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왼쪽)와 최순실 씨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 연합뉴스·일요신문DB
지난해 10월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떠올랐던 키워드는 ‘변호사’였다. <JTBC> 보도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궁지에 몰린 최순실이 가장 먼저 찾은 이는 이경재 변호사였다. 최순실 딸 정유라 씨도 거물급 덴마크 변호사를 선임했다.
차은택 김종 안종범 등 국정농단 사건 키를 쥔 혐의자들도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초호화 변호인단을 이끌고 영장 심사를 받았다. 거물급 의뢰인들은 검찰의 창끝에 맞설 강력한 방패를 찾아 나섰다.
박 전 대통령 곁을 끝까지 지키고 있는 이들도 ‘변호사’들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선임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유 변호사를 비롯해 서석구 김평우 등 10명을 선임했다. 박 전 대통령 입장 변호사들 ‘입’을 통해 전해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 등에 연루돼 재판을 앞둔 19명이 선임한 변호인은 약 100명이다.
재벌과 정치인들 재판 기간은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서울중앙지법 청사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의 ‘썰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로펌이 운집한 서초동에선 “변호사들이 최대 호황을 맞았다”는 얘기가 돈다. 서초동 변호사들이 벌어들일 수임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전망이다. 4월 5일 기자와 통화한 검찰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예전에 전직 대통령을 변호한 경험이 있었다. 대통령 쪽에서 부르는 수임료는 끝이 없었다. 마치 마약을 사고파는 암시장처럼 이중가격이 형성된다. 공식 수임료는 보통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발표하지만 뒤로 받는 수임료는 어마어마하다. 주로 전관들이 서로를 소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임료는 쭉쭉 오른다. 항소심에서 판사가 바뀌면 담당 변호사가 또 다른 전관을 소개하면서 또 다시 비용을 요구한다. 3심까지 똑같은 구조인데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명’이 있으면 ‘암’도 존재하는 법. 일각에서는 “소수의 전관들이 이익을 독점하기 때문에 대통령 탄핵과 최순실 게이트가 법률시장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앞서의 변호사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몇 사람만 독식한다. 신출내기 변호사나 로스쿨을 이제 막 졸업한 변호사들이 득을 볼 일은 없다. 업계에서 알아주는 스타 변호사나 김앤장 태평양 등 몇몇 로펌이 거의 모든 수익을 가져간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 역시 “이슈 사건은 전관 몫이다. 고착화한 관행이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지 않을 만큼 익숙하다. 이번에 수임한 변호사들은 업계에서 인정을 받은 스타 변호사가 대부분이다. 남의 얘기고 다른 세계라서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거물급 피고인들은 전관 변호사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검찰 조사에선 검찰 출신 전관, 법정에선 판사 출신 전관이 나서 ‘맨투맨’ 방식으로 피고인들을 전담 마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최근 검찰에 출두했을 당시 방패역할을 맡았던 정장현, 위재민 변호사는 검찰 출신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왕실장’이란 별명에 걸맞게 화려한 변호인단을 자랑한다. 김 전 비서실장 측은 특검 수사와 동시에 공안검사 출신인 정동욱 변호사를 선임했다. 김 전 실장은 이후 법원장 출신 김경종 변호사 등 3명, 이후 판사 출신 이상원 변호사 등 2명을 추가로 선임했다. 법무법인 신촌 소속 김문희 변호사 등 4명의 변호사도 김 전 실장을 돕고 있다.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출신인 홍성무 변호사와 대검 형사부장을 지낸 송해은 변호사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변호를 맡고 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대검 반부패부장을 지낸 ‘특수통’ 강찬우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다. 이 부회장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도 전관 출신이 대부분이다. 송우철 변호사는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을 지냈고 문강배 변호사도 역시 판사 출신이다. “전관은 이름값만큼 톡톡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서초동 업계 속설이다.
반대로 의뢰인이 적정한 수임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거물급 전관들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변호인단에 수임료를 적게 지급했다는 보도가 주목을 받았다. <TV조선>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대리했던 변호인단이 전부 무료로 변론했고 형사소송 대리인단 역시 최소한의 실비 정도만 받아왔다고 4월 2일 전했다. 유 변호사도 첫 달 500만 원 수임료 외에는 무료 변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초동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돈이라도 제 때 지급했다면 엑스맨들이 안나왔을 것”이라는 웃픈(?) 얘기도 나왔다. 앞서의 전관 변호사는 “차라리 돈을 제대로 줬다면 헌재 심판정에서 막무가내의 기행을 벌이진 않았을 것이다. 유 변호사나 서석구 변호사는 명예욕 때문에 박 전 대통령 변호를 맡았다. 억대의 돈을 받고 대통령을 변호했다면 그렇게까지는 안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 탄핵 심판 내내 구설수에 올랐다. 서석구 변호사는 2월 13일 태극기 시위를 벌이다 제지당했고 김평우 변호사는 강일원 주심재판관을 향해 “국회 측 대변인”이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지금까지 대리인단이 취해온 태도를 보면 충분히 무료변론을 예상할 수 있다. 돈을 받았다면 헌재 심판정에서 태극기를 흔들거나 막말을 하면서 의뢰인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 변론을 할 수는 없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변호사들을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초기엔 “어떻게 저런 악마들을 뻔뻔하게 변호하느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한 변호사는 “살인마가 병에 걸려 병원 가도 수술을 거부할 순 없다. 악마를 변호한다는 의미가 좀 애매하다. 소송에서 악마와 천사가 어딨겠나. 대기업 부회장급이면 완전 ‘땡큐’다. 법조인들 대부분 서로 맡으려고 난리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변호사 업계 일각에서는 “악마를 변호하느니 돈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도 있긴 하다. 촛불민심 기폭제로 작용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악마’들을 위해 선뜻 변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다른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더 좋은 대형 로펌 찾는 것은 이해는 간다. 하지만 법은 가치중립적이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최소한의 가치 평가가 있어야 한다. 대형 로펌이 무분별하고 비도덕적으로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변호사는 “변호사는 도둑놈과 사기꾼도 변호하는데 뇌물범인 대통령을 거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헌법과 법률 앞에서 양심을 지키는 방향으로 소송을 진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수임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곤란을 겪고 있는 변호사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최근에 상대방 변호사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변호를 맡아서 변론이 계속 미뤄졌다. 중요 사건에 집중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일반 당사자는 뒷전이다. 사건이 계속 지연되고 있어 힘이 든다. 유명 사건에 중앙지법 인력이 집중되면서 서민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