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대선 개표를 지켜보던 미국인들은 그야말로 놀라움을 넘어 충격에 빠졌다. 모두가 설마했던 일이 사실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70)의 당선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그동안의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예측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69)은 트럼프보다 많게는 두 자릿수 포인트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심지어 <CNN>은 91%, <뉴욕타임스>는 84%로 클린턴의 압승을 점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번 대선의 승자는 클린턴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트럼프가 29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232명을 확보한 클린턴을 가뿐히 누르고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을 완전히 뒤엎고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사진은 9일 당선 수락 연설 모습. AP/연합뉴스
어떻게 이런 반전이 일어났던 걸까. 이번 선거 결과의 예측이 빗나간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앞다퉈 ‘숨은 백인표’를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침묵하는 다수’ 혹은 ‘수줍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내내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가 투표 당일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럼 이들은 왜 당당하게 ‘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에 전문가들은 혹시 비난을 받거나 소외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모두가 경멸하고 조롱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론도 한몫했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합세해서 트럼프를 가리켜 인종차별주의자, 여성혐오자, 동성애 혐오자, 심지어 성추행범이라고 공격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럼프의 악행에 관한 새로운 뉴스를 쏟아냈다. 사정이 이러니 앞장서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서는 용기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만일 트럼프 지지를 선언할 경우, 천박하거나 부도덕한 사람으로 인식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이런 마음을 조용히 숨기고 있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투표소에서 몰래 혼자 표현했다(이런 까닭에 일부에서는 주류 언론들의 클린턴에 대한 편향된 보도가 오히려 클린턴에게 역효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렇게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켜 ‘브래들리 효과’라고 부른다.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흑인 출신의 LA 시장인 톰 브래들리는 백인 후보였던 조지 듀크미지언보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었다. 심지어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도 승리가 예상됐었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달랐다. 결국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브래들리가 1.2%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던 것. 이에 전문가들은 일부 백인 유권자들이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도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전문가들은 많았다. 변호사에서 코미디언 겸 작가로 변신한 매트 슈나이더는 “11월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해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뜻밖의 고백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몰래, 속삭이는 목소리로, 주위를 살피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도 트럼프를 찍을 거야.” 이들은 비록 “트럼프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절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수언론매체인 ‘월드넷데일리(WND)’의 모건 브리태니 역시 “트럼프 지지자들은 도처에 숨어있다”고 말하면서 직접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큰소리로 떠들진 못하지만 아무튼 난 트럼프를 찍을 거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 대부분은 백인이었으며, 여성, 소수인종, 상류층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양당의 여론조사원들도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공화당의 여론조사원인 켈라이언 콘웨이는 <투데이쇼>와의 인터뷰에서 전화보다 온라인 여론조사 때 숨어있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더 많이 본심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콘웨이는 “트럼프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의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특히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말이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숨은 지지자’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들은 그저 가족이나 친구들, 동료들과 말다툼하는 데 지쳐서, 혹은 싸우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역시 이 점을 알고 있었다. 민주당의 여론조사원인 셀린다 레이크는 “백인 남성 가운데 숨어있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상당수 있어 걱정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다. 가령 클린턴 지지율이 전화보다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더 낮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반면 트럼프 지지율은 온라인 여론조사 때 3~9%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이에 지난해 12월, 여론조사기관인 ‘모닝컨설트’와 <폴리티코>가 ‘침묵하는 다수’가 정말 존재하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었다. 실험은 2400여 명의 공화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각각 온라인, 자동응답 전화, 전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결과는 저마다 달랐다. 트럼프 지지율이 온라인 38% vs 자동응답 전화 36% vs 전화 인터뷰 32% 순으로 각각 다르게 나타났던 것. 이 실험 결과는 ‘수줍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6%인 이들이 전화 조사원에게 답할 때는 본심을 숨기고 있다가 익명의 온라인에서는 본심을 드러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한편 클린턴과 트럼프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냐고 묻는 조사에서도 전화 인터뷰의 경우, 클린턴 52% vs 트럼프 47%였던 것이 온라인 조사 때는 클린턴 51% vs 트럼프 48%로 트럼프가 1%포인트 상승했다. 이런 변화는 특히 대졸 학력자나 고소득층 사이에서 많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추측했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또 다른 설문조사 역시 비슷한 결과를 나타냈다. 전화 인터뷰에서는 대졸 이상 학력자들의 39%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던 반면, 온라인 조사에서는 46%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클린턴의 경우는 반대였다. 전화는 60%였던 반면, 온라인 조사는 7%포인트 하락한 53%였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 트럼프 역시 선거 운동 기간 ‘숨어있는 지지자들’이 많다고 거듭 주장했었다. 트럼프는 “여론조사는 믿을 게 못 된다.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가리켜 ‘미스터 브렉시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즉, 여론조사와 다른 개표 결과가 나온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침묵하는 다수’는 어떤 사람들일까. 누가 트럼프를 선택한 걸까. 지금까지는 저소득 저학력의 백인 남성들, 즉 ‘앵그리 화이트’들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들은 기득권(워싱턴)에 대한 불만, 일자리 감소, 중산층 붕괴, 이민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이들은 한마디로 ‘변화’를 원했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민심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으며, 엘리트 정치인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은 클린턴의 기성 정치인 이미지보다는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를 택했다.
