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민은 말소 전날까지 올 시즌 113경기에서 타율 0.297 18홈런 79타점을 기록한 붙박이 주전 선수다. 한화는 위로 2위 SK를 쫓고 아래로 4위 넥센에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런 시기에 큰 부상도 없는 송광민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감독은 단호했다. “몸이 안 좋다고 한다”는 이유를 덧붙이려다 이내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여러 가지로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팀’만 생각하고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송광민이 야구 외적인 문제로 감독의 눈밖에 났다는 확고한 암시였다.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 연합뉴스
시즌 초반만 해도 오히려 상호 신뢰가 두터웠던 두 사람이다. 송광민은 한 감독이 스프링캠프에서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자 수염 다듬는 기계를 선물했다. 시즌 개막 직후에는 불방망이를 휘두르면서 사령탑 첫해를 시작한 한 감독과 팀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인터뷰에선 “새 감독님도 오셨고 선수들도 의욕적이니 올해는 정말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발언도 자주 했다. 한 감독도 늘 송광민의 긍정적인 변화를 높이 샀다. 주장 최진행이 2군에 오래 머무르자 6월부터는 송광민에게 주장 완장도 채웠다. 하지만 한 감독의 팀 운영 기조가 ‘리빌딩’ 쪽으로 기울면서 둘은 서로 반대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송광민에게 라커룸 리더 역할을 기대했던 한 감독은 점점 실망이 커졌다.
한 감독과 송광민의 불화설은 이전부터 한화 관계자들과 담당기자들 사이에 수시로 불거진 얘기였다. 전반기 막바지 한 차례 송광민이 2군에 내려갔을 때 이미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고 감정의 골이 깊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이번 조치로 인해 마침내 그 불화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속내를 숨기고 참아온 한 감독은 송광민이 옆구리 통증을 이유로 대타 대기를 거부하자 결국 폭발했다. “열심히 하는 다른 선수들이 있다. 시즌 내내 이어온 원칙을 무너뜨릴 수 없다. 팀을 이끄는 입장에서 팀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며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동안 팀이 만든 것들에 어긋나고 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송광민이 사실상 ‘본보기’가 됐을 뿐, 팀 전체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송광민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송광민뿐 아니라 다른 베테랑 선수들도 한 감독에게 반감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기사를 통해 전해지는 한 감독의 ‘직설 화법’이 베테랑 선수들에게 상처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근우의 2루 수비가 예전 같지 않다” “부상 중인 김태균이 복귀해도 4번 타자 자리는 호잉이 맡는다” “배영수는 지금 내 머릿속에 없다”와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한화가 젊은 선수들의 약진으로 성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한 감독의 ‘유망주 중용’ 원칙은 더 공고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송광민이 “베테랑 형들과 함께 가을 야구를 하고 싶다”는 ‘뼈 있는’ 인터뷰를 하자 심기가 불편해졌고, 이후에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인내심에 바닥이 났다. 더 큰 반발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와 갈등이 표면화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결국 결단을 내렸다.
송광민은 올 시즌이 끝난 뒤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는다. 이런 방식의 결장과 논란은 그의 미래에 더 치명적이다. 입단 후 한화에서만 뛴 선수지만, 한화가 11년 만에 참가하는 포스트시즌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 감독은 “송광민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보시면 안다”고 했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강했다는 후문이다. 그래도 한 감독은 “이 결정에 대한 결과는 모두 감독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평소 ‘덕장’ 이미지가 강했던 한 감독으로선 이례적인 행보다.
# 감독과 베테랑의 기싸움, 야구의 숙명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는 없다. 베테랑 선수와의 기 싸움은 모든 감독의 숙제다. 베테랑들은 누구나 “나는 아직 건재하다. 기회만 주어지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전으로 나서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한다. 팀에서 오래 뛰고 공헌도가 높은 스타플레이어일수록 더 그렇다. 오랜 기간 팀을 위해 젊은 시절을 바쳤는데, 단지 나이가 들고 힘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퇴물’ 취급을 받는 건 억울하고 화가 날 일이다.
