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는 5주에 걸쳐 펼쳤던 빙상연맹 특정감사 결과를 5월 23일 발표했다. 찬사가 쏟아졌다. 10년 넘게 해결되지 않았던 빙상연맹의 해묵은 문제점이 모두 드러났다. 문체부는 빙상연맹의 문제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한체대 빙상장을 지목했다. 성추행 의혹이 있는 지도자의 회전문 인사 채용 및 부적절한 대관 등으로 전명규 한체대 교수가 빙상계 안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봤다. 문체부는 이러한 내용을 살펴 보라고 교육부에 사실통보했다. (관련 기사: ‘빙상 대부’ 전명규, 삼성이 쥐어준 칼 마음껏 휘둘렀다)
교육부는 이러한 내용을 문체부 감사 기간이었던 4월부터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전명규 교수의 문제가 언론에서 지적되자 교육부는 임 아무개 고등교육정책과 사무관과 황 아무개 국립대학정책과 주무관 등 2명을 한체대로 4월 23일부터 이틀 파견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조사 결과도 발표되지 않았다. (관련 기사: 전명규 한체대 교수 관련 교육부 해명… ‘눈 가리고 아웅’ 논란)
교육부는 5월 23일 문체부가 사실통보를 보내자 5월 28일부터 사흘 온안 한체대 조사에 다시 나섰다. 4월 조사 때 인력을 포함 고등교육정책과장과 국립대학정책과장까지 함께 했다. 담당부서 과장까지 붙었지만 교육부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 피해자 조사는커녕 ‘갑질’ 조사로 물의를 빚고 있다.
황 주무관은 전명규 교수의 조교였던 A 씨에게 5월 28일 오후 1시쯤 “오늘 오후 한국체대로 오셔서 조사에 응해달라”고 했다. A 씨는 전 교수에게 골프채를 상납당하고 휴대전화 요금을 대신 지불해 오는 등 전 교수의 갑질 피해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교육부는 피해자를 서울에 있는 ‘피해 장소’로 ‘당일’ 오라고 했다. A 씨는 강원도에 산다. 황 주무관은 이에 대해 “원하는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황 주무관은 결국 제보자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문체부의 빙상연맹 감사와 비교돼 교육부는 ‘대충 조사’ 비난을 받고 있다. 문체부는 이번 감사 때 영업일 기준 26일 동안 50여 명에 이르는 관계자를 직접 만났다. 장소는 관계자가 원하는 곳으로 잡았다.
교육부가 한체대에서 발생한 문제를 쉬쉬하며 대충 처리한 건 처음있는 일이 아니다. 2012년 발생했던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C 씨의 학칙 위반 및 타 학부모 모욕 행위 관련 징계 때도 교육부는 나서서 민원인을 회유하고 일방적인 종결 처리로 물의를 빚은 바 있었다.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당시 한체대 학생이었던 C 씨는 2012년 초 훈련소에 입소해 4주 동안 군사 훈련을 받았다.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는 군 면제가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예술체육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4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은 뒤 자신이 메달을 딴 분야에서 2년간 활동해야 군 문제가 해결된다.
문제는 학칙상 한체대 학생은 재학 중 군 입대가 제적사항이었다는 점이다. 군 입대 사유로는 휴학조차 되지 않는 게 한체대다. 한체대 학생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 받기 때문에 재학기간 동안은 훈련에만 집중하라고 이와 같은 학칙이 정해져 있다.
군 입대 문제뿐만 아니었다. C 씨 문제는 또 있었다. C 씨는 2012년 3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위치한 탄천빙상장에서 훈련 중 자신의 모친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D 선수의 모친 멱살을 잡고 “씨X X 같은 X 패 죽여 버린다”고 말해 모욕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도 있었다. C 씨는 당시 한체대에서 훈련 받지 않고 탄천빙상장에서 개인 코치에게 훈련을 받았다. C 씨 모친은 개인 코치에게 C 씨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선수에겐 관심을 덜 쏟도록 종용했다고 알려졌다. D 선수 모친이 C 선수 모친에게 문제를 제기하려 “밖에서 대화 좀 나누자”는 찰나 발생했던 일이었다.