하지만 숨어있던 고소득 고학력 백인들도 상당수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출구조사에서도 젊은 백인들이 트럼프에게 많은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저학력 여성 유권자들도 트럼프를 선택했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 여성 유권자들의 51%가 클린턴을 선택했던 반면, 고졸 이하의 여성 유권자들의 62%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뉴욕타임스>는 선거 직후 ‘트럼프가 승리한 이유는 백인 노동자 계층 덕분’이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민주당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백인 노동자 계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고 지적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는 1984년 월터 먼데일 이후 민주당 후보 가운데 백인들 사이에서 지지율이 가장 낮았던 후보였다. 클린턴 진영은 그럼에도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던 것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수준인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이 선거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백인’인 클린턴이 오바마의 뒤를 이어 출마한다면 추가로 더 빠져나갈 백인표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2008년과 2012년 오바마가 압승했던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아이오와 등의 백인 노동자들도 클린턴 대신 트럼프를 선택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이번 오판은 단순히 여론조사의 허점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클린턴 진영이 너무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클린턴은 민주당 텃밭이라고 굳게 믿었던 위스콘신, 미네소타, 미시간에서는 제대로 선거운동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 결과 큰 표 차이로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다수인 플로리다에서조차도 클린턴은 졌다.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제니아 위켓은 “클린턴 지지자들은 클린턴에게 그렇게 열광적이지 않다. 이것이 클린턴의 문제다. 오바마는 과거 투표 경험이 없던 많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냈었다. 이번 선거는 어느 정도는 열광적인 지지자들의 문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인들이 사실은 아직 여성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보수적인 백인 남성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애틀랜틱>은 올해 초 ‘클린턴의 출마로 여성혐오자들이 뿔났다’라는 보도를 통해 클린턴에 대한 적개감이 생각보다 심하다고 말했다. 사실 여성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클린턴은 전형적인 대통령 후보였다. 수십 년 동안 공직에 있었으며, 웅변술도 뛰어나고, 또 언론을 대응하는 법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를 대하는 미국인들의 반응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매우 비호감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1980년 민주당 후보 이래 최고를 기록했으며, 이는 특히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그랬다. ‘공공종교연구소’에 따르면 백인 남성의 52%는 클린턴을 ‘매우 비호감’이라고 응답했으며, 이는 2008년 대선 당시 최초의 흑인 후보였던 오바마에 대한 비호감 비율보다 무려 32%포인트 높은 것이었다.
이런 적개감은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두말할 것 없었다. 이들은 ‘계집애처럼 굴지 말고 트럼프에 한 표를’ 등과 같은 자극적인 선거 구호로 클린턴에 대한 적개감을 드러냈다. 이런 적개감은 단순히 이메일 스캔들이나 클린턴에 대한 불신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로 여겨졌던 권위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보이는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사회심리학자들은 ‘무력한 남성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보다 강한 여성한테 종속될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여자 상사를 둔 남자들은 남자 상사를 둔 경우보다 소득이 적고, 성공에 대한 관심도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은 강한 여성에 대해서는 강한 남성보다 더 깐깐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2010년 연구에 따르면, 가상의 남자 상원의원이 야망이 높을 경우에는 교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가상의 여자 상원의원이 야망이 높을 경우에는 남녀 모두 ‘도덕적 분개감-경멸, 분노, 혐오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이런 남성들의 심리가 클린턴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는 ‘공공종교연구소’가 실시한 ’사회가 너무 온건하고 여성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설문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해 ‘매우 동감한다’고 응답한 미국인들의 경우, 클린턴에게 ‘매우 비호감’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매우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보다 네 배 이상 많았다. 또한 공화당 경선 후보 지지자들 가운데 ‘미국이 점점 여성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었다.