반면 감독은 같은 실력이면 좀 더 젊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쓰고 싶어 한다. 선수 수는 많은데 1군 엔트리 수는 제한돼 있으니 그렇다. 심지어 주전 자리는 더 적다. 야수는 아홉 자리, 선발 로테이션은 다섯 자리에 불과하다. 현재는 물론이고 내년과 내후년 성적을 위해서라도 유망주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프로야구가 막을 내리지 않는 한, 영원히 달려야 할 평행선이다.
과거에는 감독과 베테랑이 다투면 대부분 감독이 이겼다. ‘선수기용’에 절대적 권한을 쥔 감독 쪽이 갑이었다. 2군에 방치해두거나 강제로 은퇴를 시키면 그만이었다. A 구단 단장은 현역 시절 갓 입단한 고졸신인 선수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내준 경험이 있다. 당시 소속팀 감독은 그 신인에게 직접 펑고를 쳐주고 수비를 가르쳐 주전으로 키웠다. 이 단장은 “개막전 때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전에서 밀려났다는 분노가 앞섰다는 것이다. 물론 선수단을 구성하고 관리하는 입장이 된 지금은 당시 소속팀 감독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송광민. 사진 출처 =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
B 감독은 두 구단에서 해당 팀 간판 레전드를 각각 은퇴시키는 ‘용단’을 내려 구단의 박수와 팬들의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이름값이 높고 경력이 어마어마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면 구단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은퇴를 권유했다가는 선수 당사자보다 더 큰 팬들의 반발에 부딪혀야 하고, 그렇다고 계속 1군에 놔두자니 그 선수의 그늘 아래서 빛을 보지 못하는 유망주들이 눈에 밟혀서다. 이럴 때 감독이 이른바 ‘총대’를 메고 레전드 선수의 은퇴를 추진해 준다면 구단으로선 더 바랄 게 없다. 당연히 팬들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B 감독은 재임 기간에 두 선수의 은퇴식을 모두 치르는 데 성공(?)했다. 야구 관계자들은 “B 감독이라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메이저리그라고 다르지 않다. 천하의 베이브 루스도 감독을 이기지 못해 무릎을 꿇었다. 1935년 뉴욕 양키스 감독이던 밀러 히긴스는 은퇴 시기가 가까워진 루스가 태도마저 불성실하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루스가 내심 감독 자리를 원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갈등은 더 깊어졌다. 팀의 실질적 ‘대장’이 되려는 둘의 기싸움이 치열했고, 결국 구단주는 감독의 편을 들었다.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로 평가 받은 루스는 말년에 트레이드로 팀을 옮겨야 했다. 반대로 조 매카시 전 양키스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좋은 전략가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괴팍하기로 소문났던 루스를 능숙하게 다룬 덕에 ‘선수 관리 능력’을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 선수 가치 높아진 시대, 감독의 용기 필요하다
요즘은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선수의 부가가치가 훨씬 높아졌고, 팬들은 선수가 아닌 감독을 더 많이 욕한다. FA로 장기 계약까지 한 선수라면 더 아쉬울 게 없다. 일부는 감독 뒤에서 대놓고 “어차피 저 사람보다 내가 더 팀에 오래 있을 것”이라고 배짱을 부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갓 지휘봉을 잡은 젊은 감독들은 팀 내 간판스타들과 전략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윽박지르기보다는 회유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 만년 하위권 팀을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려놓은 C 감독에 대해 야구 관계자들은 “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몇몇 베테랑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선수들의 의지를 끌어 올린 비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따라서 감독이 베테랑과 파워게임을 펼치려면 만만치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납득할 만한 결과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선수 쪽이 승리한다면 이전보다 더 거센 후폭풍으로 이어진다. 지도자로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토미 라소다는 “선수를 상대하는 것은 비둘기를 손으로 잡고 있는 것과 같다. 