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춘 이사장. 사진=EBS 갈무리
법조계와 판결문 등에 따르면 유시춘 이사장의 아들이자 영화 감독인 신 아무개 감독(38)은 외국에 거주하는 무명인과 대마 약 9.99g을 우편물에 숨겨 국내 밀반입을 공모한 혐의로 2017년 11월 긴급 체포됐다. 2018년 4월에 있었던 1심에서 무죄를 받고 잠시 풀려났다가 2018년 7월에 열린 2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아 다시 법정 구속됐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신 감독 쪽에서 제기한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징역 3년형을 내렸다. (관련 기사: [단독] 유시춘 EBS 이사장 아들, 마약 밀수 혐의 징역형 뒤늦게 드러나)
핵심은 유시춘 이사장이 EBS 이사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아들의 구속 여부였다. EBS는 공영 ‘교육’ 방송이기 때문이다. 유시춘 이사장은 처음에 “아들이 무죄를 받고서 이사장이 됐다”고 했다. 유 이사장이 임명된 건 2018년 9월이었다. 신 감독은 2018년 7월에 열린 2심 이래 쭉 구속 상태였다. 유 이사장이 하마평에 오르던 시기부터 신 감독은 이미 구속된 상태였다. 다시 사실을 짚어주자 유 이사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세 차례 더 사실을 말하자 되묻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화 도중 유시춘 이사장이 문제의 소지를 애초에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나왔다. EBS 이사회나 그 외 정부기관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 있냐는 질문에 그는 “없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청와대 쪽에서도 연락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만약 누가 문제를 제기하면 어쩌지 했지만 재판부가 상고이유서를 읽어주기만 한다면 3심에서 바로잡힐 거라고 확신했다. 무죄니까. 그런데 바로잡히지 않았다. 검사는 그냥 마약 근절에 의기 충천해 있는 그런 검사로 보였다”고 했다.
EBS 이사장 인사를 두고 정부의 인사 검증 문제가 또 촉발됐다. 공영교육방송국 이사장 후보의 아들이 마약 밀수로 구속된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가 임명을 강행했다면 은폐 의혹을 받는다. 구속된 사실을 몰랐다면 검증 체계가 뚫린 셈이 된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던 유시춘 이사장은 인사 검증 체계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청와대에도 이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애초 그는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 검증 체계 관련 의혹은 천만부당한 일이다. 아무도 모른다. 기자도 모르는데 청와대가 어떻게 알겠나. 알면 또 어떻게 했겠나”라고 말했었다, 그렇지만 이내 “사실 청와대에 후배가 많이 들어가 있다. 조연옥 수석도 따지고 보면 후배다. 누구라고 밝히진 않겠는데 걱정이 돼서 2심이 끝나고 3심 판결 내리기 전쯤 ‘1심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2심에서 이렇게 됐다. 그런데 이거 잘못됐다. 무죄다. 1심이 맞다. 바로 잡힐 것으로 생각한다. 나중에 모르고 당하면 안 되기 때문에 알고 있으라고 내가 일러준다. 3심에서 잘 될 거다’라고 말했다. ‘알겠다. 잘하시라’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시춘 이사장은 사법부의 오판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사법부가 오판할 수도 있다. 2심에서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가 없었다. 1심에서 다 냈으니까 없어서 못 냈을 거다. 1심에서는 무죄인데 똑같은 증거, 똑같은 사안을 두고 2심은 다르게 본 거다. 대법원이 상고이유서를 안 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도 했다. 머리카락도 혈액도 음성이었다. 얘가 대마초를 받지도 않았다. 얘 이름으로 오지도 않았는데 구속돼서 너무 기가 막혔다”고 덧붙였다.
유시춘 이사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법 절차 외 누군가를 만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내가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다 누군가의 눈에 띄면 말이 나온다”며 “내가 왜 못 하겠나. 하소연하고 접근해 이 재판을 바로잡아 달라고 얘기할 수도 있었다. 내가 왜 윤석열 검사장을 모를 것이며 내가 왜 선이 닿으면 안 닿겠나. 안 했다. 어떻게 보면 특혜로 인식될 수도 있다. 정해진 사법 절차만 따랐다”고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특정인을 만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유시춘 이사장은 유시민 작가와 이창동 감독에게 재판부에 제출할 신 감독 관련 탄원서를 받았다고 했다. 유시춘 이사장은 “3심에서 본인, 변호사, 이창동 감독이 쓴 걸 읽기만 하면 법리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해 줄 거라고 믿었다. 유시민도 썼다. ‘본인이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무 증거가 없다. 똑같은 증거를 가지고 1심은 무죄를 선고하고 2심은 왜 이렇게 될까 법리적용을 살펴봐 달라’고 썼다. 아들과 유시민 사이가 아주 각별하다. 유시민이 얘를 업어서 키웠다. 나도 썼다”고 했다. 이어 “이창동 감독이나 유명한 분이 쓰면 읽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안 읽은 것 같다. 읽었다면 이런 판결을 내릴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유 작가는 차기 대권에 가장 강력한 후보이며 이 감독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고 칸 영화제 심사위원까지 한 인물이다.
