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진 임준선 기자
지난 4월 20일 KBS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한 유시민 이사장은 “진술서를 쓸 때만 구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기 위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누구를 붙잡는 데 필요한 정보는 노출 안 시키면서 썼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다”고 반발하면서 진실공방이 시작됐다.
심 의원은 “유시민 진술서 내용을 알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간 침묵해왔다”면서 “유시민은 자백진술서에 77명의 이름과 행적을 적시해 계엄당국이 당시 학원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됐다. 유 이사장은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입수한 유시민 이사장 친필 자백진술서에는 운동권 동료들의 이름과 행적들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유 이사장은 진술서에서 “저는 일전에 미처 진술하지 못한 사항이나 잘못된 사항, 불명확한 사항을 상세히, 잘못을 수정하고 명확하게 진술코저 합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정황이다. 유 이사장은 해당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불기소로 풀려났다.
유시민 이사장이 작성한 친필 진술서
유 이사장은 “김상진(유신체제와 긴급조치에 항거, 할복자살한 민주화인사) 추모식에 김대중(전 대통령)이 찾아온 사실을 아는가?”라는 수사관 질문에 “나중에 들으니 김대중이 함석헌과 함께 참석하여 조위금 20만 원을 심재철에 교부하고 조사를 했다. 학생들이 ‘김대중 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상당히 과열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한다”고 진술했다.
유 이사장의 진술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서 (김 전 대통령이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 등의) 증거 요지로 판시됐다.
유 이사장은 진술서에서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만남도 언급했다. 유 이사장은 “음향시설 철거 문제로 한 복학생과 다투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복학생이 바로 학기 초부터 민청협 회장이고 김대중 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사회학과)이었다”고 적었다.
유 이사장이 이 대표를 민청협 회장이자 김 전 대통령과 관계하는 인물이라고 언급함으로써 당시 계엄당국의 표적이 됐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시민 이사장은 이해찬 대표가 민청협 회장이라고 지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정치에 입문한 후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됐다. 유 이사장은 이 대표 보좌진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유 이사장을 추천한 사람도 이 대표다.
유 이사장은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 신계륜 전 의원 등의 행적도 진술서에 적었다. 한 집회에서 당시 고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신계륜이 사회를 보았다거나, 민주화대총회에 당시 복학생이었던 김부겸이 참석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유 이사장은 총학생회장 심재철, 총학생회 부회장 김 아무개(※ 진술서에는 실명 기재되어 있음), 사범대 학생회장 진 아무개, 자연대 학생회장 배 아무개 등 병영집체훈련 거부계획을 수립했던 회장단 명단도 진술서에 적었다.
유시민 이사장은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 명단을 진술서에 적어냈다.
유 이사장은 지도부의 시위 교사 정황을 진술서에 자세히 적었다. 유 이사장은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여러 개의 구호를 단과대학으로 배당하여 주었는데 예를 들어 ‘비상계엄 해제하라’는 사범대, ‘노동삼권 보장하라’는 경영대, ‘정부개헌 중지하라’는 법대, ‘유신잔당 물러가라’는 가정대에 배당했다. 이런 식으로 각 단과대학별로 구호를 하나씩 나누고 각과별로 글 내용은 자유롭게 피켓 하나씩을 준비하게 했다. 이 비용은 모두 학생회비 및 과회비로 충당했다고 알고 있다”고 적었다.
당시 학생활동위원회에서 꼭두각시에 신현확(당시 국무총리), 전두환의 이름을 써서 교문에 매단 후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화형식을 가졌다는 내용도 자백했다. 유 이사장은 화형식 준비는 학생활동위원장 이 아무개 군이 했다고 지목했다.
유 이사장은 이수성(훗날 문민정부 국무총리)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의 민주화운동 참여 내용도 진술서에 적었다. 유 이사장은 “학생처장 이수성 교수는 이때 1학년들에게 ‘민주화를 바라는 열망은 학생, 교수 모두가 꼭 같은 것이다. 대학의 파국을 막아준 여러분께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시위를 위해 만든) 유인물은 날짜별로 배열할 수 있을 만큼 제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므로 따로 진술하겠다”면서 당시 교내에서 유인물을 만들었던 방법도 자세히 공개했다.
유 이사장은 진술서에서 “저희 학교 내의 등사시설은 총학생회에 수동식 윤전기 1대, 등사기 2대, 각 단과대학 학생회 및 편집실에 최소한 1개의 등사기가 있고 각 과마다 과에서 나오는 유인물이나 학생들의 주소록을 만들기 위한 타자기 및 등사기, 수동식 윤전기 혹은 복사기가 있다”고 적었다.
유 이사장은 조사관이 묻지도 않았는데 “심재철이 학생들 식사대 약 1만 원도 자기가 지불했는데 그 돈의 출처는 알지 못한다”며 마치 외부 자금 출처가 있다는 뉘앙스의 진술을 하기도 했다.
심재철 의원은 “유시민 진술서는 신군부가 김대중 씨 사조직으로 기소한 민청협 등 복학생들의 시위 교사 현황, 서울시 22개 학생회장단, 사북탄광 실태조사, 외부 해직기자들과의 연대까지 일지처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9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며 “유시민은 심재철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검찰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불기소로 풀려났지만 본 의원은 기소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다. 유시민은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자기 행적을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은 당시 작성했던 진술서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했지만 유 이사장 측은 “추후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