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임은주 단장. 사진=키움
프로야구 10개 팀 단장 중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대부분의 이력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고 1997년 한국 여성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 심판을 맡았다. 1999년 미국 여자 월드컵은 한국 심판들 중 최초로 주심이 됐고, 같은 해 프로축구 K리그에서 여성 최초로 주심이 되는 이변도 일으켰다. 2013년 강원FC 대표이사로 부임해 K리그 사상 첫 여성 CEO로 활약하다 2017년 2월, FC안양 단장을 거쳐 지난해 자진 사퇴했다. 그리고 프로야구 출범 후 38년 만에 KBO리그 사상 첫 여성 단장으로 화제를 모으며 프로야구 무대에 데뷔한다.
키움 히어로즈 신임 단장 겸 사장인 임은주(53) 얘기다. 임은주 단장이 히어로즈 구단과 손을 잡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야구계에서는 ‘깜짝’ ‘파격’이라는 단어들이 쏟아졌다. 단순히 축구단 사장이 야구단으로 ‘종목 변경’을 단행해서가 아니었다. 그동안 임 단장이 축구단에서 보인 경영인으로서의 자질 문제 때문이었다. 강원FC와 FC안양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서포터스와의 갈등,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피소돼 벌금형이 부과된 이력도 알려졌다. 최근 ‘엠스플뉴스’에서는 임 단장이 강원FC 사장 시절 친구를 특혜 채용하고 친구 조카도 인턴으로 특별 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1월 24일 밤, 임 단장과 어렵게 전화 연결이 이뤄졌다.
임은주 단장은 기자와의 통화 첫 마디에 “항상 시작할 때마다 이런 일(잡음)들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강원FC 대표를 맡을 때도, 이후 FC안양 사장으로 선임됐을 때도 구단 내부는 물론 서포터스들이 임 단장의 선임을 강하게 반대했던 일화들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키움 단장직을 수락할 때 이미 예상했고, 각오했던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더 이상 구설에 휘말리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키움 히어로즈 박준상 대표의 ‘삼고초려’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뒷얘기도 들려줬다.
강원 FC 대표이사 시절 임은주 단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강원FC 대표이사 시절, 엑셀도 잘 다루지 못하는 친구를 총무팀 과장으로 특혜 채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1월 24일 엠스플뉴스 보도).
“사실이 아니다. 기사에 소개된 윤 아무개 과장은 오래 전 대한투자신탁에 비과세 적금 가입하려고 들렀다가 창구 직원과 은행 손님으로 만난 사이다. 은행에서 13년 이상을 근무한 사람이고 엑셀도 잘 다룰 줄 안다. 기사에는 중학교 동창이라고 소개됐지만 서로 다른 중학교를 나왔다. 재학증명서도 다 떼서 제출할 수 있다. 2014년 강원FC가 여러 가지 문제들로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재정 담당자가 공석이 됐다. 경기도 고양에서 일하는 사람을 읍소해서 강원FC 총무과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경력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퇴사와 재입사라는 형식적인 과정을 거쳐 차장으로 승진(현 마케팅 팀장)된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진행한 게 아니라 강원도에서 직접 행한 일이다.”
—윤 아무개 팀장의 조카를 인턴으로 특별 채용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강원FC 인턴 자리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 아니다. 문제가 많은 구단으로 알려진데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학생들은 처음에 인턴 모집에 응시했다가 출근 앞두고 포기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인턴 공모했다가 미달될 때도 있을 정도다. 언론에 거론된 그 인턴 직원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인턴 과정을 거쳤고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난 그 사람이 윤 아무개 팀장의 조카인 줄도 몰랐다. 특별감사, 정기감사 때도 문제가 안됐던 일이다.”
—이장석 전 히어로즈 대표를 만난 적이 있었나.
“한 번 있었다. 2,3년 전이었던 것 같다. 평소 히어로즈의 마케팅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FC안양 대표를 하고 있을 때 무작정 히어로즈에 전화 걸어서 이장석 전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도대체 그 사람이 어떤 마인드로 모기업 없이 마케팅만으로 구단 운영을 하게 된 건지 직접 얘기를 듣고 싶었다. 다행히 이장석 전 대표가 시간을 내줬고, 그 자리에 박준상 대표도 함께 자리했던 걸로 기억한다. 모두 바쁜 터라 자리를 길게 갖지는 않았다.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그렇다면 키움 단장 겸 사장직 제안을 받았을 때 그 전후로 이 전 대표를 만난 적은 없었던 건가. 예를 들면 구치소 면회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2,3년 전에 봤던 게 마지막이었다. 한 달 전에 박준상 대표가 직접 연락을 해왔다. 자신은 경영과 마케팅 쪽에 전력을 기울이고 싶다면서 내게 선수단 운영을 맡아 프런트의 역량 강화를 위해 힘써 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크게 당황했다. 2,3년 전에 한 번 만났던 게 전부였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해서는 영입 제안을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중히 고사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있던 터라 급박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주위에 조언도 구했다. 모두 우려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가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겠다고 말하더라. 이후 몇 차례 만남을 더 가진 후 마지막 미팅에서 궁금했던 질문을 건넸다.”
