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토막 난 시신이 발견된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인근 수풀. 시신은 당시 청계산 등산로 입구에서 10미터(m)도 안되는 곳에 유기됐다.
지난 19일 오전 9시 40분쯤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장미의 언덕 주차장 인근 수풀에서 시신이 담긴 비닐봉투가 발견됐다. 시신은 머리와 몸통, 다리가 분리돼 있었고 썩은 냄새가 날 정도로 부패했다. 담요로 싸인 머리는 검은색 비닐봉지에, 몸통은 무릎 부위가 절단된 채 검은색과 흰색 비닐봉지에 담겼다. 토막 난 시신은 2~3미터(m) 떨어진 지점에서 각각 발견됐다. 서울대공원 경비대장은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시신이 들어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시신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안 아무개 씨(51)로, 특정인에 의해 토막살해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곧 용의자가 특정돼 체포됐다. 피해자 안 씨가 지난 10일 오전 1시쯤 경기도 한 노래방 업소 주인인 변경석 씨(34)와 실랑이를 벌이다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 것. 당시 안 씨는 변 씨에게 “노래방 도우미가 재미있게 놀아주지 않으니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변 씨가 이를 거부하면서 시비가 붙었다. 안 씨는 “도우미 제공 사실을 신고하겠다“며 협박을 가했고 변 씨는 이에 격분해 흉기로 안 씨의 몸 부위를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박기희 과천경찰서 수사과장은 “당시 술에 취해있던 변 씨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며 “둘이 본래 알던 사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변 씨는 살해한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노래방에서 훼손했다. 이후 변 씨는 수풀이 많은 곳을 검색, 서울대공원 인근이 시신을 유기하기 좋은 곳이라 판단하고 차량으로 토막 난 사체를 옮겼다.
토막살해범 변경석 씨가 운영하던 노래방. 변 씨는 노래방에서 안 씨를 살해했다.
경찰의 변 씨 검거는 예상보다 빨랐다. 시신 발견 이틀 만에 용의자를 특정, 변 씨를 체포한 것. 19일 서울랜드 관리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를 살인사건으로 판단하고 범인 추적에 나섰다. 당초 경찰은 시신에서 지갑 등 별다른 소지품을 찾지 못해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문 조회로 사망자가 경기도에 거주하는 안 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는 곧바로 속도가 붙었다. 경찰은 안 씨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 마지막 사용 일을 확인해 살인이 시신 발견 10일 전쯤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벌이고 특히 과천에 설치된 다수의 CCTV 영상을 확인해 수사망을 좁혀나갔다.
경찰은 안 씨의 동선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용의자를 특정했다. 안 씨가 다녀간 노래방 주변에 정차했던 쏘렌토 차량을 서울대공원 사건 현장 주변 CCTV 영상에서 확인한 것. 변 씨가 누군가에게 발각될 것을 염려해 차량 전조등을 켜지 않은 채 운전한 것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변 씨는 시신 유기 이후에도 동일한 차량을 이용했다. 경찰은 앞서의 단서들로 변 씨를 추적, 21일 오후 4시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휴게소에서 변 씨를 긴급체포했다. 변 씨는 체포 직후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이날 6시 30분쯤 경기 과천경찰서로 압송된 변 씨는 범행동기와 살해 이유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평소 변 씨는 주변 이웃들과 교류가 없었다. 경기도 안양에 노래방을 차린 지 1년 가까이 됐지만 별다른 관계를 맺지는 않은 것. 변 씨의 노래방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 씨는 “보통 입주하면 손님들을 자기네 노래방으로 보내달라고 부탁도 하고 인사도 할 겸 밥 먹으러 올 텐데 그런 적이 없었다”며 “아마 다른 가게 주인들과도 교류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웃 가게 주인인 B 씨는 “가까이 있으니 오고가며 인사를 나누긴 했는데 성격이 온순해 보이진 않았다”며 “사건 발생 전에도 노래방에서 자곤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변 씨의 범행을 예상치 못했다.
경찰은 변 씨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키로 결정했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변 씨의 모습. 연합뉴스.
변 씨가 시신을 유기한 장소가 눈에 잘 띄는 곳이란 것도 의문이다. 박 수사과장은 “변 씨가 시신을 유기했을 시간이 밤이라 깜깜해서 그곳이 시신을 감추기 적당한 곳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위치상 해당 장소는 도로변과 맞닿아있으며 청계산 등산로 입구로부터 약 10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오고가는 이들에 의해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장소였던 것. 일각에선 변 씨가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로 그곳에 사체를 뒀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범행을 저지른 곳에서 수일 동안 숙식을 해결, 살해 흉기를 고스란히 제자리에 남겨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여타 살인 사건을 살폈을 때 용의자들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감추고 범행 현장을 빠져나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다. 특히 이번 사건은 범행 은폐를 위해 시신을 토막 냈다고 내다본다. 일반적으로 원한이 많거나 분풀이를 위해 토막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만, 둘은 일면식이 없어 그런 심리적 요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일면식이 없는 만큼 변 씨는 안 씨를 살해함으로써 격분한 감정을 해소했을 것”이라며 “시체 운반이 용이할 수 있도록 토막 살인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변 씨가 다소 지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눈에 띄는 곳을 사체 유기 장소로 택하거나 범행 장소에서 숙식, 흉기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사고·선택이기 때문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살해자들은 보통 사체를 자신이 친밀감을 느끼는 곳에 유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범행 현장에서 수일 동안 생활했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이는 인지·지적 수준이 떨어져 나타난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앞서의 이수정 교수는 “나름 범행을 숨기고자 변 씨 딴엔 최선의 사고를 했겠지만 그 행적이 치밀하지 못했다”며 “파편적인 발언이나 논리적이지 못한 진술 등은 지적 수준과 결부된다”라고 분석했다. 또 “별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외톨이로 지내 범행 현장을 떠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3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변 씨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키로 결정했다.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를 발생한 범죄로 판단, 현행 ‘특정강력범죄 처벌 특례법’ 8조에 따라 내린 결정이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