속 드러나는 최 씨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당시 진술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다음은 최 씨의 소명진술이다.
최순실 씨가 2013년 7월 19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 사진제공=한겨레
Q. 박 후보는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 최태민과 그 가족, 친인척과는 아무 접촉도 않는다고 했다.
A. 박 후보와는 가까이 있을 이유가 없다. 박 후보 역시 우리 가족과 가까이 있을 이유가 없다. 박 후보는 우리 집 위치도 모른다. 서로 왕래한 사실이 없다(하지만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이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른바 ‘최순실 타운’에서 박 후보와 최 씨의 집, 여러 사무실은 거의 몇 백 미터 반경 안에 다 있다).
Q. 박 후보가 당신을 회계책임자로 하고, 남편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한다는데.
A.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Q. 영남대 운영에 관여한 조순제 씨는 최태민의 다섯 번째 부인의 전남편 소생으로 나와있다. 그를 아는가.
A. 조순제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다. 그 사람 자체를 모른다(여기서 조순제는 실제 최태민의 의붓아들로 최 씨는 그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조 씨는 2007년 경선 당시 ‘박근혜는 절대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는 성명서를 막판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
다음은 당시 박 후보 경선 후보 검증 당시 청문회에서의 답변이다.
Q. 최태민의 이름이 7개고 결혼도 6번했는데 알고 있었나.
A. 누구를 만나 일을 할 때 결혼을 몇 번 했는지 자녀가 몇인지 이름을 바꿨는지 알 수 없다.
Q. 최태민이 박 후보 이름을 팔아서 금품을 받았다는 40여 건의 비리가 있다.
A. 아버지(박정희)께서 직접 조사하셨지만 확실하게 나온 것이 없고 실체 없는 이야기로 끝났다. 횡령이나 이권에 개입했다면 엄격했던 아버지께 보고가 됐을 텐데 잘못이 있다고 나온 적이 없다. 실체가 있었다면 마땅히 처벌받았을 것이다.
Q. 최태민과 관련해선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천벌을 받을 짓이라는 말도 했다는데.
A.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최태민의) 아이가 있다는 등의 얘기까지 나왔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천벌을 받을 일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만약에 그 아이가 있다는 근거가 있다면 그 아이를 데리고 와라. DNA검사 해줄 수 있다.
최근 2007년 당시 박 후보 의혹 검증 지휘자였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와 최태민과의 관계를 밝히면 온 국민이 며칠은 구토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을 두고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8대 국회 당시 국회 의원회관의 친이계 의원 사무실에는 박 후보 의혹과 관련한 책자들이 보관돼 있었고, 그중에는 ‘박근혜와 최태민’이란 제목의 보고서도 꽂혀 있었다. 약 1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제본된 형태로 겉표지는 파란색에 가까운 하늘색이었다. 정 전 의원은 “당시 우리 캠프에서 박 후보에게 꼭 검증해야 한다면서 입수했던 자료들이 일부 온라인으로 돌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제본을 가지고 있던 옛 친이계 의원은 “18대 국회까지는 우리들(친이계)이 마치 트로피와 같은 마음으로 그런 검증 보고서들을 책장에 꽂아놓거나 서랍에 넣어두었지만 19대 국회가 들어서고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대부분 폐기처분하거나 숨긴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국회 의원회관이 증축되면서 의원 사무실을 옮겼고 그렇게 당시의 낡은 보고서들을 폐기해버렸다고 말했다.
만약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생산한 보고서가 발견되거나 유출된다면 정 전 의원의 말처럼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셈이 된다. 국민이 경악할 만한 내용이 그 속에 담겨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캠프가 최태민 씨와 관련한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지 않은 것은 내용이 정상적이지 않아 국민 누가 알게 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 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를 영생교, 사교, 주술 등 종교적인 시각으로 보는 흐름도 적지 않아 그때와 달리 신빙성을 얻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궁지에 몰린 원조 친박들은 최근 거의 매일 숨죽이며 삼삼오오 모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는 친박계 핵심인 세 의원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은 비박계가 요구하고 있는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댐에 구멍이 나는 것처럼 나비효과를 몰고 올 것이라며 강하게 제동을 걸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대표가 물러날 경우엔 불똥이 청와대의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을 비롯해 내각의 친박 성향 국무위원에게도 튀어 ‘도미노 사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당정청, 즉 정권의 삼각축에서 친박계가 패권을 모조리 잃는 것이 되고 차기 대선에서 이렇다 할 힘도 써보지 못하고 멸종할 수 있다는 지옥행 시나리오가 쓰일 수밖에 없다.