—어떤 질문이었나.
“밖에서는 이장석 전 대표가 히어로즈를 ‘옥중 경영’한다고 알려졌는데 난 내 머리 위에 누군가를 두고 일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도지사, 안양시장도 나한테는 간섭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난 신념과 철학이 단단한 편이라 쉽게 타협하지 못하고 내 권한을 침범하는 행위도 용납하지 못한다. 이런 나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히어로즈 측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다 수용했다.”
—축구단을 운영하며 친언니 회사와 협약을 맺었다는 게 사실인가.
“언니는 대행사가 아닌 출판사를 운영한다. 책을 만들고 포토샵, 그래픽 등에 소질이 있어 강원FC 시절 현수막 디자인, 매거진 제작 등을 도와줬다. 거기서 나오는 금액이 크지 않다. 이윤이 생긴다고 해도 몇 백 만 원 정도다. 난 경제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돈도 많다. 언니를 끌어들여 구단의 돈을 받아낼 만큼 어렵게 살지 않는다. 오히려 강원FC 시절 월급도 다 못 받은 상태로 물러났다.”
—조태룡 전 강원FC 대표를 최문순 도지사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이 임 단장이란 말도 있다.
“조태룡 전 대표는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구단 사장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을 때 당시 히어로즈 야구단 단장 신분으로 조 전 대표가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인사를 나눴다. 이후 부천FC 김종구 전 단장이 조 전 대표가 운영하는 엠투에이치란 대행사를 소개해줬다. 광고 수익을 5대5로 나누는 계약이었다. 그게 인연이 됐다. 내가 강원FC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날 때 최문순 도지사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는 자리가 있었는데 조 전 대표가 그 자리에 참석해선 최문순 도지사와 인사를 나눴다. 이후 조 전 대표가 강원FC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었지만 감사패 받는 자리에서 도지사와 조 전 대표가 처음 인사를 주고받은 게 인연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FC안양에서 선수단 숙소와 식당은 왜 없앤 것인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숙소는 폐지하지 않았다.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고 주로 입단 1,2년차들을 대상으로 숙소를 제공했다. 식당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식당을 없애는 대신 선수들이 더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구단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식당에서 전문 영양사가 준비한 식단으로 식사하는 것과 일반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을 먹는 것과는 차이가 클 것 같다. 이건 좀 다른 질문이다. 임 단장이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니라고 들었다. 청주사범대(현 서원대)에서 필드하키 선수로 뛰었다고 하던데.
“청주사범대 체육교육학과에 필드하키 선수 전공으로 들어간 건 맞다. 그 당시에는 여자축구 대표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여자축구대표팀이 구성됐는데 필드하키를 비롯해 전 종목의 선수들이 대표팀 모집에 응시했었다. 난 워낙 빠른 발을 갖고 있었고 키가 큰 편인데다 축구 전술과 비슷한 형태의 하키 선수로 활약한 터라 금세 뽑혔고 그때 구성된 선수들로 훈련한 다음 아시안게임을 치르러 중국으로 향한 것이다. 처음부터 축구를 한 건 아니지만 필드하키하다가 축구 선수로 뛰었다.”
—KBO리그는 축구와 달리 야구인 출신의 단장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 틈에서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조직이나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내 철학이 ‘정면 돌파’다. ‘맞장’ 뜨는 걸 피하지 않는다. 때로는 모른 척하고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성격상 적당히가 안 된다. 물론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그렇다고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축구 관계자들이 기억하는 임은주 단장은? 임은주 단장과의 전화 인터뷰는 무려 1시간40분 가까이 진행됐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설명하고 해명하는데 쏟았다. 안타까운 건 그의 해명이 거듭될수록 이해가 되는 것보다 의혹이 증폭된다는 사실이다. 임 단장을 취재하면서 강원FC, FC안양에서 임 단장과 동고동락했던 전 감독, 전 코치, 축구인들에게 두루 연락을 취했다. 그중 A씨의 얘기가 흥미롭기만 하다.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 능력이 키움 단장으로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임 사장은 ‘싸움꾼’이다.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는 사람한테 반드시 되갚아줄 줄 안다. 술도 안하고 저녁 자리를 갖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 걸 잘 챙긴다. 출세 지향적이고 ‘최초’라는 타이틀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다.” 또 다른 B 씨는 지난해부터 임 단장으로부터 히어로즈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 차례 넥센 얘기를 꺼냈고 구단의 누군가를 만났다고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임 단장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름을 대면 알만한 축구인들 이름을 서슴없이 공개했다. 분명 인터뷰라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실명을 거론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400만 원의 벌금형을 부과 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중앙지검, 강릉지검 관계자들의 이름을 줄줄이 소환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