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매스 스타트 경기에서 이진영 선수는 경기 내내 출전 선수들 가장 앞에 섰다. 그는 가장 앞에서 공기 저항을 막고 속도를 올렸다 내려 다른 선수의 체력을 소비시켰다. 이승훈 선수가 막판 스퍼트를 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매스 스타트 경기랑 똑 닮았었다.
이 경기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동계아시안게임에 앞서 열렸던 5000m 선발전에서 3위를 기록한 선수는 주형준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5위였던 이진영 선수가 출전했다. 아시안게임 매스 스타트 출전선수는 국가당 3명이다. 5000m 기록을 기준으로 매스 스타트 국가대표를 뽑는다. 1, 2위였던 이승훈, 김민석 선수가 나왔는데 3위를 차지했던 주형준 선수 대신 왜 5위 이진영 선수가 나왔을까? 또 그는 왜 페이스 메이커로 경기에 뛰었을까? 궁금했던 ‘일요신문’은 주형준 선수를 찾아 헤맸다.
평창 동계올림픽 1500m 경기를 마친 주형준 선수. 연합뉴스
─ 2017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매스 스타트에서 이진영 선수가 뛰었다. 이 선수는 선발전에서 5위를 했었다. 3위였던 주형준 선수가 안 나와서 궁금했다. 왜 못 나왔나.
“2017년 초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나가기 앞서 백철기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감독님께서 날 자신의 방으로 부르셨다. 방에 갔더니 ‘페이스 메이커 해 볼 생각 없냐?’고 물으셨다. 혼란스러웠다. 난 내 실력대로 타고 싶었지만 제의를 거부하면 불이익이 생길까 두려웠다.
매스 스타트엔 자신 있었다. 쇼트 트랙도 했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되물었다. ‘페이스 메이커를 하라고 하시면 할게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제가 밀어 줬던 우리나라 선수와 제가 1, 2위를 다투는 상황이 오면 발 내밀기 해선 안 될까요?’ 백 감독님께선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다.
부당했다. 그래서 ‘제가 페이스 메이커를 거절하면 매스 스타트를 뛸 수 없는 건가요?’ 물었다. 백 감독이 말했다. ‘매스 스타트 출전자격에 1명을 추천으로 둔 이유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려는 거다. 넌 뛸 수 없다’고 했다.”
─ 말이 안 된다. 금메달이 국위 선양을 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지원하는 거 아닌가? 한국 선수 아무나 금메달 따면 되지 왜 주형준 선수가 한국 선수끼리 결승점에서 1, 2위 다툴 때 경쟁하겠다는 것도 막는 건가. 게다가 기자회견장에서 백철기 감독은 ‘밀어주기 없다’고 했다. 거짓인 건가? 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아는가.
“모르겠다. 그냥 그게 공식처럼 돼 있으니까.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 그 공식이 대체 뭔지, 누가 만든 건지 궁금해서 지난해부터 취재를 해 왔다. 한 사람이 설계했다고 꼽히는데 실제 ‘그 분’을 찾아 간 날 밀어주기 공식의 수혜자라고 알려진 선수 2명이 따로 떨어져 나와 개인훈련을 하고 있더라. 일부 누리꾼은 “그 둘은 태릉 선수촌에 롱 트랙이 없다는 이유로 한체대에서 롱 트랙 개인 훈련을 한다”며 옹호하던데 확인해 보니 태릉에 롱 트랙, 쇼트 트랙이 다 있었고 한체대에는 되려 쇼트 트랙밖에 없더라. 결국 개인 훈련을 목적으로 갔다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직접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은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떠나 있었던 2017년 9월에 찾아 갔던 거다. ‘그 분’ 연구실 앞에서 몇 시간 기다려 만난 뒤 “다른 선수에겐 왜 개인 훈련 기회를 안 줍니까?”라고 물었다. 그가 말하더라. “다 주는데 해 달라는 선수가 없었다”고. 다른 선수들 수소문해서 물어 봤더니 “받고 싶은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서 말한 적 조차 없다”고 하더라. 실제 요청자도 거절 당한 사람도 없었다. 주형준 선수는 그런 적 있나.
“나는 있다. ‘그 분’ 연구실로 찾아가 ‘나도 특정 선수처럼 한체대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싶다’고 가르침을 요청 드렸다. 그러자 ‘그 분’은 ‘그냥 태릉선수촌 들어가서 운동해라. 밥 데 용 코치도 섭외했으니까. 그 안에서 하라’고 했다.”
─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분’이 거짓말을 한 건가. 알았다. 그 외 억울한 일은 없는가.
“없다. 다른 종목에서 실력 모두 인정한다. 다만 나도 더 발전하고 싶어 가르침의 기회를 받고 싶었던 건데 거절 당했다.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러 보고 싶었다. 그게 다 가로 막히고 페이스 메이커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돼서 매우 답답했다.
─ 이렇게 이야기하면 비난이 폭주할 수도 있다. 수혜를 받는 선수 실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력 없다고 주형준 선수를 비아냥댈 사람도 있단 거 안다. 이렇게 인터뷰 하는 게 누굴 폄하하려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욕 먹을 각오는 됐는가.
