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5월 중순이었다.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던 A 양(13·여)은 같은 반 4명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A 양의 엄마 B 씨(43·여)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반 년 전에도 이따금 시샘 부리는 친구 때문에 힘들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A 양이 학교 출석을 거부하고 나서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딸의 상황을 조금 파악해 본 B 씨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정도가 심했다. 따돌림을 주도한 4명은 대놓고 자신의 딸을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학급 행사에서 교묘하게 따돌렸다. 나날이 잦아지는 따돌림에 A 양은 정신적 충격으로 지난해 5월 17일부터 간헐적으로 등교하며 정신과 등에서 치료를 받았다.
A 양은 병원에 다녀온 뒤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더 큰 상처였다. 지난해 5월 26일 4명은 또 다시 A 양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수위가 높아졌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A 양을 옆 칸에서 지켜보며 욕설과 조롱을 퍼부었다. B 씨는 이를 전해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 교감, 학교폭력 피해 여학생과 그 엄마까지 성추행했나
B 씨는 담임과 장학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민원을 듣게 된 교감(54)은 학부모에게 만남을 청했다. 지난해 5월 24일 오전 11시쯤 “오후 서너 시에 학교로 뵈러 가겠다”는 B 씨에게 교감은 “그렇게는 만나고 싶지 않다. 저녁에 밖에서 만나자. 학교는 안 된다“며 한 음식점 앞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교감을 처음 본 B 씨는 악수를 나누면서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성토했다. 그는 “악수할 때 교감이 내 손등을 과하게 쓰다듬었다”며 “언변에서도 불쾌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B 씨는 이어 ”교감이 만나자마자 ‘이 일을 전해 듣고 상상한 어머니의 모습이 실제와 참 다르다. 삐쩍 마르고 깐깐하게 생길 줄 알았다. 이렇게 지적이고 날씬하다니. 이런 외모인 걸 오늘에야 봐서 충격적이고 놀랍다’고 말했다“며 교감과의 첫 만남을 설명했다.
피해학생의 노트. 교감을 악마로 묘사하고 있으며 교감의 말도 적혀 있다.
B 씨는 딸 문제 해결 때문에 수치스러운 상황을 버텼다. 하지만 교감에게서 받은 이상한 느낌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학교폭력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지난해 7월 B 씨는 딸의 방에서 이상한 흔적을 여러 개 발견했다. 2015년 하반기부터 공책과 수첩 마지막 쪽에 빼곡히 적힌 딸의 낙서였다.
낙서를 본 B 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낙서 내용은 모두 교감의 성추행 기록이었다. 공책 등에는 교감이 악마로 묘사됐고 손가락은 뱀으로 그려졌다. ”뱀 교감이 자꾸 만지고 주무르며 내 몸을 더럽게 만든다. 껴안고 주무르고 엉덩이도 꽉 잡으며 나쁜 변태 짓도 한다. 죽고 싶다“ 등의 내용이 수십 장에 걸쳐 나왔다.
B 씨는 갑자기 반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자기를 시샘하는 친구가 많아 학교생활이 힘들다는 아이를 B 씨는 교감에게 ”잘 다듬어 달라“고 보냈었다. 자신을 원망했다.
교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행동은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교감은 9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아이를 교육하며 3회 정도 손과 어깨를 잡은 적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학부모의 미모를 칭찬하며 사슴 발언을 한 것도 기억난다. 다만 손을 잡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 ”피해학생 전학 보내라“는 담임, ”담임은 미남“이라는 장학사
지난해 5월 16일 B 씨는 딸이 등교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담임 임 아무개 씨에게 집단 따돌림 사실을 알렸다. 빠른 대처도 수차례 부탁했다. 하지만 담임은 오히려 가해학생들을 두둔하며 딸의 전학을 권했다고 알려졌다.
B 씨는 ”담임이 요즘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차라리 내 딸을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라고 했다. 따돌림을 주도한 아이가 자기네 반에서 대세라며 밉보여서 좋을 것이 없다고까지 말했다“며 ”몇 차례 더 훈육을 부탁하자 교권 침해를 걸고 넘어졌다. 자신이 한국교총 등 교육자집단의 회원이니 이들 단체에 문의해서 사안을 해결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담임에게 다시 한 번 가해학생들 훈육을 요청했다. 사과 문자나 전화면 충분할 거라는 말도 전했다. 하지만 담임은 “A 양 문제를 학교폭력상담전화에 문의한 결과 학교폭력이 전혀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사과가 실행되려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이 상황이 학교폭력이 맞는지 판단 받아야 한다”고 대응했다.
담임과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자 B 씨는 장학사를 찾아갔다. 장학사 역시 담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담임을 만나고 온 뒤 실언을 했다고 알려졌다. B 씨가 경찰에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해 5월 20일 장학사는 B 씨에게 “어머님. 제가 담임을 만나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미남이시고. 걱정하지 말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장학사는 이를 부인했다. 장학사는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 이 일은 경찰과 관련 기관에서 다각도로 사건을 마무리 중”이라고 반박했다.
# 사건 은폐하며 가해자 쪽에 피해학생 개인정보 제공한 학교
학교는 가해학생들의 훈육을 요구하던 B 씨를 외면하고 지난해 6월 12일 자진해 학생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다. 학폭위는 학교폭력 발생 시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가 사건을 조사·심의하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에게 내리는 조치를 학교장에게 요청하는 자치회다. 학교는 이 사건의 학교폭력 판단 여부를 학폭위에 넘겼다.
