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 카페에 올라온 비상 체제 전환 관련 게시글 캡처.
1월 23일 새벽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회원수 약 5000명)’의 인터넷 카페엔 “비상체제 운영”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손가혁 관계자는 글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손가혁 동지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지지하는 민주시민 여러분. 손가혁 전국체제를 비상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 시장 팬클럽인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손가혁 측이 밝힌 비상체제 결의 5가지다. 손가혁 관계자는 “향후 손가혁 동지와 민주시민들이 해줄 일이 있다”며 “첫째, 1인 10인 이상으로 한다. 둘째, 성명·전화번호·지역(시·군·구) 추천인을 기재한다. 셋째, 추천인을 확보한 뒤 별도의 정해진 라인에 통지한다. 넷째, 오프라인 모임 강화를 위해 카페모임을 활성화해 지역모임을 활성화한다. 다섯째, 시장 강연시 손가혁 동지를 배가하기 위해 현수막을 부착하고 참석자 명단도 자원자 중심으로 확보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경선은 완전국민경선제로 이뤄진다. 여기엔 일반 국민도 선거인단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일반 국민 투표권은 대의원 및 권리당원 표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잠룡들이 선거인단 모집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손가혁 역시 선거인단 모집에 사활을 걸었다. 손가혁 관계자는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대통령 선거나 다름없어 비상 체제로 전환했다. 회원 1인당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10명씩 설득한 뒤,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손가혁 내부에서는 이러한 ‘비상체제 운영 결의’에 대해 뒷말이 새어나온다. 손가혁의 한 회원은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의를 했는지에 대한 말이 없다. 손가혁 회원들도 알지 못하는 추천인 제도로 심하게 욕을 먹고 있다. 결의 과정의 ‘기승전결’을 듣고 싶다. 자발적인 활동은 모르겠지만 조직적으로 강요받는 느낌은 별로다”고 성토했다. 다른 회원은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비상체제 운영 글을 보고 손가혁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경솔한 행동은 표심을 깎아 먹는 역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을 알아두기 바란다” 경고했다.
민주당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사람당 10명을 모집하는 방식은 자칫 다단계 선거 방식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비서는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단순 지지자들의 자발적 모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단계 모집방식이 걸린다. 현수막 제작에 필요한 자금 조달은 회원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돈을 들여서 이 시장을 떠받들라는 소리다. 돈을 바치고 사람을 동원하는 방식이 너무 공격적이다”고 했다.
손가혁 측은 “정당한 지지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비상체제 운영 기획에 참여한 손가혁의 한 간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운영진과 합의가 된 사안이다. 어차피 경선 국면이다. 이 시장이 승리해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비상체제 전환은 지지자들이 SNS에서 홍보를 하는 방식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손가혁은 수평적 네트워크다. 명령체계가 있어 위에서 지시를 내리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손가혁이 비상체제 전환을 밝힌 이튿날 밤 11시경 이 시장은 페이스북에 ‘민주당 경선 룰, 경선승리 비책’이란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다. 이 시장은 “2012년 당시 63만 명 투표, 53% 득표 문재인 승”이라며 “이번 경선에서 최대 100만 명이 투표할 것으로 가정했을 때 50만 표면 승리한다. 20명 투표시킬 2만 5000명 또는 10명 투표시킬 5만 명이면 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친구들이 몇 표씩만 투표하게 해도 이긴다. 손가락혁명 동지들이 몇 명인가.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의 경선 대비를 위해 손가혁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장 열성 지지자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권 아무개 씨는 “지지자가 아닌 당사자가 친절하게 선거인단 동원방법을 올리다니…한때 민주당의 아름다운 경선을 기대했던 희망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윤 아무개 씨는 “성남시민으로서 이 시장에게 한 표를 줬고 여전히 응원하고 있다. 근데 죽기 살기로 경선에 올인한 모습을 보면 박스떼기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좀 걱정이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아무개 씨는 “범죄도 아니고 본인을 홍보하는 것은 정상이다. 이 시장의 글 때문에 경선방식을 모르는 국민이 룰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 시장 측은 “선거법상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 시장 측은 “역동적인 경선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경선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장은 경선에 많이 참여해달라고 독려하는 글을 올렸을 뿐이다. ‘박스떼기’로 바라보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 오히려 합법적인 범주 안에서 벌어지는 자발적인 활동을 문제 삼는 것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관리위 관계자는 “당원들이 이 시장의 선거운동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화가 많이 온다. 팬클럽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재를 가할 수 없다. 공명선거팀도 꾸려지지 않은 상태라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조금 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손가혁은 이 시장을 위한 앱을 출시했다. ‘손가혁 앱’에선 이 시장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와 블로그에 올린 게시글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손가혁 관계자는 앱 출시 직후 “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손가혁 앱(안드로이드용)이 출시됐다. 손가혁 회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통합 플랫폼에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홍보했다.
손가혁 앱은 독특한 방식의 승급기준으로 눈길을 끌었다. 앱 관리자는 “회원들이 이 시장의 트위터, 페이스북의 게시글을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누르고 주요 뉴스에 댓글을 달면 이병부터 4성 장군까지 승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손가혁 앱 회원은 가입 즉시 ‘전사’ 계급을 받고 백인장(손가혁 앱 설치 추천인 10명 또는 공유 100회)부터 대장(손가혁 앱 설치 추천인 1000명 또는 공유 1만 회)까지 8개의 계급으로 승급할 수 있다. 회원이 SNS에 이 시장이 올린 글을 공유한 횟수에 따라 1점씩 점수가 쌓이는 방식이다. 점수가 올라가면 승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손가혁 앱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손가혁 또 다른 회원은 “무슨 군대도 아니고….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에서 이 시장의 정치 철학을 SNS상에서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급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전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십알단이 하던 짓과 뭐가 다르냐. 좌표를 찍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을 곱게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십알단은 지난 대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SNS 활동을 조직적으로 펴왔던 이들을 뜻하는 은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손가혁의 승급제도와 비상체제는 전부 A 씨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A 씨는 선거 조직 동원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시장 캠프의 관계자 역시 “A 씨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A 씨가 뒤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이 시장은 물론 최측근들과도 친분이 깊다. 원래 통진당 출신이고 선거에서 조직을 동원하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손가락혁명군’이란 네이밍도 A 씨의 작품이다. 원래 그쪽으로 타고난 사람이고 이 시장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 역시 “선거 기획 쪽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이 시장 쪽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선거판 ‘세몰이’의 귀재다”고 보탰다.
하지만 이 시장 측은 A 씨의 캠프 합류설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이 시장의 최측근은 “전혀 관련이 없다. 공식적인 활동을 한다거나 배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중에 그분이 어디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당연히 답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