유시춘 이사장에 따르면 아들 신 감독의 변호인은 민변 노동위원회 소속 유하경 변호사였다. 이에 대해 “민변이라서 유하경 변호사를 찾아간 게 아니다. 긴급 체포되며 급하니까 외사촌인 유 변호사에게 ‘하경아 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간다’고 해서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기획’한 음모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시춘 이사장은 “설마 검찰이 그런 일을 하겠나. 다만 보낸 사람에 대한 수사가 일체 없었다. 잘못된 판결이라고 본다”며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이 연예기획업을 하는 A 사의 사무실이다 보니 탤런트, 조명 등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이 드나든다. A 사 사무실 들락날락하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얘한테 보냈다고 추측한다. 얘가 지금까지 독립 영화만 네 편을 찍어 네 편 다 상을 탔다. 대학교 재학 시절 군대 갔다 와서 스물다섯 살 때 전원 일치로 처음 국제청소년영화제 대상을 탔다. 그 뒤로 20분짜리 영화 세 편을 만들었는데 모두 상을 탄 유망주”라고 했다.
유시춘 이사장은 의심되는 정황을 하나씩 설명했다. 그는 “대마는 A 사로 도착했다. A 사는 이창동 감독이 얘한테 ‘너 집에서 잘 안 풀리거든 여기 가끔 가서 글 쓰라’며 책상 하나 준 곳이다. 얘는 열흘에 한 번 어쩔 땐 한 달에 한 번 불규칙하게 A 사에 나갔다.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거의 완성해 제작사와 수정하는 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날 오랜만에 A 사에 나갔다가 영문 모르고 긴급체포 됐다. 대마는 A 사 대표가 수령했다. 대마 수신인이 ‘보리’라고 돼 있었다. 얘가 쓰던 장편 영화 시나리오에 나온 주인공 이름이 보리였다. 책상 위 유리창에 보리라고 붙여 놨다”며 “수신인이 분명치 않으니까 검찰이 A 사 직원 대여섯 명을 다 불러 조사했다. ‘보리가 신 감독의 새 장편 영화 입봉작 주인공 이름’이란 이야기가 나와서 긴급체포 됐다. 얘가 외국인 친구도 많은데 그들과 교환한 명함에는 보리라는 이름이 없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보리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신 감독이 긴급 체포될 때 압수된 수첩에는 ‘대마초’란 단어가 기재돼 있었다. 이는 ‘신 감독이 대마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검찰 쪽 증거가 됐다. 이에 대해 유시춘 이사장은 “이창동 감독 작품의 조감독을 두 번 했다. 이 감독이 우리 집 근처 사는 이웃이다. 300m 밖에 안 떨어져 있다. 얘는 이 감독이 아끼는 제자다. 한예종에서 석사를 하며 이젠 사제 지간이 됐다. 영화 ‘시’ 등 영화 개봉하기 전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얘를 꼭 불렀다. 얘를 불러 마지막으로 보면서 편집을 한다. 사제 지간이고 젊은 감각도 있을 테니 같이 보곤 했다. 이 감독이 얘 말을 되게 존중한다”며 “영화 ’버닝‘에는 스티브 연이 대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 편집 과정에서 남긴 글자가 심증이 됐다. 이 감독이 기가 막혀 했다. 파리에서 상 타고 돌아온 날 밤을 새워 ’자기가 영화 마지막을 편집하려고 불렀다. 둘이 마주보며 편집하는 동안 나눈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이라는 내용을 A4용지 3장에 써서 3심 재판부에 냈다. 법원에서 안 읽어본 것 같다”고 말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유시춘 이사장 쪽의 논리를 이미 2심 때 모두 대응했다. 2심의 쟁점은 추가 증거 유무가 아니었다. 법리 오해와 사실 오인을 바로 잡는 목적이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이미 제출된 증거로 알 수 있는 여러 간접 사실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고 간접 사실에 대한 판단을 누락해서 사실을 오인했다고 봤다. 간접 증거와 간접 사실로 공소가 인정되지만 1심 재판부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죄를 선고해 법의 이치를 오해해 판결을 잘못 내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대마가 담긴 우편물은 받는 사람란에 ’Bori(B 사)‘란 글자가 적힌 채 A 사로 도착했다. 신 감독은 당시 영화제작업을 하는 B 사 소속 작가였다. 누군가 신 감독을 음해할 목적이었다면 신 감독의 실명을 사용하고 임시로 있던 A 사가 아닌 원소속 B 사로 보내는 게 더 자연스럽다. 신 감독 명함에도 B 사 주소가 적혀 있기 때문”이라며 “신 감독은 처음 대마를 받은 A 사 대표가 ‘보리를 아냐’고 묻자 ‘모른다’라고 답했다가 얼마 뒤 대표에게 다시 찾아가 ’우리(B 사) PD가 보리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신 감독은 최초 보리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 이유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적었다.