D 선수와 D 선수 모친은 이 사태를 참을 수 없었다. 한체대에 “입대 문제 관련해 C 씨를 학칙에 따라 제적하고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지도록 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2012년 4월 이 아무개 당시 학생지원팀장은 “전명규 교수가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빙상계에서 계속 활동할 거면 전 교수와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며 “C 씨가 잘못한 거 다 안다. 허나 이게 문제가 되면 전 교수가 크게 다친다. C 씨가 싹싹 빌도록 조치하겠다. 민원을 취하해 달라”고 D 선수 모친을 회유했다. D 선수 모친은 거절했다.
한체대는 피해자 회유가 불가능하다는 걸 파악한 뒤 곧바로 입장을 바꿨다. 한체대는 “군입대자 제적은 현역 입대만 의미한다고 유권해석됐다”며 “C 씨의 4주 군사훈련은 학칙 위배 사항이 아니다”라고 민원을 종결시켰다. 모욕 혐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서는 봉사활동 10일 징계가 내려졌다.
문제는 한체대가 학칙의 유권을 해석하며 판단 근거로 제시했던 의견서가 전명규 교수와 특수관계에 놓인 법무법인의 입장이었다는 점이다. 이 법무법인은 전 교수가 빙상연맹 부회장일 때 내부감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전 교수의 법률 자문 격으로 활동해 온 곳이었다.
억울했던 피해 모자는 상급기관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에 또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당연히 한체대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학선진화과 주무관으로 이 일을 담당했던 김 아무개 교육일자리총괄과 사무관은 “학칙으로 한 선수를 징계 주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한체대에서 법무법인의 유권해석을 받았다. 타당하다. 별 문제 없다”고 D 씨 모친에게 말했다.
당시 병무청의 입장은 한체대와 교육부의 유권해석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병무청은 당시 “예술체육요원은 소집되면 소집과 동시에 훈련소에 입소해 기초군사교육을 받고 군인 신분으로 군인사법의 적용을 받는다. 훈련 기간에는 군인으로 이등병 계급”이라고 입장을 냈다. 당시 담당자 김 사무관은 4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군 입대 관련한 문제는 한체대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부분이었다. 재학생일 때 4주 군사훈련을 받은 모두에게 소급 적용하면 일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처리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한체대 문제에 있어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순환보직제 탓이다. 교육부는 순환보직제 관행에 따라 교육부 공무원을 국립대 주요 사무국장 자리에 파견한다. 현재 교육부 소속 공무원 5명이 차장급 이상의 직급으로 한체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교육부와 한체대는 같은 밥 그릇을 나누는 ‘식구’인 만큼 서로의 문제점을 들추기에 어려운 구조에 빠져 있는 셈이다.
교육부는 전명규 교수의 조교 갑질 외 전문실기 과목을 가지고 갑질하는 한체대 학점 체계도 조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체대 특기생은 학기마다 4학점 짜리 전문실기 수업을 모두 이수해야 졸업 가능하다. 이승훈은 2010년 3월 15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운동을 중단하고 3개월 동안 학교 수업만 참석하며 휴식을 취했다”고 말했다. 이승훈의 동기 선수 2명 역시 “이승훈은 2009년 4월부터 7월 방학 때까지 교양과 전공 수업 등은 받았지만 전문실기 수업 때에는 날마다 조퇴를 하는 식으로 수업을 빠졌다”고 29일 ‘일요신문’에 털어놨다. 2009년 1학기 전문실기를 듣지 않았던 이승훈은 4년 만에 정상 졸업했다. (관련 기사: ‘3개월 수업 빠진 이승훈, 정상 졸업?’ 교육부의 한체대 조사 8대 쟁점)
반면 스켈레톤 선수 윤성빈은 관련 서류를 다 제출했지만 전문실기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국제경기에 출전하거나 국가대표에 차출되는 선수는 관련 서류를 학교에 제출하면 출석을 인정 받는다. 하지만 서류 인정 여부는 철저히 교수 권한이다. “한체대 전문실기교수 중에서는 메달이 유력한 선수의 국제경기가 졸업 직후에 있을 경우 전문실기 점수를 이용해 학생의 졸업을 막기도 한다”는 한체대 전직 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 학생의 국제경기 성적은 교수의 성과로 직결된다. 실기 교수는 담당 학생의 성과에 따라 교수 자리를 연장 받는다. (관련 기사: 한체대, 실적 챙기려 스켈레톤 윤성빈 졸업 막았나)
교육부는 이승훈 출석 문제를 과거에 이미 조사한 바 있었지만 덮고 넘어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익명을 원한 한 한체대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2014년쯤 조사를 한 적 있었다. 당시 교육부와 관계가 좋던 한 교수가 질문지를 미리 받아 이승훈에게 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송경원 교육부 대변인실 서기관은 “물어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취재 협조가 어렵다”고 전했다.
