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른바 온라인 ‘문파’ 커뮤니티로 분류된 오유, 엠엘비파크, 루리웹, 뽐뿌, 보배드림 등 커뮤니티에 투표 독려와 지지 감사 메시지 영상을 보냈다. 사진=문재인 공식채널 제공
최근 한 남초 커뮤니티(남성 회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커뮤니티)의 게시글에 달린 댓글이다. “젠더 이슈 문제로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모 의원님을 만나고 왔다”는 이 게시글은 “자한당 의원도 ‘여자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여성폭력방지법은 자한당 전원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막기는 힘들며 특히 여성이슈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거의 통과가 될 것이라고 한다. 너무 기대하고 실망하지들 말고, 이제 시작이니까 다시 힘내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표심으로’ 보여줘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해당 게시물에는 “민주당에서 남성들 의견을 개 짖는 소리마냥 치부하는데, 자한당이라도 남성들 의견을 들어주면 지지할 의향이 있다” “저도 다음에는 자한당을 뽑으려고 한다. 20대 남성인데 솔직히 저한테 직접적으로 피해 주는 이슈에 조금이라도 제 편인 정당 찍는 게 맞는 것 같다” “남성들도 투표로 보여줘야 된다. 다음 번 총선에서 보자” 등의 댓글이 달렸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분위기가 된 이곳은 지난해 대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감사 메시지를 보냈던 ‘문파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인 엠엘비파크다. 당시 문 대통령은 그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형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보배드림, 뽐뿌, 루리웹, 클리앙, 엠엘비파크에 전하는 감사 메시지 동영상을 게시했던 바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문파’로 지목 받았던 유명 남초 커뮤니티에 갑작스러운 자한당 지지 의견이 득세하게 된 것은 지난 8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국회 통과되면서부터다. 이 법안은 김종훈 민중당 의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14명 전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의 발의로 이뤄졌다.
이 법안은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만이 참석한 본회의에서 재석 188명, 찬성 163명, 반대 4명, 기권 21명으로 통과됐다. ‘성별에 기반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나 그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여성폭력기본방지법 폐기 촉구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됐다. 사진=청와대국민청원
그러나 이 법안이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지적하면서도 피해자를 모든 성별이나 성소수자를 포함하지 않고 ‘여성’으로만 한정했다는 비난이 폭주했다. 남성들은 “남성에 대한 성폭력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차별적인 시각에서 출발한 법이며, 법률에서 여성을 특별히 보호할 것이 아니라 똑같이 남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도 성평등하게 예방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 모든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며 법안 폐기를 청원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지난 5일부터 진행된 이 청원은 13일 기준으로 3만 4000여 명이 참여했다.
가뜩이나 페미니즘의 득세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남성들 사이에서 이 법안은 단숨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문 대통령의 여성 위주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마당에, 민주당 의원이 대거 참여한 이 법안의 발의로 당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는 것.
이를 노려 ‘문파 커뮤니티’로 분류됐던 각 온라인 커뮤니티 대부분에 자한당 지지 기류가 발생했다는 게 현재까지 드러난 사안의 전말이다. 특히 가장 거대한 문파 세력이었던 ‘오늘의 유머’ 역시 해당 법안 발의 전후로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를 떨어뜨려 남성들의 힘을 보여 줘야 한다. 그 대안으로 자한당을 지지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소수지만 세력을 넓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부의 목소리일 뿐 해당 커뮤니티들의 기류가 완전히 ‘자한당 지지’로 바뀌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페미니즘 정당인 민주당의 대항마, 자한당을 지지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당장 원내대표인 나경원 의원의 지난 9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위한 법 개정안 대표 발의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비동의간음죄란 폭행이나 협박 등 물리력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성관계가 이뤄졌을 경우, 이를 성폭행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때문에 남성들 사이에서는 “더불어페미당을 피하려 했더니 자유메갈당이 나왔다”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도 들린다. 현 상황에서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보다 이 개정안의 발의가 이른바 ‘꽃뱀 공포증’에 놓은 남성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여성 관련 정책이나 법안 발의로 인해 민주당 의원들도 많은 항의를 받고 있다. 전화 주시는 분들 가운데 ‘오유’처럼 저희들도 잘 알고 있는 친문 커뮤니티 회원이라고 밝히고 항의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감사의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문파’ 인증을 받은 커뮤니티 회원들이, 1년 만에 비판적 지지로 전환한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이어 “외부에서는 이런 항의가 단순히 ‘성 대결’에서 기인한 새로운 형태의 세력 다툼이라고 판단하는데, 어떤 정책이든 수혜를 입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의 줄다리기는 늘 있어 왔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라며 “다만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폭력기준법안의 경우는 그 피해 대상을 여성에 한정하지 않고 확대하는 개정안 부분에 대해서도 논의되고 있는 만큼,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