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기왕의 포맷은 단순하다. 두 대국자가 복면을 쓰고 자신을 숨긴 채 대결을 벌여 패자가 복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하는 형식을 취했다. 노래 대결을 벌여 점수가 낮은 쪽이 얼굴을 공개하는 복면가왕의 포맷을 차용한 것이다. 정식 대회 명칭은 제1회 SGM배 월드바둑챔피언십. 월드바둑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답게 중국과 일본 등에도 문호를 개방해 세계적인 기사들의 참가를 유도했다.
국제기전답게 우승상금도 1억 원으로 책정해 대회 규모부터 만만치 않다. 온라인 예선을 거쳐 본선 32강에는 한국 17명, 중국 14명, 일본 1명이 올랐는데 이 색다른 기전에 중국과 일본 기사들도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대국자가 복면을 쓰고 대결을 벌이는 색다른 기전에 중국 일본 기사들도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주최 측인 K바둑은 보안을 위해 복면 기사들의 정체를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데 64강전 당시 특별 공개됐던 이세돌 9단, 박정환 9단, 천야오예 9단, 판팅위 9단이 32강전까지 살아남았는지도 관심거리다. 이들의 면면으로 봤을 때 세계적인 강자들 대부분이 복면을 착용한 채 이번 대회에 참가했으리라고 짐작된다.
대회 방식은 랭킹 시드 34명(한국 16·중국 12·일본 6)과 와일드카드 10명, 그리고 온라인 통합 예선 통과자 20명 등 총 64명이 인터넷(사이버오로)상에서 예선 결승을 치렀다.
K바둑 스튜디오서 벌어질 대국 출전자는 반드시 복면을 착용해야 한다. 바둑 승부에는 반전무인(盤前無人)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강자의 프리미엄’이 엄격하게 작용되는데 복면을 쓴 채 대국을 벌이면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실력 외적인 부분이 승부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관전하는 입장에선 대국자에 대한 선입견 없이 관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따라서 의외의 다크호스가 깜짝 쇼를 펼치는 반전 상황도 기대된다.
K바둑은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베네치아풍의 복면부터 복면가왕 오마주 복면까지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기사들이 착용할 복면의 경우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K바둑이 직접 제작했으며, 베네치아풍의 복면에서부터 복면가왕의 오마주 복면까지 바둑 외에도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제작진이 힘을 기울였다는 후문. 또 대국 중에도 기존의 방송에서 볼 수 없던 카메라 무빙으로 복면 선수들의 눈빛과 손동작을 잡아내도록 했다. 여기에 시청자와 함께 카메라가 선수 추측을 위한 단서를 찾고, 이를 진행자와 해설자들이 돕는 공조 시스템으로 대국의 흥미를 한껏 올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이밖에도 일반 바둑 프로와 달리 현장 MC를 따로 배치해 대국장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바둑이 끝난 후에는 복면을 벗은 패자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간도 준비했다. 또한 출전자들은 이름 대신 자신이 임의로 정한 별명으로 불리며 우승자는 우승이 확정된 연후에야 비로소 복면을 벗도록 했다.
한편 지난 15일 판교 K바둑 스튜디오에서는 제1회 SGM배 월드바둑챔피언십 32강전 첫 대국이 펼쳐졌다. 복면을 쓰고 처음 벌인 이 대국에서 ‘어반자카파’와 ‘별의전쟁’이 맞붙어 어반자카파가 208수 끝에 백 불계승을 거두고 제일 먼저 16강에 올랐다.
본선 32강전 첫 판 어반자파카(왼쪽)와 별의전쟁의 대국.
대국이 끝난 뒤 어반자카파는 “복면을 착용하고 대국을 벌이는 것이 의외로 불편하지 않았다. 제한시간이 긴 대국이라면 불편할 수 있겠지만 2시간 정도 대국하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고 복면 대국의 소감을 말했다. 그는 이어서 “복면을 착용하고 자신을 숨겨도 상대를 쉽게 알아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독특한 버릇을 지닌 대국자가 아니라면 누군지 알아맞히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바둑팬들의 반응도 기대감이 줄을 이었다. 인터넷 바둑 게시판의 한 팬은 “대환영! 바둑도 이런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에 마케팅 요소가 융합돼야 즐거움이 따르고 인기를 얻는다. 앞으로 계속 다듬고 도전하면 또 다른 바둑 발전 방식이 보일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복면기왕’은 그동안 바둑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정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를 희석시켰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바둑은 눈을 가리고 두는 ‘맹기(盲棋)’, 한 가지 색만으로 전체 대국을 소화하는 ‘일색(一色) 바둑’ 등 이색 이벤트가 있었지만 대국자는 물론 프로그램 전체가 엔터테인적 요소를 갖춘 것은 ‘복면기왕’이 처음이다. ‘복면기왕’이 바둑가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 것인지 기대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