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경 전 통계청장. 연합뉴스
야권에서는 최근 정부에 불리한 지표가 연이어 발표되자 엉뚱하게도 통계청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은 황 전 청장을 해임하고 후임에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임명해 논란이 더 확산되고 있다. 강 신임 청장은 가계동향조사의 소득부문 통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던 인물이다.
이른바 ‘강신욱 방식’을 적용하면 하위계층 소득감소 폭이 12.8%에서 2.3%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정부가 통계 조작을 하려 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정기인사의 일환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지난 8월 27일에는 통계청 노조도 통계청장 교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논란에 가세했다. 통계청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갑작스런 통계청장 교체로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황 전 청장 교체는 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최기영 노조위원장을 만나 통계청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통계청 노조에서 황수경 전 청장 교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통계청장은 원래 정해진 임기가 없는데 이번 청장 교체에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황 전 청장에 대한 내부 평가가 좋았다. 명시적으로 정해진 통계청장 임기는 없었지만 통상적으로 2년은 했다. 특히 소득분배 및 고용이 악화되었다는 통계가 발표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시점에 인사가 단행되면서 앞으로 발표될 통계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다.”
─청와대는 과거에도 청장이 1년여 만에 교체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과거 사례를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보통 1년여 만에 청장이 교체되는 경우는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해가거나 정권이 바뀌거나 그런 사유였다. 이번 교체는 경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황 전 청장이 퇴임하면서 ‘윗선 말을 잘 듣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에 불리한 통계가 나오면 윗선의 압박 있었나.
“좋지 않은 상황을 좋지 않다고 현재 상황을 투명하게 절차대로 공표하였음에도 마치 통계 및 통계청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 결국엔 청장까지 교체했다. 청와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국민과 통계청 구성원 모두에게 납득 가능한 해명을 반드시 내놔야 한다. 개입이나 압박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청와대에서 자주 자료 요구나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의 갑질 아니냐.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라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청와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기에 직원들이 독립성 훼손까지 우려했나.
“과거 정부에서도 통계 발표를 하면 내용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직원들이 너무 자주 불려가서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우리도 우리 업무가 있는데 청와대나 기재부 같은 곳에서 전화가 수도 없이 와서 전화 받다가 시간을 다 뺏기는 상황이었다. 노조는 직원들을 보호해야 하니까 내가 황수경 당시 청장한테 가서 ‘직원이 너무 자주 불려가서 업무에 방해가 된다. 청와대 쪽에도 노조의 의견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 전 청장의 해임에 대해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 유효 표본이 절반가량 바뀌었음에도 무리하게 과거 조사결과와 비교해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통계청은 신뢰받는 통계 생산이라는 기본적인 직무에 소홀했다”고 주장했다.
“그게 뭐가 문제인지 이해가 안 된다. 통계청이 하는 업무가 전문성을 가지고 하는 업무고 표본 정하는 것도 예산하고 연계되니까 기재부나 청와대랑 다 협의해서 정했을 거다. 표본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통계 정확성이 더 높아지는데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당시 통계청 발표에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이 연이어 문제제기를 했다.
“통계청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정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통계)숫자를 던져놓으면 이 사람은 이렇게 보고 저 사람은 저렇게 볼 수 있다. 수치에 대해 해석과 시각이 다 다를 수는 있다.”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는 황 전 청장 해임에 대해서만 문제제기를 한 것이지 강 신임 청장 임명에 대해서는 당장 문제제기를 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통계청장 교체만으로 통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나.
“그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통계청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해진 규정대로 돌아간다. 직원들이 모두 고유의 업무 전문성을 가지고 일한다.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청장이 지시하면 다 바뀔 거 같지만 절대 안 그렇다. 뭐 하나 변경하려면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청장이 와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해도 직원들이 자기 고집이 있어서 따라갈 사람도 없다.”
─하지만 강신욱 신임 청장은 가계소득동향 조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강신욱 방식’이 적용되면 하위계층 소득감소 폭이 12.8%에서 2.3%로 줄어든다고 한다.
“조사방식 설계도 전문가들하고 토론을 거쳐 바꿔야 한다. 청장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검증을 다 거쳐야 하고 기재부와 예산 협의도 해야 한다. 그 과정이 언론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노조)가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데 쉽지 않다. 만약 신임 청장이 통계를 조작하려 한다면 노조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
─통계청장 교체 논란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다.
“이번 일로 통계청에 대한 국민 신뢰가 많이 훼손됐다. 오비이락이라고 (통계청장 교체는)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는 조치였다. 통계청 직원들은 최대한 정확한 자료를 내려고 노력하는데 벌써 일부 응답자들이 ‘이거 어차피 조작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응답자들이 제대로 응답을 해주겠나. 당분간 통계를 발표해도 사람들이 믿지도 않을 거다. 국민들이 믿지 않는 통계를 낸다는 것은 굉장히 맥이 빠지는 일이다. 통계 신뢰성이 훼손되면 국익을 해친다.”
─통계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없나.
“통계청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통계청을 독립시켜야 한다. 현재 통계청은 기재부 외청으로 종속되어 있어서 정부 입김이 미칠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요구해 왔는데 개선이 안 되고 있다. 정치권이 말로만 통계 신뢰성을 걱정하지 말고 이런 조치부터 해야 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