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일요신문 취재진을 만난 박철상 씨.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박철상 씨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박 씨의 기부는 2013년 9월부터 시작됐다. 이때 박 씨는 재학 중인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장학금 1500만 원을 기부했다. 당시 언론에는 1억 원을 기부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박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당시 기부의 배경을 설명했다.
설명의 진위를 떠나 박철상 씨는 이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박 씨는 1984년생, 당시 29살의 대학생 신분이었다. 박 씨는 “10만 원, 20만 원 모은 돈으로 주식을 했다. 주식이 잘 됐고 2000만 원 정도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돈을 기부하는 데 썼다.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박 씨가 기부한 돈이 주식 투자를 통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북대 윤 아무개 교수가 박 씨를 경북대 선배 김 아무개 씨에게 ‘청년 기부왕’으로 소개했다. 박 씨는 김 씨에게 ‘나는 1년에 50% 정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70~80% 이상도 자신있다. 나에게 투자하면 매년 50% 이익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박철상 씨가 한 투자자에게 써 준 차용증으로 30% 수익률 보장을 명시했다.
법정 최고이자율을 훌쩍 넘는 고액 이자였지만 이때까지는 괜찮았다고 한다. 박 씨가 공개한 계좌 수익률을 보면 2015년 1월부터 5월까지 한 달에 최고 40% 수익을 거둔 달도 있었다. 적게 거둔 달에도 16% 수익을 올렸다. 그는 이 돈으로 본격적인 장학재단 설립에 나선다.
2013년 기부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인 2015년 2월, 이때부터 박 씨의 기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박 씨는 9000만 원을 경북대 복현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언론에 회자되기 시작한 2015년 초부터다. 박 씨 스스로도 “남들에게 인정 받는 기분이 좋았다. 나 스스로 허세가 있음도 인정한다”고 밝혔다.
기부를 하고, 사진을 찍고, 언론 지면을 장식하면서 박 씨의 본업인 주식은 점점 뒷전으로 밀렸다. 박 씨는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장학기금을 받을 학생들을 직접 만나는 등 기부 활동에 온 시간을 쏟았다. 박 씨도 “2015년 중순 이후부터는 사실상 주식은 손을 놓은 상태였다”고 시인했다. 3억 원의 시드 머니를 바탕으로 주식 평가액 고점을 찍었을 때 빚을 뺀 수중의 돈은 약 2억~3억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기부했다는 거액의 돈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그의 기부 목록을 보면 경북대학교 총 6억 7500만 원, 경북여고 총 1억 6000만 원, 대구 서부고 1억 4200만 원, 대구 강동고 1300만 원, 정신대 할머니 모임 2000만 원, 대구시민센터 9200만 원, 내일을 여는 멋진여성 3800만 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억 4700만 원, 한베평화재단 9300만 원, 미담장학회 1300만 원, 전남대 6750만 원 등 총 15억 7950만 원에 이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개인에게 직접 지급한 기부, 치료비가 2억 8137만 원이다. 단체와 개인에게 들어간 기부금 총액을 따져보면 무려 18억 6000만 원에 육박한다.
박철상 씨가 2013년부터 기부한 내역.
그가 기부한 18억 원은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니었다. 박 씨가 투자와 기부로 이름을 알리게 되자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경북대 교수들과 교수들이 소개해준 각종 단체 소속 인사들도 접근했다. 1억 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도 유력 인사를 접할 중요한 만남의 장이었다.
박 씨에게 돈을 맡긴 사람은 경북대학교 교수들과 교직원, 대구 교육계 인사들, 경북대 선후배 등 다양했다. 사회 지도층과 유력 인사들마저 ‘청년 기부왕’, ‘한국의 워런 버핏’이란 후광에 현혹됐다. 박철상 씨의 말이 곧 가르침이었다. 박 씨는 이들에게 ‘개미들은 주식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나는 수백억 원을 굴리고 있다. 여기에 당신의 돈 몇억 원은 태평양에 물 한바가지 넣는 것밖에 안된다’고 투자를 권유했다.
박 씨는 이들에게 적게는 2000만 원에서, 2억, 5억, 10억 원까지 거리낌 없이 돈을 받았다. 박 씨는 등록이나 신고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유사수신 행위에도 해당된다. 이렇게 받은 돈 중 반환한 액수를 제외해도 ‘일요신문’이 확인한 것만 총 21억 원에 달한다.