또한 근래 들어 나타난 몇몇 여성 지도자들의 실패 사례 역시 클린턴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을지 모른다. 가령 호주의 첫 여성 총리였던 줄리아 길라드는 집권 3년 만인 2013년 퇴출됐고, 브라질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는 올해 초 부패 혐의로 탄핵됐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현재 우리나라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트럼프 지지 언론사 ’제로‘…여론 조사는 여론 조작? 여론조사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 일부에서는 여론조사가 틀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여론조사 자체가 조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트럼프의 당선이 결코 이변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 트럼프는 틈만 나면 “선거 자체가 조작됐다” “모든 여론조사가 클린턴에 유리하게 조작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과연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을까. 사실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주류 언론들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57개 언론사였던 반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던 언론사는 0개였다. 이와 관련해서 갤럽이 10월 27~28일 이틀 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2%가 언론 보도가 클린턴에게 유리하게 편향됐다고 답했으며, 균형잡힌 보도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38%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트럼프뿐만 아니라 미국인들 역시 언론사들이 실시하는 여론조사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아메리칸싱커>는 클린턴이 트럼프를 큰 차이로 앞서고 있다는 <CBS>, <NBC>의 여론조사가 데이터를 조작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를 과다집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여론조사 자체가 민주당원들 위주로 실시됐다는 것이었다. 가령 <CBS>가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이 트럼프를 6%포인트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이 조사는 6월 9~13일 1280명을 상대로 전화설문조사 형식으로 실시됐다. 하지만 응답자들 가운데 공화당원들은 28%에 불과했던 반면, 민주당원들은 35%였다. [주] |
여론조사 예측 빗나가는 이유 “전화를 받아야 조사를 제대로 하지” 여론조사의 예측을 뒤엎고 트럼프가 승리하자 많은 사람들은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2012년 미 대선 이래 중요 투표가 있을 때마다 전세계의 여론조사는 종종 빗나가곤 했다. 우리나라 18대 대선을 비롯해 이스라엘 총선, 스코틀랜드 국민투표, 영국 총선, 그리고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그랬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는 더 이상 민심의 풍향계가 아닌 걸까? 숫자는 더 이상 복잡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걸까? 이에 영국의 <가디언>은 이번 미 대선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어쩔 수 없는 여론조사의 한계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인들의 경우, 특히 여론조사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지만 불행히도 여론조사는 더 이상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가디언>은 첫째, ‘언론은 틀리기 쉽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론조사는 대부분 언론사가 실시하고, 그 결과는 해당 언론사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이럴 경우,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후보의 인지도는 자연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언론에 이름이 많이 노출된 해당 후보는 자연히 다음 여론조사에서 보다 많은 지지를 얻게 된다. 실제 트럼프의 경우가 그랬다. 후보 출마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전국 지지율은 2%에 불과했다. 하지만 후보 출마 선언 후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자 지지율은 11%로 급등했다. 이런 인지도 상승은 선거 초반에 더욱 중요하다. 이때는 대중들이 비슷한 양복 차림과 비슷한 생김새의 정치인들 가운데 누군가 아는 사람을 발견하려고 노력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경우 200명가량의 잠재 후보들이 경쟁했었지만, 결국 지금은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 말고 이름을 아는 후보가 없지 않은가. 둘째, ‘사람이니까 틀릴 수 있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도 ‘사람’이다. 개인적 경험과 믿음은 때로는 방해가 된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2%밖에 안 된다며 일찌감치 트럼프를 무시했던 기자들은 잠재적인 트럼프 지지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셋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여론조사는 미래를 알려주는 수정구슬이 아니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는 현재를 나타내는 것이지 미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오늘 투표한다면 누구를 뽑겠습니까?’란 질문에 대한 답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실제 투표소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넷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은 힘들다.’ 2013년 미국 가구의 41%는 유선전화는 없되 휴대전화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이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통신소비자보호법에 따라 휴대전화에는 자동다이얼로 전화를 걸 수 없기 때문에 유선전화보다 비용도 많이 들고, 또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다섯째, ‘사람들은 여론조사 응답을 꺼린다.’ 여론조사 응답률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1930년대에는 90%가 넘었던 응답률이 2012년에는 9%로 떨어졌다. 반면 미국의 인구는 1930년대 이후 2.5배가량 증가했다. 때문에 결국에는 약 2억 2500만 명을 대표하는 약 1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게 되는 셈인 것이다. <가디언>은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여론조사는 점점 힘들어지고, 또 빗나간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여론조사를 계속 믿는 이유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상에서 확실한 숫자를 보고 평온함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들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알려주면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디언>은 말했다. [주] |
클린턴은 ‘세 번째 임기의 저주’ 희생양? 미 정가에 도는 속설 가운데는 이른바 ‘세 번째 임기의 저주’ 혹은 ‘8년 주기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민주, 공화를 불문하고 한 정당이 8년 이상 집권하지 못하다는 속설로, 집권당이 3회 연임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의미다. 실제 미국에서는 유일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지난 60년 동안 한 정당이 12년 넘게 집권한 경우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없었다(루스벨트의 경우에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동안 재임했다). 예외는 1988년 로널드 레이건(공화당)의 임기가 끝날 무렵 실시된 선거에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공화당)이 당선됐을 때였다. 그밖의 다섯 번의 선거에서는 모두 정권 교체가 이뤄졌었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미국인들은 집권당에 대한 피로감으로 세 번째 임기를 허락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선거 때마다 주로 등장하는 슬로건 가운데 하나가 ‘이제 바꿔야 할 때(time for change)’인 것도 아마 우연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민심 탓에 일부 선거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클린턴이 저주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