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전직 한체대 관계자는 11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한체대 체육학과가 지난 2008년 하반기에 09학번 체육 특기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수시에 지원하려는 최상위권 선수를 수시에 지원하지 못하게 한 뒤 정시로 지원하도록 유도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원하는 선수만 골라 뽑으려고 서류 바꿔 치기를 준비했다는 내부 폭로도 이어졌다.
전직 한체대 관계자는 “당시 빙상 선수 가운데 최상위권 선수 A 씨와 차순위권 선수 B 씨를 모두 뽑자는 내부 합의가 있었다. 둘은 한체대에서 어릴 때부터 운동한 선수”였다며 “A 씨는 경력이 좋아 충분히 뽑힐 수 있는 선수였지만 B 씨는 한체대 입학이 어려울 수도 있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A 씨가 성적이 좋으니 성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B 씨부터 수시로 뽑고 A 씨를 정시로 뽑도록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이런 ‘기획’이 가능한 이유는 스포츠계의 특성 때문이다. 스포츠계는 수시 모집 직전 고등학교 때 딴 메달과 대표팀 선발 경력에 따라 선수 서열화가 가능하다. 이런 연유로 수시 지원 기간이 되면 어떤 선수가 어느 학교에 지원할 거라는 윤곽 또한 잘 드러난다. 어느 정도 보이지 않는 담합이 있을 수밖에 없는 판이다. 모두가 안전한 체육특기생 입학을 꿈꾸는 까닭이다.
한체대는 유일하게 특정 선수를 내정해 선발하는 ‘기획’이 가능한 학교다. 한체대만 수시와 정시 때 모두 체육특기생을 때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체대를 제외한 모든 학교는 수시 때만 체육특기생을 선발할 수 있다. 한체대는 이 점을 잘 이용했다.
A 씨는 당시 또래 가운데 두 번째로 좋은 경력을 가진 선수였다. 가장 좋은 경력을 가진 선수가 고려대로 향할 거라는 사전 정보를 한체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 선수가 고등학교 때 한체대에서 훈련 받았던 까닭이었다. 한체대는 최상위 선수가 고려대에 지원할 예정이고 A 씨가 한체대에 지원할 거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특정 선수의 특정 학교 지원 정보는 대략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한체대는 치밀했다. B 씨보다 우수한 경력의 선수가 소문을 무시하고 한체대에 지원할 가능성 역시 대비해 뒀다. 서류 바꿔 치기가 준비됐다. 전직 한체대 관계자는 “수시 지원 마감날 A 씨와 B 씨의 수시 지원서류를 모두 내가 직접 손에 들고 있었다. 소문을 무시하고 B 씨보다 더 좋은 경력을 가진 선수가 지원하는 상황이 생기면 A 씨의 지원서류를 접수하려는 목적이었다”며 “당시에는 인터넷 접수가 없었다. 서류만 접수 받았다. 마감 시간 5분 전까지 접수처에서 서류를 들고 대기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B의 서류만 접수했다”고 밝혔다.
실제 당시 한체대 입학권에 있었던 최상위권 선수 A 씨는 동계체전 은메달 2개와 아시아 선수권대회 메달을 가지고 정시에 붙었다. 동계체전 은메달 1개만 가진 차순위권 선수 B 씨는 수시로 먼저 한체대에 입성했다. 전직 한체대 관계자는 “당시 빙상 담당 교수는 B 씨의 아빠와 자주 골프를 쳤었다. 신기했다. 담당 교수는 학부모와 골프를 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까닭이었다”고 전했다. 빙상연맹 부회장이었던 전명규 교수는 2002년 한체대 교수로 임용돼 한체대 빙상단을 이끌어 왔다.
이뿐만 아니었다. 특정 선수의 한체대 수시 지원을 막기도 했다. 당시 한체대 수시를 준비하고 있었던 선수 C는 “한체대 조교 D가 ‘전명규 교수님이 C 선수에게 다른 학교 알아보라고 하신다. 왜냐고는 묻지 마시라. 일단 그렇게 알고 계시라’고 하더라. 교수 입김이 빙상계에서 너무 세서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명규 교수는 2월 ‘일요신문’의 취재가 시작된 뒤부터 전화번호를 바꾸는 등 인터뷰를 계속 거부하고 나섰다. 한체대 관계자는 “저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당사자 외엔 모른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