판결문에는 “1차 조사에서 우편물에 대해 신 감독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받을 것인지 아닌지 모른다. 우편물을 대신 받아달라고 부탁 받은 적 없다‘고 했다가 3차 조사에서는 ’기다리고 있던 우편물은 있었다. 한 달 전 같이 여행했던 외국인 친구들이 사진과 엽서 등을 받을 주소를 가르쳐 달라기에 알려준 사실이 있다‘고 하는 등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졌다”는 점과 “신 감독이 사용하는 A 사의 사무실은 별도로 구분된 독립된 공간이어서 A 사 직원이나 방문객이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대마 우편물 받는 사람란의 괄호 안에는 신 감독의 원소속사 B 사가 적혔다. 누군가 A 사의 신 감독 사무실에 들어가 보리라는 명칭을 파악했더라도 신 감독의 원소속 회사명까지 알기는 어렵다. 그 외 사항에 미뤄보아 보리, A 사 주소, B 사 주소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받는 사람을 기재해 대마 우편물을 배송받으려 한 사람은 신 감독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시춘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아들인 신 감독이 대마초를 피우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페인에서 누군가가 신 감독에게 대마를 보낸 점에 대해 “대마초를 안 피우는 애가 그걸 왜 부치라고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유 이사장은 인터뷰 과정 내내 아들 신 감독을 가리켜 “마약을 한 건 아니다” “피우지도 않는 애”라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입수한 2심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담겨 있었다.
“신 감독은 2014년 6월쯤 종종 방문하던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모처에서 대마가 든 우편물이 신 감독의 영문 이름으로 배달돼 대마 수입 혐의로 기소됐다. 대마 수입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모발 감정 결과 대마 성분이 검출된 바 있었다. 신 감독의 A 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대마를 갈아 흡연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인 ’그라인더‘와 말이 담배용 종이가 발견됐다. 신 감독은 수제 담배를 피우려고 그라인더 등을 소지했다고 변명했지만 사무실에서 수제 담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신 감독은 이 사건 우편물이 배달될 무렵 다른 때보다 머리를 훨씬 짧게 깎았다.”
21일 오전 9시 30분 전화와 문자, 카카오톡 등으로 유시춘 이사장에게 판결문과 인터뷰 발언에서 나온 차이점을 다시 물으려 했지만 유 이사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최희주 기자 hkoo@ilyo.co.kr
검사의 국정원 파견 이력은 어찌 알았을까 “검사가 좀 괘씸…며느리가 네이버 검색” 유시춘 이사장은 아들 신 감독 사건과 관련된 한 검사의 과거 이력을 꿰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이 사건 관련 검사가 좀 괘씸했다. 왜냐하면 지난 정부 때 7년 동안 국정원 파견됐다가 돌아온 검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에 파견된 내용은 일반인이 알기 힘든 정보다. 이에 대해 “그건 며느리가 너무 억울하니까 들어가서 막 조사했다. 네이버에서 조사하고 탐문도 하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다”고 했다. 며느리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며느리는 건드리지 말아 달라. 걔 너무 괴롭다. 엄마인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걔가 얼마나 괴롭겠나. 나는 그 마약을 근절하려고 하는 국가권력의 대행자로서 검사의 판단이나 노력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총무를 하고 인권위원회에서 일해 봐서 ’메이드 인 국정원 간첩‘을 많이 안다. 그 사람들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며 비참한 삶을 사는 걸 많이 봤다. 그게 막 떠올랐다. 유오성 간첩 사건도 그렇게 된 거 아닌가. 납북하고도 무죄 받은 것들 다 국정원에서 만든 거다. 괘씸한 마음이 들어가지고 감찰도 좀 청구하고 싶었다. 그러다 아이가 어차피 영화감독이니까 남들이 흔히 할 수 없는 경험 했다고 치고 이제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