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각 원내교섭단체 대표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국회의장단 선출과 상임위 구성 등을 논의하기 위해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법사위를 두고 생긴 이 같은 갈등은 법사위가 흔히 상원에 비유할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각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의 심사를 법사위에서 하기 때문이다. 다른 법과 부딪히지는 않는지, 법 체계상 부적절하지 않는지를 평가하는 일종의 교통정리 기능을 담당한다. 이렇다 보니 소관 상임위는 통과했지만 법사위에 계류된 채 결국 법안 상정이 불발되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상반기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의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핵심 법안에 대해 ‘발목잡기’를 했다며 후반기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에 법사위를 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밝혔다. 원구성 협상 타결 하루 전까지 민주당이 ‘양보 불가’ 방침을 주장하자 9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더불어민주당은 더 이상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는 그만하고 떼쓰기를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원구성 협상에 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갈등 끝에 10일 원구성 협상이 타결되면서 상임위 배분이 마무리됐지만 뒷말은 여전하다. 어떤 당이 더 상임위 배분 협상에서 이익을 봤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대체로 민주당이 협상을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알짜 상임위를 한국당이 다 가져갔다’며 홍영표 원내대표의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반면 국회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이 만난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간단히 보면 알짜 상임위를 한국당이 다 가져가서 민주당이 실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니다. 한국당은 국토교통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쉽게 말해 지역구 관리에 유리한 곳을 가져갔는데 말하자면 여긴 살이다. 뼈라고 볼 수 있는 운영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정무위원회, 국방위원회는 민주당이 다 취했다. 살을 내 주고 뼈를 취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한국당이 지역구 관리에 용이한 곳은 가져갔지만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문제가 될 만한 곳은 한 곳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어차피 법사위는 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민주당이 80석이었던 18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은 민주당이 했다”며 “뼈는 민주당, 살은 한국당으로 완벽하게 나눠졌다. 이 정도로 확실하게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은 결과는 어느 정도 청와대와 교감한 게 아니냐고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비슷하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 역시 국회 근무 경력이 긴 한국당 한 관계자는 “보수의 핵심은 결국 경제와 국방이다. 경제의 핵심인 기재위와 정무위에다 국방위마저 민주당으로 갔다. 더군다나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는 데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를 감시하는 행정안전위원회도 내줬다. 어디서 감시하고 공세를 취할지 모르겠다”며 “알짜로 불릴 만한 상임위는 얻었지만 작은 승리다. 당 전체로 보면 참패한 협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한국당 관계자는 “예결위는 정부가 안을 내고 4당이 협상해야 하는 곳이다. 위원장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없다”며 “특히 원래 가져와야 할 법사위를 민주당이 잘 흔들면서 법사위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실현될지 모르지만 합의 자체가 엄청난 후퇴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어차피 민주당이 가져갈 청와대 등을 감시할 운영위원회를 달라고 맞불을 놨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악의 상임위 배분을 받은 원내 교섭단체로는 바른미래당이 꼽혔다. 의석수가 훨씬 적은 민주평화당보다 못하다는 분석이 많다.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도 “두 곳의 상임위원장을 차지했지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찢어진 교육위원회를 받았고 정보위원회를 받았다”며 “(피감 기관 중 국정원이 있는) 정보위원회는 계륵 같은 곳이다. 속된 말로 ‘가오’는 있지만 실익은 전무하다. 더군다나 국정원이 여당도 아니고 제1야당도 아닌 3당인 우리 말을 듣겠냐”며 혀를 찼다.
반면 14석에 불과한 민주평화당은 알짜 중 알짜로 꼽히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민주평화당이 농어촌이 많은 호남에 집중된 만큼 파급력이 클 전망이다. 오히려 너무 큰 전리품을 가져간 만큼 다른 시각의 분석도 나온다. 앞서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민주평화당이 농해수위를 가져간 건 이해할 수 없다. 민주당, 한국당 모두 영호남에 근간을 둔 만큼 두 당 모두 뺏길 수 없는 상임위였다”며 “민주당이 나중에 평화당과 통합하리라 봤거나, 이번에 평화당을 챙겨주고 나중에 표결에서 밀어달라는 어느 정도 암묵적 합의가 있지 않았겠냐”고 귀띔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