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노래로 보이지만 대박자송엔 숨은 1인치가 있습니다. ‘대박자’는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는 노래 제목의 줄임말입니다. 거친 욕설도 가사에 담겨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자살을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를 드러내고 있는 까닭입니다.
반면,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고 항변 중입니다. 대중문화평론가와 교사들의 목소리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대박자송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가운데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일요신문i’가 대박자송을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습니다.
대박자송을 부른 가수는 ‘교문앞병아리’입니다. 대박자송은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있잖아. 나는 X멍청이야, 낮에 갔던 길은 밤에 못가 X멍청이야, 우리 집 강아지도 나보다는 길을 잘 찾아. 나는 우리 집도 못 찾아가 X멍청이야”라는 가사로 시작합니다.
후렴구가 압권(?)입니다.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는 가사가 반복됩니다. 욕설을 포함하고 있지만 여성 보컬의 맑은 목소리 탓에 노래의 전체적인 느낌은 밝습니다. 유투브 ‘교문앞병아리’의 채널에서 ‘대박자송’을 향한 뜨거운 반응을 느낄 수 있는 까닭입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자살충동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한 누리꾼은 “이 노래처럼 누군가 밝은 어투로 자살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자살충동이 해소되며 굳세게 살아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게 바로 카타르시스일까”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다른 누리꾼은 “노래를 듣고 자살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감되면서 우울한 생각이 없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대박자송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한 청소년은 “제가 이 노래를 학교에 퍼뜨렸습니다. 응원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다른 청소년은 “집에 갈 때 틀고 갔더니 유행을 해서 우리 학교 아이들 대부분 알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부 청소년들은 성적 경쟁에 시달리는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대박자송을 통해 상당한 위로를 얻고 있었습니다.
교문앞병아리 측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냈다”며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점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노래를 들으면, 조금은 힘이 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굉장히 자극적인 제목과 가사로 시선을 끄는 게 사실이다”며 “하지만 자살 관련 내용에 대해 폭주하는 부분이 생기면 위험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유튜브엔 제어장치도 없는데 아이들이 노래를 듣고 자살이란 단어를 쉽게 쓸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대박자송의 가사에는 ‘자기비하’를 암시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교문앞병아리’의 남성 보컬은 대박자송에서 “나는 쓰레기 새X에 대가린 멍청해 바보라고 해, 내 대가리 속에는 X동만 잔뜩 있을 게 뻔해, 내가 X지든 말든 사람들은 모를 게 뻔해”라며 “어차피 조X 인생인데 먼지가 될게, 우리는 똥보다도 못하네”라는 내용의 가사를 부릅니다.
일선 교사들도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경기도 김포시에서 3학년 학생을 가르치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애들은 재밌어 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 영향이 있다. ‘자살’은 결코 가볍게 쓰이면 안되는 단어다”며 “4학년 이전까지는 언어생활에 대한 통제가 들어간다. 노래를 통해 배우면 아이들이 자살이란 단어를 가볍게 인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성북구의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제가 가르치는 애들이 이 노래를 듣고 낄낄 웃으면서 자조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많이 슬플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어딘가 풀죽어 보일 때가 가장 마음 아프다. 차라리 당돌한 모습이 예뻐 보인다. 어떤 생각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문앞병아리 측은 “절대적으로 어떤 것을 조장하려고 노래를 만든 것은 아니다”며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우리의 자전적인 노래를 듣고 ‘노래를 부른 사람들도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으니 힘을 내보자’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으면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박자송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등장했습니다. 청원자 A 씨는 6월 7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대박자송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며 “아직 자아형성이 덜된 아이들에게 절대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아이들 자존감을 파괴하고, 극단적 선택을 조장하는 매우 위험한 콘텐츠다”며 대박자송의 유해곡 지정을 촉구하는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청와대 청원 탓일까요? ‘일요신문i’ 취재 결과, 최근 여성가족부가 대박자송을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했습니다.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안전과 관계자는 “우리 부처에서 한 달에 두 번 음원에 대해 사후 심의를 한다. 6월 19일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대박자송이 유해매체물로 지정됐다. 자살 방조 의미가 가사에 있어서 판단한 것은 아니다. 대박자송의 단어 하나하나가 아닌 전체 맥락을 살폈다”고 설명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여가부가 다음 달에 관보에 고시하면 고시일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유튜부 사이트에도 청소년 접근제한 조치가 될 것”이라며 “불법은 아니고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이기 때문에 성인인증을 거쳐야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은 음반과 뮤직비디오는 겉면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임을 알리는 표시를 해야 하며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교문앞병아리 측은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교문앞병아리의 한 멤버는 “우리도 곡을 만들 당시엔 절대 유통이 안 되고, 만약 유통이 되더라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하지만 처음에 유통이 됐을 때는 유해 매체물로 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찾게 된 순간 1시간 만에 여가부에서 조치를 했다. 곡을 아무도 몰랐을 때는 신경을 쓰지 않다가 구설수에 오르자마자 바로 지정한 것은 조금 화가 난다”고 호소했습니다.
‘교문앞병아리’ 측은 이어 “여성가족부의 조치 때문에 우리들의 창작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 욕설이 포함된 노래만을 무조건적으로 할 생각은 없다. 그런 쪽으로 노래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다들 공감 할 수 있는 노래를 작곡할 생각이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