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이 700조 원을 넘어서면서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을지로의 은행 가계대출 창구 전경.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기준금리 인상 상황에 대비해 가계부채 우려를 가라앉히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8월에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보면 정부 대책은 부동산 부문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해 3분기 1500조 원을 넘어설 정도로 급증한 가계부채를 이끈 것이 부동산 부문이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택 공급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집단 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전세 대출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자영업자와 관련된 대책은 기존에 나왔던 미소금융을 지속 확대한다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정부가 등한시했던 자영업자 대출이 가계부채 문제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부채보유 가구의 재무상황 점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자영업자 부채가 국내 가계부채의 가장 취약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자영업자들은 은행에서 개인사업자 대출과 함께 가계 대출을 받는데, 대부분 두 가지 대출 자금을 구별 없이 사용한다. 또 사업이 어려워지면 두 가지 대출자금 모두 상환이 어려워지는 특징을 안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한국은행 자료를 토대로 이러한 자영업자 대출 금액을 추정한 결과,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전체 자영업자 대출은 675조 원에 달했다. 나이스평가정보 자료로는 자영업자 대출금액은 이보다 더욱 많아서 지난해 9월 말 현재 742조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400조 원대가 가계부채 1500조 원에 포함된다. 자영업자들의 경우 소득이 경기에 좌우되기 때문에 경기가 악화할 경우 대출 상환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자영업자들의 경우 각종 공과금을 뺀 가처분소득 중에서 원리금 상환에 쓰이는 비율이 42%에 달한다. 100만 원을 벌면 42만 원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사용하고 있는 뜻이다. 이는 임금 근로자(30%)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특히 소규모 영세자영업자들의 경우 소득 수준이 낮은데 반해 원리금 상환 부담은 높아 자칫 벼랑 끝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2016년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 자영업자의 경우 연 가처분소득이 900만 원에 불과한데 이 소득 중 56%를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었다. 소득 2분위(소득 하위 20~40%) 자영업자도 연 가처분소득 2000만 원 중 52%를 원리금 상환에 사용 중이다.
지난해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자영업자 수가 3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해 자영업자 대출 관련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취업자의 수는 2623만 5000명으로 전년대비 29만 9000명 감소했다. 반면에 자영업자 수는 전년대비 7000명 늘어났다. 특히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는 2만 명 줄어든데 비해 고용원을 두지 않는 영세자영업자는 2만 7000명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영세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부채가 늘어났지만 올해 경기는 정부조차 2%대 성장을 예상할 정도로 전망이 좋지 않다. 여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내 금리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자영업자 대출이 가계부채 폭탄을 터트릴 뇌관이 돼가고 있다.
정부가 올해 들어서야 자영업자 대출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나섰지만 실제 대책들은 하반기에나 나올 예정이다. 정부는 자영업자 대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번 달부터 자영업자 대출 분석을 시작하고 6월에 자영업자 유형별 맞춤형 대책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자영업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나 재기 지원 대책은 올 3분기에 만든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주택 시장 개선으로 집단대출이 급증하자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주택 관련 대출에 집중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회사원들은 생활이 어려워지면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은행 빚부터 갚는 사람들”이라며 “오히려 사업가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은 경기가 악화하면 빚을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인 만큼 이들의 부채 관리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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