너무 꽉 잡으면 비둘기는 죽을 것이고, 너무 살살 잡으면 날아가 버린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요기 베라는 감독 시절 베테랑 선수와의 마찰 탓에 권위에 큰 흠집을 남겼다. 팀이 패배한 날 구단 버스에서 하모니카를 불던 한 선수와 갈등을 빚었는데, 모든 게 팀 최고 스타였던 미키 루크의 모의로 벌어진 일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베테랑 선수를 향한 ‘강공’은 감독으로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사령탑이나 이름 석 자만으로도 권위가 있는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어야 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용덕 감독은 한화 감독 부임 첫해를 보내고 있지만, 야구 관계자들은 “한화 내에서 입지가 탄탄한 레전드 출신이고, 올해 팀이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이 가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감독들의 선수 군기 잡기 백태…외모 단속부터 트레이드까지 감독들은 종종 ‘군기’를 잡는다.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감독의 ‘업무’ 가운데 하나다.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E 감독은 과거 만년 하위팀 사령탑으로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의 귀고리 착용과 머리카락 염색을 금지했다. “지난해에 꼴찌를 해놓고 몸치장이 웬 말이냐”는 뜻에서였다. 경기 중에 껌도 씹지 못하게 했다. E 감독이 이전에 맡았던 팀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했을 만큼 전력이 강했다. 그때는 선수들의 복장이나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선수들이 번쩍번쩍한 목걸이를 하고 몸에 문신을 해도 내버려뒀다. 두 번째 팀은 달랐다.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새로운 야구 장비보다 새로 나온 청바지 정보를 공유하느라 바빴다. 경기가 끝나면 거울 앞에서 스윙 대신 헤어스타일 점검을 했다. 결국 E 감독은 체질개선을 위해 강수를 뒀다. 외모에 관심이 많던 일부 선수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셌지만, 굴하지 않았다. 외모가 아닌 정신력을 단속하고자 했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 팀 성적은 전년도보다 세 계단 올랐다. F 감독은 팀의 간판으로 군림했던 G 선수가 해이한 태도를 보이자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힐난했다. 늘 G 선수 눈치를 보느라 칭찬만 늘어놓았던 전임 감독들과는 달랐다. 선수 생활 내내 G와는 인연이 없었던 2군에도 보냈다. 선수가 대놓고 기분 나쁜 척을 하고 뒤에서 감독을 욕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구단이 나서서 말려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구단에서 그렇게 ‘오냐 오냐’ 해서 G가 지금처럼 된 것”이라고 맞섰다. 결과는 F 감독의 승리. 팀이 G 덕분에 상위권을 달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G가 없어도 잘나갔다. 오히려 묻혀 있던 백업들을 발굴하는 ‘일거양득’ 효과가 났다. 결국 G는 태도를 바꿨다. 괜히 감독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더 열심히 훈련했다. “경기에 내보내 달라”는 ‘백기’였다. 감독은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못 이긴 척 서서히 G를 기용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야구 관계자들은 “G와의 신경전에서 승리하면서 F 감독의 통솔력에 더 힘이 실렸다”고 입을 모았다. H 감독은 ‘트레이드’를 활용했다. 실제로 본보기 삼아 트레이드시켜 버리기도 하고, “누구누구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놨다”는 소문도 일부러 흘렸다. 기둥 선수 한 명을 다른 팀에 보낸 효과는 엄청났다. 술독에 빠져 살던 주전급 선수들도 훈련 자세부터 달라졌다. I 감독은 경기 전 훈련 모습을 유심히 본 뒤, 양 팀의 선발 라인업 교환을 2분 앞두고 타격코치를 불러 세운 적도 있다. 라인업 한 자리에 늘 자리하고 있던 주전 선수 J의 이름을 지우고 백업 선수의 이름을 써넣게 했다. 잠시 방심한 스타 선수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 긴 말은 필요 없었다. J는 이후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이후 다른 감독과 함께 야구를 하면서도 팀의 방향성을 충실히 따랐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