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가상통화 거래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가상화폐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정부가 규제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통화인가? 아직은 아니다=비트코인(Bitcoin) 등은 암호화폐(cryptocurrency)로 불린다.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로 철벽보안을 자랑하니 ‘암호(cypto-)’라는 접두어는 어울린다. 디지털 환경에서 화폐 역할을 한다고 ‘코인(coin)’이 붙었다. 하지만 사전적으로 통화가 될 수 없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블록체인 기술은 의미 있지만, 비트코인은 화폐도 금융상품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통화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축적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짐바브웨는 2008년 미화 1달러에 대한 짐바브웨 달러화의 가치는 무려 200억 달러였다. 2억%의 인플레이션이다. 짐바브웨 정부는 2009년 자국의 화폐를 미국 달러로 대체하기로 했다. 2015년에는 아예 자국의 화폐를 폐지한다. 화폐의 안정성이 사라지면서 사물의 가치표시 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기 어려우면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기도 어렵다. 예들 들어 승용차 1대 값이 1비트코인이라고 치자. 내일 비트코인 값이 현재보다 수십% 오르거나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면 과연 거래가 이뤄질까.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면 승용차를 팔려 하지 않을 것이고,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면 비트코인으로 값을 치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금은과 닮았다?… 공급·신뢰도 부족=통화는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하다.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펼치는 이유다. 시중에 통화가 지나치게 많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적절히 유동성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비트코인 등은 이른바 ‘채굴’이라는 작업을 통해 신규 공급이 이뤄진다. 이 ‘채굴’이 원활하지 않다면, 반대로 너무 활발하다면 가치가 크게 흔들릴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금이나 은 본위제가 사라진 이유다.
이 때문에 결국 지금 ‘암호화폐’라고 불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통화라기보다 금이나 은에 비유하기도 한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등에서도 비트코인 등이 선물거래를 시작했다. CME와 CBOE는 가상화폐를 통화가 아니라 원자재로 분류했다.
사실 닮은 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금은 오랜 시간 동안 통화를 대체할 최후의 결제수단으로 인정받아왔다. 비트코인이 금이나 은의 지위에 오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발행되는 통화보다 훨씬 본질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에는 가치의 안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광풍?… 열풍일수도=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블록체인 기술은 미래학자, 자유주의자, 컴퓨터 괴짜들의 열광을 받았고, 정부와 은행 등 기존의 기관들에 신뢰를 잃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뽑은 것과 같은 현대생활에 대한 걱정부터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가 촉발됐다”고 풀이했다. 또 “사람들은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를 일종의 권한처럼 인식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이해했고,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벌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역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비트코인은 감시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성공적일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어떤 유익한 기능도 하지 못하는 만큼 불법화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검은 자금들이 암호화폐 시장을 통해서 돈세탁에 나섰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블록체인 기술의 완벽한 보안체계 아래에서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블록체인에는 모든 기록이 남기 때문에 수사당국의 거래 추적도 그만큼 정확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제도권에서 받아들였다?…아직은=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암호화폐 투자도 주로 개인이나 소액투자자가 많았다. 최근에는 가상화폐 투자에 특화된 펀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55개이던 암호화폐 투자 헤지펀드는 11월 말 169개로 급증했다. 집단으로 투자를 하다 보면 위험관리가 필요하다. 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은 가장 대표적인 위험 회피 수단이다.
CME와 CBOE가 가상화폐를 받아들인 것은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수요 덕분에 선물거래 초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다. 상당한 거래가 몰린 데다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콘탱고’가 뚜렷했다. 사설(私設) 수준인 비트코인 거래소와 달리 이들 상품거래소는 높은 공신력을 자랑하는 만큼 현물 대신 선물에 투자하는 게 좀 더 ‘안정적’(?)일 수 있다는 인식도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글로벌 원자재 선물펀드나 대형 헤지펀드 같은 큰손들이 그들의 포트폴리오에 암호화폐를 포함시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끝이 보인다? 4만 달러 전망도=현재의 비트코인 열풍은 17세기 ‘튤립버블’에 자주 비유된다. 당시 튤립 투자는 소상공인 등이 시작했다. 하지만 인기가 높아지고, 가치가 급등하자 ‘큰손’들이 뛰어들었다. 이어 현물 튤립이나 튤립 구근이 아닌 일정 시점에 현물 인도를 약속하는 ‘선물’거래가 등장한다. 펀드가 등장하고, 선물거래가 활발해지는 점에서 과거 튤립 버블의 막바지와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튤립과 달리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가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 미래 금융거래에서 상당히 유용할 기술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제도금융권의 새로운 서비스도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된 상태다. 화폐는 아니지만 심미적 가치만 가진 튤립과도 다르다.
다만 단기간에 급등한 자산 가격은 일단 차익실현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다. 단기간에 급등한 암호화폐도 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투매의 방아쇠(trigger)가 당겨질 수 있다. 늦게 팔수록 불리하니 혼란이 불가피하다. 내재가치 평가가 불가능해 저항선 설정도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투자인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
비트코인 규제에 ‘곁불’도 속이 탄다 조현준 효성회장 블록체인 기반 결제 서비스 관련주 오르락 내리락 비트코인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조 회장이 31.8% 지분을 가진 갤럭시아컴즈는 대표적인 비트코인 관련주이기 때문이다. 갤럭시아컴즈의 현재 주력 사업은 인터넷 전자결제 서비스와 편의점 선불카드 실시간 재충전 서비스다. 올 매출 700억 원에 순이익 70억 원가량이 예상되지만 시가총액은 1900억 원에 육박한다. 주가수익비율로 따지면 27배에 달하는 셈이다. 이처럼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온라인 및 모바일 결제시장 성장 가능성과 함께 신규사업으로 준비 중인 간편결제 서비스 머니트리와 블록체인 기반 결제서비스 때문이다. 특히 비트코인 환전서비스와 블록체인 기반의 저작권관리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이 때문에 5500원 안팎에서 움직이던 주가가 지난 8일 순간적으로 7630원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정부의 잇단 규제책들이 발표되면서 주가는 다시 5400원 아래로 떨어졌다. 조 회장의 갤럭시아컴즈 지분은 직접 보유분 외에도 역시 그가 35.26% 지분을 가진 효성ITX가 16.53%를 갖고 있다. 6.32% 지분을 가진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도 조 회장(80%)과 그의 두 동생이 지분(각각 10%씩)을 가진 회사다. 갤럭시아컴즈 주가가 급등하면 조 회장 자산도 폭증하는 셈이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