문제는 이를 담당한 생활지도부장 김 아무개 씨(31)가 가해학생 4명 가운데 1명만 가해학생으로 학폭위에 올렸다는 점이다. 김 씨는 “솔직히 별로 큰 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꼬인 사건이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이런 사건이 생기면 조용하고 빠르게 처리하려고 한다”며 “B 씨가 1명만 지목했다. 그래서 1명을 기준으로 학폭위를 진행했을 뿐”이라고 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김 씨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B 씨가 제출한 진술서에는 정확히 가해자 4명이 적혀 있었다. 학교폭력에서 따돌림은 2인 이상일 때 인정된다. 김 씨는 집단 따돌림을 개인과 개인의 갈등으로 학폭위에 올렸다.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학폭위에서 참석위원 일부는 “개인의 갈등이라도 이 정도면 학교폭력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담임과 학교전담경찰관은 개인 사이 벌어진 일로 이 사건을 치부하며 학폭위를 주도했다. 결국 1차 학폭위 결과는 이 사건을 학교폭력이 아닌 동급생 간의 갈등으로 판단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B 씨는 충남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사건은 뒤집혔다. 위원회는 지난해 7월 29일 이 사건을 학폭위와 달리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
학교는 다급해졌다. 위원회가 결정을 번복할 방법을 모색하려 담임은 가해학생의 아빠 C 씨에게 만남을 청했다. 지난해 8월 10일 학교 밖 한 커피숍에서 담임과 C 씨의 만남이 이뤄졌다. 담임은 이 자리에 A 양의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생활기록부와 일기 등 개인정보를 모두 가져갔다. 가해자의 아빠는 이 자리에서 A 양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재심까지 이어지는 동안 학교는 피해학생 쪽과 가해학생 쪽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이간질까지 했다. 가해학생의 아빠 C 씨는 “피해학생의 엄마를 만나려고 했지만 학교는 내게 ‘피해학생의 엄마가 날 만나기 싫어한다’는 등의 이유로 삼자대면 요청을 계속 거부했다”고 말했다.
담임의 비정상적인 대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사건이 학교폭력으로 인정됐는데도 A 양의 생활기록부에 질병과 무단결석, 학교생활 부적응을 적나라하게 적었다. 학교폭력방지법에 따르면 피해학생이 학교폭력 때문에 학교를 나갈 수 없을 경우 출석을 인정토록 돼있다. 이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는 B 씨의 요청에 담임은 날짜만 지우고 내역을 남겨뒀다. 다시 내역을 지워달라는 B 씨의 요청에 날짜를 살린 뒤 내역만 지우는 등 B 씨를 농락했다.
이와 관련 A 양의 담임은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예약하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며 자리를 떠났다.
# 무심했던 천안 동남경찰서와 사건 떠넘기고 ‘솜방망이’ 징계 내린 충남지방경찰청
B 씨는 학교와 말이 통하지 않자 학교전담경찰관이었던 천안 동남경찰서 소속 김 아무개 경사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김 경사는 20회 가까이 자신의 딸을 한 번이라도 만나달라는 B 씨의 요청을 무시했다. 게다가 학폭위가 열렸을 때 ”넓게 보면 학교폭력이 맞지만 좁게 보면 아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B 씨는 천안 동남서 여성청소년과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천안의 그 어떤 경찰도 믿을 수 없었던 B 씨는 서울에 있는 경찰청에 직접 진정을 넣었다. 그런데 경찰청은 이 진정을 충남지방경찰청에 이첩했다. B 씨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충남청은 ”최고의 인력을 붙여서 잘 수사해주겠다“며 B 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탄원서 한 장을 내밀었다. 학교전담경찰관 김 경사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써주면 더 잘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이거라도 잡고 보자“는 심정으로 B 씨는 탄원서를 썼다. 이어 교장과 교감, 담임, 생활지도부장 등 4명을 성폭력, 직무유기, 직권남용,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지난 2월 충남청에 고소했다. B 씨는 천안 동남서를 제외한 다른 기관이 이 고소건을 맡을 수 있도록 충남청에 요청했다. 이에 충남청은 ”성폭력 사건과 그 외 사건을 각각 나눠 고소하라“며 B 씨에게 고소장 2부를 요구했다.
교육부는 이 초등학교가 학교폭력 피해자 지원을 잘 하고 있다며 ‘제6회 Wee 희망대상’ 대상을 수여했다.
학교전담경찰관의 징계가 문득 궁금해진 B 씨는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해 김 경사의 징계 내역을 확인했다. 김 경사는 지난 4월 26일 성실·공정의무 위반 비위로 불문경고를 받았다. 경고는 경찰 내부에서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다. 처벌불원탄원서 때문에 경고에 그쳤다는 사유가 경찰의 답변서에 적혀 있었다.
지난 1월 충남교육청은 이 사건 관계자 행정처분을 알렸다. 주의와 경고가 다였다. 충남지방청과 천안 동남경찰서에 이어 충남교육청의 솜방망이 처벌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학교 정문에는 교육부 표창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15일 이 학교에 ‘제6회 Wee 희망대상’ 기관부문 대상을 수여했다. Wee는 각 학교와 교육청, 지역 사회가 연계돼 ‘학교폭력’ 피해자 등을 통합지원하는 서비스망이다.
B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교육부에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꾸준히 민원을 넣어 왔다. 이 기간은 학교가 교육부의 Wee 희망대상 공모전을 준비하던 기간이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