“어머니께서 가장 마음 아파하신다. 악성 댓글이 나를 넘어 어머니께도 향한다. 나야 이 꽉 깨물고 달리면 된다. 이제까지 나 때문에 고생하신 부모님이 욕을 먹는다는 게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인터뷰 뒤 기사가 작성되고 다시 한 번 공개 여부를 묻자 3월 2일부터 주형준 선수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틀 뒤인 3월 4일 주형준 선수가 다시 나왔다. “인터뷰 내용을 기사에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동두천시청에서 ‘어떤 힘’이 작용해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우려가 생겼다. 난 스케이팅을 정말 사랑한다. 계속 타고 경쟁해서 꼭 다음 올림픽까지는 타고 싶다. 그러니까 지금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대체 뭐가 그리 무서운가
“난 스케이팅을 정말 사랑한다. 근데 지금 정말 무섭고 두렵다. 이걸 다시 못하게 될까 봐. 어떤 보복이 다가올 지 알 순 없다. 그냥 무섭다.”
─ 스피드 스케이팅은 기록 경기라 누군가 방해해도 기록이 그냥 나온다. 누가 두려움을 주든 말든 방해 자체가 없어서 자신의 실력이 온전히 기록될 수 있다. 뭐가 무서운 건가.
“선수는 되도록 많은 경기를 나가고 싶어한다. 팀 추월도 매스 스타트도 욕심이 난다. 더군다나 난 쇼트 트랙을 했던 사람이다. 비슷한 게임인 매스 스타트에 애착이 간다. 지난해 삿포로 때 페이스 메이커를 거절해서 경기에 못 나간 게 마음에 계속 걸린다. 추천제가 없었으면 내가 5000m 3위였으니까 뽑혔어야 했다. 앞으로 추천제가 계속되면 불이익이 올까 두렵다.”
─ 매스 스타트는 개인 경기지만 5000m 기록과 추천으로 사람을 뽑는다. 올림픽에는 2명이 나가고 아시안게임은 3명이 나간다. 5000m 1등 1명과 추천 선수 1명이 올림픽 무대에 서고 5000m 등 기록 좋은 선수 2명과 추천 선수 1명을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는다. 올림픽은 그렇다 치자.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했다면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텐데.
“인정한다. 다만 난 5000m와 매스 스타트는 다른 경기라고 생각한다. 선발전을 거쳐 정정당당하게 승부한 뒤 기록으로 뒤져서 경기에 못 나갔다면 깨끗이 인정했을 거다. 원래 있었다가 없어졌으니까. 그걸 다시 되돌리자는 거다. 백철기 감독이 내게 페이스 메이커 요청을 했었고 그걸 거절하자 ‘도와줄 수 없는 선수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난 그 상황이 싫은 거다.”
─ 선수가 무서워할 건 부상이나 슬럼프지 외부 상황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체 왜 운동선수가 사람과 체계를 두려워하는가.
”이제까지 선수인 주변 친구들과 선후배가 아무런 이유 없이 피해 받는 걸 본 적 있다. 그게 나에게도 미칠까 봐 두려운 거다.“
─ 예전에 국가대표팀 코치 한 명이 여자 선수를 성추행 하려다가 경찰에 붙잡힌 적 있다. ‘그 분’은 이 사태를 덮고 코치를 감싸주고자 피해 여선수를 ”자신의 세력권 안에 있는 한 도청 실업팀으로 보내겠다“고 회유했었다. 피해선수가 그 팀으로 갔다. 실업팀은 한정된 예산으로 돌아가니까 한 사람이 오면 한 사람이 나가야 한다. 애꿎은 피해자가 나왔다. 원래 그 팀에서 잘 뛰고 있던 선수 하나는 직업을 잃었다. 그게 곪다가 터진 게 그 사건이었다. ‘그 분’ 영향력이 실업팀에도 영향을 끼쳐 당신의 인생이 어려워질 것을 직감해서 나오기 어렵다고 한 건가.
”그렇다. 이렇게 내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면 가장 먼저 내 직업이 사라질 것 같아서 두렵다.”
─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가.
“계속 해보고 싶다. 난 이걸 좋아하니까. 단기적인 목표는 2022년 동계올림픽이다.”
─ 2022년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되는 양대 대회, 동계 아시안게임과 동계올림픽 기준 딱 두 번 남았다. 가장 두려운 건 뭔가.
“온전하게 소속 실업팀에서 외압 없이 운동하고 계속 내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데 있어 방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면 된다.”
인터뷰 기사를 내지 말라달라고 한 주형준 선수에게 ‘일요신문’은 공약 몇 개를 내걸었다. “소속팀인 동두천시청에 외압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 ‘일요신문’이 직접 동두천시청을 찾아가 사실관계를 취재하겠다”, “은퇴 때까지 국가대표 선발전에 직접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겠다”, 그리고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를 추천제로 뽑는 걸 계속해서 비판하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인터뷰 기사 출고를 허락 받았다.
‘일요신문’은 2월 25일부터 3일 내내 전화와 문자 등으로 주형준 선수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3일만인 2월 28일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5시간을 내줬다. ”내일 운동해야 하지 않냐. 내가 너무 늦게 만남을 요청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운동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만 두고 싶다. 다 포기하고 싶다. 게다가 이미 망가져서 오후 12시든 오전 1시든 상관 없다“고 했다. 당시 주형준 선수 모친에게 누리꾼의 비난이 쏠려 주형준 선수까지 힘겨워 하는 상황이었다.
이튿날 오전에 ‘일요신문’은 주형준 선수에게 오후 만남을 또 다시 요청했다. 그가 말했다. ”운동을 가야 한다. 일단 나 운동하고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운동을 그만 두고 싶다던 선수는 “운동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