교육부에서 한체대 문제를 조사 중인 고등교육정책과와 국립대학정책과 담당자 및 각 과 과장, 김규태 국장, 이진석 실장, 박춘란 차관은 1차 조사가 있었던 4월 23일부터 4일까지 ‘일요신문’의 연락을 모두 받지 않았다. 4일 ‘일요신문’은 직접 세종시 교육부 청사를 찾았다. 두 부서 담당자와 책임자 모두 연락도 일체 받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뒤늦게 연락된 최수진 국립대학정책과장은 “조사 내용은 일일이 말할 수가 없다. 이야기 할 의무도 없다. 다 끝나면 말하겠다”고 밝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교피아’와 대학의 내부 정보 거래 교육부의 내부 정보 유출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교육부는 5월 7일 사학비리제보자 신원 등 정보 유출 혐의로 받고 있는 이 아무개 서기관을 직위 해제하고 인사혁신처에 중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수사 의뢰도 있었다. 이 서기관과 대학 관계자 2명은 검찰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수원대 실태조사가 실시된 지난해 10월 이 서기관은 수원과학대 경영관리실장과 여러 차례 만났다고 확인됐다. 수원과학대와 수원대는 같은 학교법인 소속이다. 수원대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 14일에도 둘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둘은 대학 선후배 관계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이 서기관이 수원대 비리 제보자의 신원정보를 수원과학대 경영관리실장에게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이인수 전 수원대 총장이 100억원대 회계부정을 저지른 의혹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해 이 전 총장을 해임했다. 교육부는 이 서기관이 충청권 한 사립대의 총장 비위 관련 내부 자료를 유출했던 사실도 확인했다. 이 서기관은 총장 비위 관련 교육부 내부 자료를 이 학교 교수에게 휴대전화로 전송했다고 나타났다. [최] |
‘교피아’ 천국 국립대? 부실 사립대에서도 대접 받는 교육부 출신 인사 한체대를 비롯 국립대는 교육부 공무원의 징계에 따른 전략적 완충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징계를 받았던 교육부 소속 공무원들은 국립대로 피해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립대는 전관예우 받는 고위 공무원의 둥지 역할을 자처했다. 2015년 업무 관련 민원으로 164만원을 받은 한 서기관과 현금과 향응 등 1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던 또 다른 서기관은 국립대로 전보 조치 됐다. 교육부는 그 해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는 5등급을 받아 최하위권에 속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순환보직제는 관치관행이니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목소리가 청와대에서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립대에는 교육부 출신 인사는 대거 자리해 있다. 특히 고위 간부는 사립대에서 편한 노후를 보장 받기도 한다. 2017년 10월 12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공개한 교육부 제출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 출신 대학 교직원은 총 28명이었다. 모두 교육부에서 평균 22년 재직한 고위 간부였다. 전직 관료 28명 가운데 21명이 조교수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총장 7명, 부총장 2명으로 평균 연봉은 9678만 원으로 집계됐다. 더 큰 문제는 교육부 출신 교직원 28명 가운데 3분의 1이 부실 사립대로 똬리를 틀었다는 점이었다. 교육부 출신이 자리 잡은 사립대 24곳 가운데 2015년 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D, E등급을 받은 대학은 총 8곳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교육부의 강도 높은 개혁이 예고된 가운데 이들이 로비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교육부 출신 공무원은 사학감사담당관실에서 일하다가 자신이 감사했던 학교 비서사무행정과 교수로 임용된 까닭이었다. 모든 행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