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심석희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은 1월 8일 보도자료를 내며 “심석희 선수가 만 17세 미성년자일 때부터 평창올림픽 직전까지 4년간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에 대해 지도자가 상하관계의 위력을 이용한 폭행과 협박을 가했다. 심석희 선수의 변론을 맡으면서 회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됐다”며 “성폭행 등의 범죄행위가 이뤄진 곳은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 지도자 라커룸, 태릉 및 진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성 선수들이 지도자들의 폭행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어 있음에도 전혀 저항할 수 없도록 얼마나 억압받는지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배경으로 한체대 빙상장 문제가 가장 먼저 거론됐다. 화살의 방향이 교육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한체대 빙상장의 문제를 되짚는 과정에서 제기된 성추행 의혹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8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한체대 특별 조사에 착수한 바 있었다.
문체부는 2018년 5월 5주에 걸쳐 펼쳤던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10년 동안 쌓였던 빙상연맹의 문제점이 모두 드러났다. 문체부는 빙상계의 문제가 생겨나는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한체대 빙상장을 지목했다. 한체대는 대학 유일 정시와 수시로 두 차례에 걸쳐 체육 특기생을 뽑는다. 한체대 빙상장은 학교 공식 수업 외 초중고생 선수반 사설 강습으로 5억 원 가까이 매출을 냈다. 영구제명을 받은 지도자도 한체대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 ‘빙상 대부’ 전명규, 삼성이 쥐어준 칼 마음껏 휘둘렀다)
꿈나무의 교육과 입시, 은퇴 뒤 먹거리를 쥔 까닭에 한체대는 빙상계를 장악할 수 있었다. 문체부는 이러한 구조적 맹점을 파악했다. 교육부에 한체대 빙상장 관련 내용을 잘 살펴 보라고 협조 요청을 보냈다.
교육부는 한체대 빙상장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문제를 문체부 감사 결과 이전인 2018년 4월부터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전명규 교수 문제가 언론에서 지적되자 교육부는 임 아무개 고등교육정책과 사무관과 황 아무개 국립대학정책과 주무관 등 2명을 한체대로 보내 4월 23일부터 이틀간 1차 조사를 했다. 교육부는 5월 23일 문체부의 협조 요청에 5월 28일부터 사흘 동안 한체대 2차 조사에 나섰다. 4월 조사 때 인력을 포함, 고등교육정책과장과 국립대학정책과장까지 함께했다.
교육부의 2차 조사 기간이었던 5월 30일 한체대 빙상장에서 벌어진 성추행 의혹과 사설 강사의 폭행 및 폭언 등이 고스란히 담긴 제보는 교육부로 향했다. 이 제보에는 한 선수가 사설 강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가족 관련 폭언을 계속 받아 한체대를 떠났다는 내용과 또 다른 한 선수는 폭행으로 힘들어서 정신 병원에 다녔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7월 5일 교육부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는 “전명규 교수가 2013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모두 69번에 걸쳐 정당한 사유 없이 수업시간 중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발표하며 한체대 전직 조교의 사설 강습과 무분별한 빙상장 대여 등을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부에게 향했던 제보 조사 결과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피해자를 오라가라 했던 ‘갑질’ 조사 의혹도 제기됐다. (관련 기사: ‘갑질’ 조사 교육부의 한체대 적폐청산이 불가능한 근본적인 이유)
더군다나 교육부가 당시 조사를 했던 사설 강사 가운데에는 2012년 자신의 제자를 방으로 불러 성추행 하려고 했던 강사도 포함돼 있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충분히 인지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성추행 의혹 쇼트 트랙 전 국대 코치, 한체대에서 초중고생 지도)
당시 제보를 받았던 황 아무개 주무관은 11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나는 당시 조교 갑질만 담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담당자였던 임 아무개 사무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교육부를 직접 찾아갔지만 이를 담당했던 고등교육정책과와 국립대학정책과, 두 과를 총괄하는 고등교육정책관과 고등교육정책실 담당자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차관도 마찬가지였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의 한체대 문제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립대와 교육부가 얽혀있는 까닭이다. 교육부 공무원은 징계나 순환보직에 따라 국립대와 교육부 사이를 오간다. 생선을 고양이에 맡긴 격이다. 현재 교육부 소속 공무원 5명이 차장급 이상의 직급으로 한체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한체대 빙상장 총책임자인 전명규 교수 관련 문제에서도 교육부는 절대 해결 불가능하다는 게 빙상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전명규 교수 문제 결론은 중징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징계였다. 전 교수는 이전 금메달을 많이 획득하는 데 공을 세운 이유로 훈장을 받았던 까닭이다.
훈장을 받으면 징계 수위는 낮아진다. 중징계에는 파면, 해임, 정직, 경징계는 감봉, 견책으로 나뉘어 있다. 이 문제를 처리할 의지가 있었다면 중징계라는 두루뭉술한 요구가 아니라 파면이라는 칼을 뽑았을 것이라는 게 빙상계의 반응이었다. 교육부가 중징계를 요구하면 한체대는 정직을 처분하고 훈장으로 징계가 경감되면 감봉 수준에서 징계가 마무리 되는 까닭이다.
교육부는 1차, 2차 조사에 발맞춰 언론이 제기한 입시 비리 의혹 및 유명 선수 관리 부실 등 쟁점 대부분을 조사하지 않았다. 입시 비리까지 제기된 마당에서 교육부는 가벼운 건만 조사한 뒤 전명규 교수의 ‘갑질’ 관련 사건을 모조리 검찰로 넘겨 버렸다. 서울 동부지검으로 교육부의 고발장이 간 지 반 년이 지났지만 아직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다. (관련 기사: ‘3개월 수업 빠진 이승훈, 정상 졸업?’ 교육부의 한체대 조사 8대 쟁점)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추후보도] 빙상 선수 A 씨에 대한 B 코치의 성추행 의혹은 검찰 조사 결과 기각 본지는 2019년 1월 11일 특종/단독면에 ‘빙상 성폭력 제보 받고도 무시…교육부는 왜 한체대 앞에서 작아졌을까’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도에 언급된 빙상 코치(강사)가 “2019년 4월 검찰로부터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청취할 수 없고, 피의사실을 인정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것일 이유로 각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혀와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