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민MC로 명성이 높았던 지미 새빌은 죽은 후 희대의 아동 성범죄자라는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후 상황은 급변했다. 그의 명성에 눌려 감춰졌던 진실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 도화선은 BBC의 탐사 프로그램 <뉴스나이트>였다. 메이리언 전스와 리즈 맥키언은 전직 경찰인 마크 윌리엄스-토머스와 함께 지미 새빌의 성범죄 사실을 밝혀냈다. 이 프로그램은 새빌이 세상을 떠난 지 약 40일 후인 2011년 12월 7일에 방송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BBC 방송사는 새빌에 대한 헌정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이유로 <뉴스나이트> 방송을 취소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약 10개월 후인 2012년 10월 3일, ITV의 다큐 <폭로: 지미 새빌의 다른 면>에서 드러난다. 새빌은 자신의 프로그램 출연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으며, 자신이 주최한 자선 행사에서도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 한 여성은 미성년자 때 새빌에게 강제로 프렌치 키스를 당했다고 눈물의 고백을 했고, 아동 상담 단체인 ‘차일드라인’의 설립자 에스더 란첸은 “새빌이 아이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은 항상 있었다”며 이것이 오래된 일이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문제 제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새빌은 항상 부인했고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1990년 <더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가 소녀들을 좋아한다는 루머에 대해 묻자 “어린아이들은 내 주변으로 오지 않는다. 난 그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2000년엔 그에 대한 다큐가 만들어졌는데, 여기선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뭘 알고 있지? 하지만 난 나 자신에 대해 정확히 한다. 내가 아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이라고 당당히 답했다. 2007년엔 그가 1970년대에 자선 활동을 이유로 방문한 어느 소년원에서 저지른 성추행 사건 수사가 비밀리에 이뤄졌지만, 곧 증거 불충분으로 중지되었다. 2008년엔 <더선>에서 당시 일을 보도했다가 새빌에게 거액의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ITV의 <폭로: 지미 새빌의 다른 면>으로 국면은 급격히 전환되었다. 그가 성범죄를 저지른 장소는 직장인 BBC와 자선 활동을 위해 방문한 병원이 중심이었다. 먼저 BBC의 내사가 이뤄졌고 전직 고등법원 판사였던 재닛 스미스가 칼자루를 쥐었다. 증인들이 한두 명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3년부터 새빌의 옆방에서 일했던 폴 갬버치니는 “그는 방송사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병원의 환자들을 타깃으로 삼았다”며 “수사를 받지 않기 위해 경찰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털어놓았다. 한때는 그 문제로, BBC의 연말 자선 행사 프로그램 출연이 금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보도 잇따랐다. 특히 병원 쪽에서 많았고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1971년 스토크 맨더빌 병원을 방문했을 땐 소녀들이 모여 있는 병동을 찾아 다녔고, 이 시기 어느 간호사가 경찰에서 진술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리즈 병원의 어느 간호사는 새빌이 뇌를 다친 소녀 환자를 추행하는 걸 보았다고 진술했다. 정신병원에서도 그런 짓을 했고, 소년들도 그의 타깃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근친 아동 성추행이었다. 조카딸인 캐롤라인 로빈슨은 가족 모임 때 두 번에 걸쳐 새빌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수상은 큰 충격을 받았다며 샅샅이 수사하라고 지시했고 2012년 10월 4일 영국 경찰은 이른바 ‘유트리 작전’을 개시했다. 지미 새빌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아동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했고, 적잖은 셀러브리티들의 흑역사가 드러났다. 조사 두 달 만에 총 589명의 피해자가 파악되었는데, 그 중 450명은 지미 새빌이 가해자였다. 수사를 이끌던 피터 스핀들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새빌은 포악하며 매우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성범죄자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권위와 영향력을 총동원해 범죄를 저질렀다.” 모든 악행이 드러난 지미 새빌. 검은 화강암으로 만든 화려한 묘비석은 이후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