박 씨에게 돈을 맡긴 몇몇 경북대 교수들은 자신의 제자에게 50%에 달하는 이익을 보장받기도 했다. 이는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될 수도 있다는 법조계 시각도 있다. 최강용 변호사는 “아직 김영란법 판례가 많지 않아 확신하긴 어렵지만 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 법 조항을 보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고 나와 있다. 엄격하게 보면 약속도 받아선 안된다”며 “약속 받은 50% 이익 중 합리적 투자 이익을 초과하는 부분이 1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국은 2017년 8월 주식트레이더 신준경 씨가 박 씨를 저격하면서 시작됐다. 신 씨는 박 씨에게 ‘실제로 400억 원의 자산을 주식으로 벌었다면 박 씨는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했고, 만약 맞다면 1억 원을 기부하겠다고도 했다. 결국 연이은 폭로에 박 씨는 400억 원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400억 원 자산가’가 거짓으로 판명나자 투자자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박 씨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받은 돈으로 기부를 하는데 열을 올리다 결국 돌려줄 돈이 없게 됐다. 빈털터리에다 빚만 수십억이 된 셈이다. 박 씨가 지급해야 할 이자까지 계산하면 갚아야 할 돈은 30억 원에 육박하게 됐다.
2017년 8월 중순 박 씨는 경찰에 자수를 했지만 현행범이 아니었기 때문에 풀려났다. 2017년 11월에는 앞서 신준경 씨의 폭로를 접한 제3자의 진정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된다.
2018년이 되면서 투자자들의 압박은 점점 커져갔다. 그는 가장 큰 액수를 투자했던 A 씨에게 ‘마지막으로 9000만 원만 빌려달라’며 호소했다. 이렇게 받은 ‘마지막 총알’ 9000만 원으로 박 씨는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은 주식시장에서 박 씨는 9000만 원 중 3300만 원 손실만 봤다. 박 씨는 “압박감이 너무 컸다. 사방에서 돈을 달라고 하고 도저히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중간중간 기존 투자자들 빚 갚는 데 3100만 원이 쓰였다. 잔고 남아있던 1400만 원은 A 씨에게 돌려줬다. 박 씨의 계좌에는 약 30만 원이 남아있다.
박철상 씨는 투자자들에게 “언제든지 주식으로 돌아가면 남아 있는 돈으로 금세 불릴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정말 어리석지만 미수나 신용 같은 레버리지를 써서 수익을 보면 금방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박철상 씨가 투자자에게 제출한 출입국 기록.
투자자들은 ‘당신이 능력이 있긴 한 건지, 주식으로 돈을 번 건 맞는지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다’며 박 씨가 제시한 2015년 5개월간 주식 매매 기록이 아닌 전체 주식 거래 내역을 요구했다. 최근 박 씨는 투자자들에게 매매 기록은 줄 수 없다고 전했다고 한다. 박 씨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10년간의 출입국 기록도 제출했다. 박 씨는 출입국 기록은커녕 여권조차 없었다. 과거 박 씨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대학을 다니고, 금요일부터 주말은 홍콩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에 근무했다’는 말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투자에 실패한 뒤부터 박 씨는 본격적인 ‘돌려막기’를 위한 사기 행각에 들어간다. 최근까지 박 씨는 여러 사람에게 접근해 마지막 ‘기회’를 달라며 돈을 부탁했다고 한다. 투자자들에게는 ‘곧 들어올 돈이 있다’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가 말한 돈은 이들에게 받을 돈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기존 투자자 지인이 박 씨에게 입금하지 말라고 말해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2018년 12월 결국 A 씨를 시작으로 민형사상 고소를 당한 박 씨는 2019년 1월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시드머니를 제공한 김 씨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3억 원 중 1억 9000만 원을 받지 못한 상태다. 꽤 큰 액수를 투자했음에도 교육자이기 때문에 차마 나서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박 씨는 “갚아야 할 빚이 30억 원에 육박하자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죗값을 받겠다”며 투자자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박 씨 때문에 큰 피해를 본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의 가족들이다. 박 씨 빚 때문에 박 씨 부모의 집까지 모두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박 씨가 친구에게 빌린 2억 원의 빚 대신 친구 김 아무개 씨는 박 씨 부모 집을 가져갔다. 김 씨는 차마 내쫓진 못하겠다며 박 씨와 가족이 계속 그 집에 살게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또 다른 투자자들은 김 씨가 월세 보증금도 안 받고 박 씨 가족을 살게 해주고 있는 것을 두고 ‘박철상 씨가 김 씨에게 재산을 숨겨둔 상태 아니냐’며 의심을 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박 씨에게 “다른 사람보다 명망 있는 교수들의 돈은 거의 다 갚았다.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경북대, 경북대 교수들과 박철상 씨의 커넥션이 의심된다”면서 “박 씨를 아무런 검증 없이 띄워준 신문과 방송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9년 피해자들과 만난 박 씨는 “결과적으로 기부를 통해서 사기친 게 됐다. 기부를 콘셉트로 한 사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사죄했다.
구성모 객원기자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