10월 2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은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순실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고 대답했다. 김 수석은 “(2007년 당시)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 측이) 문제를 제기할 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그때 (검증하기 위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그렇다. 2007년 경선 때 박 대통령의 주위에 있었던 원조 친박계는 김 수석의 말처럼 최 씨를 만난 적이 있거나, 그 존재를 알고 있다.
같은 날 오전 김무성 전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니 (당시) 박근혜 후보 옆에 최순실이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사람이 어디 있겠냐. 다 알았다”면서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본 적이 없다”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몰랐고 그 옆에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김 수석의 대답은 그날 오전 김 전 대표의 대답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 그리고 둘을 아는 그때 그 사람들. 과연 그들을 둘러싼 진실은 어디까지 밝혀질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
‘비선모임 팔선녀’ 소문에 정치권 발칵…‘나는 뭣도 아니었네’ 일부 측근들 멘붕 의혹이 확대재생산 일로에 있는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정치권을 가장 크게 뒤흔든 것은 다른 것도 아닌 ‘팔선녀’라는 비선 모임의 등장이다. 아직 그 실체 유무에 대한 진상 규명은 되지 않았지만 ‘팔선녀’라는 명칭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라는 게 정가 다수 인사들의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대통령이 사실상 차기 대선 주자로 확실한 입지를 굳힌 지난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대선 경선 이후부터 지금까지 10년 간 박 대통령 의중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내려오는 원로 자문그룹 7인회, 친박 핵심 모임, 문고리 3인방을 중심으로 한 십상시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이른바 박심(朴心)에 관한 동향 파악이나 언론의 취재는 그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들의 이야기가 국민에게 전달돼 왔다. 하지만 팔선녀의 등장으로 모두 거짓 보고가 되거나 오보가 될 처지에 내몰렸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 26일 당 회의석상에서 “비밀 모임 팔선녀를 이용해 막후에서 국정 개입은 물론이거니와 재계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엽기적인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며 “낮의 대통령은 박근혜, 밤의 대통령은 최순실이었다”고 주장했다. 언론 보도를 인용했다 하더라도 제1야당 대표가 실체에 대한 신빙성 있는 사실 확인 없이 주장으로만 일관하진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발언 직후 정치권은 팔선녀 멤버 파악에 전방위로 나섰다. 그리고 가장 그럴 듯한 8명의 이름이 짜 맞춰졌다. 거기에는 대기업 회장, 재벌 총수의 아내, 고위 공직자의 처, 금융권 실세였던 인사의 와이프, 전직 대선 캠프 여성 관계자 등의 이름이 들어있다. 그리고 팔선녀 회동은 강남의 한 여성 전용 사우나에서 이뤄졌으며 거기에서 나온 이야기가 정치권과 재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보도와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최 씨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팔선녀는 소설이고, 그런 그룹을 만든 적도 없다”고 밝혔음에도, 팔선녀가 세간에 회자하면서 해당 사우나는 문을 닫았고 소문은 사실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 현경대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국회의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7인회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를 두고 한 정가 인사는 “박 대통령과 간헐적인 회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자문이 먹혔다고 그들 스스로 이야기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했다. 청와대에서 만찬을 자주 했던 친박계 핵심의 전 중진 의원은 “언론에서 그럴 것이다라며 우리 멘트를 많이 가져갔지만 우리는 한 번도 우리가 박심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언론이 믿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가져갔을 뿐이지 책임이 없다는 얘기였다. 최 씨의 등장과 함께 그녀와의 연관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을 두고도 소위 ‘멘붕’에 빠진 정치권 관계자들도 다수다. 친분이 두텁다고 생각했던 그들로부터 한 번도 최 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순실 사태가 발발한 직후부터 두문불출하는 청와대 인사들이 누군지 파악하느라 혈안이 되고 있다고 한다. 진정 ‘배신의 정치’가 자욱하게 퍼지고 있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