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어떤 책을 읽으세요?”
“법원에서 문제가 된 전두환 회고록을 읽었어. 당시 재판장과 검사를 사정없이 까 버렸던데. 나중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지 않을까 몰라.”
전직 대통령에 관한 책이나 영화들이 종종 나오고 있다. 누구나 세상에 대해서 자기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표현의 자유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의 회고록을 읽었다. 그의 본질은 경영자인 것 같았다.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 밤에도 그 나라 원수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비서들에게 말을 듣기도 한다. 국가원수로서의 품위를 지키셔야 한다고. 대한민국주식회사에 이익이 되기 위한 것이면 무엇이든 부지런히 일할 사람 같았다. 늘어가는 차와 막히는 도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네덜란드같이 전국적으로 수로를 형성하고 싶어 했다. 노무현대통령의 영화에서는 그를 대통령으로까지 가게 한 근본적인 겸손과 서민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밥을 먹던 선배가 말을 계속했다.
“얼마 전에 김종필씨도 회고록을 냈어. 그런데 그 양반은 회고록에서 공화당 창당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증권파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 한마디 사과가 없어.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1962년경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하면서 증권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 정권실세들이 하수인을 시켜 주가조작을 해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마련했던 사건이었다.
“그 당시 상황이 어땠어요?”
구체적인 사정을 알고 싶어 물었다.
“그때 우리아버지는 고등학교 영어선생이었어. 그런데 교사인데도 여유 돈을 증권에 투자하셨었지. 어느 날 저녁에 케이크를 사들고 오셔서 가족이 나누어 먹었어. 아버지가 증권을 사뒀는데 몇 달 만에 여섯배 올랐다고 기분 좋아 하셨어. 증권하면 돈 번 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증권을 샀지. 그러다가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어. 그거 다 김종필씨가 공화당 창당자금 마련하느라고 뒤에서 사람을 시켜서 조작을 한 거야. 내가 듣기로는 육군소령출신 강모라는 사람이 일선의 주가조작 책임자라는 거야. 정치자금이 필요하면 부자들 돈을 뜯지 왜 서민들 돈을 그렇게 뺏어서 했는지 몰라. 여러 사람이 빚더미 속에서 죽었으니까 말이야. 증권뿐만 아니라 공화당정권이 당시 서민생활에서 쓰이는 물건들을 매점매석해서 돈을 끌어들인 건 잘못한 짓이야. 회고록에는 그런데 대한 사과가 없어.”
선배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신을 미화시키는 것 보다 진정한 참회가 나타났을 때 그걸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얼핏 ‘루소의 참회록’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사상가인 루소 정도면 그 안에 영원한 진리가 들어있을 줄 알고 나는 숙연한 자세로 그의 참회록을 펼쳤었다. 몇 장 나가지 않아서 ‘뭐 이래?’하고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수많은 여성편력을 글로 써 나갔다. 어느 귀족부인의 유방이 짝짝이라느니 누가 좋았다느니 그런 얘기들이 섞였다. 스위스의 불란서대사관에서 촉탁으로 일하면서 대사와 짜고 가짜 비자를 발급해주고 돈 받아먹은 것도 썼다. 얼마전에 나온 소설가 황석영씨의 자전과 비슷한 흐름 같았다.
남은 냉정하게 봐도 자신을 똑바로 보기는 힘든가 보다.
몇 년 전 한 대기업회장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그의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었다. 회고록의 제목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얼룩천지였다.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몰래 첩을 데리고 살다가 싫증이 나면 냉동댕이쳤다. 법정에서 그는 여자는 단지 섹스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출간한 회고록은 그가 만들어 쓴 ‘탈바가지’였다. 거의 대부분의 회고록은 가짜다. 회고록은 남을 시켜서 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한자 한자 또박또박 원고지를 채워가면서 써야 한다. 아래로 내려가는 겸손으로 정직하게 쓸 때라야 좋은 회고록이 탄생한다. 선배의 말을 듣고 헌책방에서 전두환 회고록 세권을 샀다. 그의 시각에서 본 그 시대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