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7월 농심신라면배 국내선발전에서 대국을 하는 모습.
#3년간 대화는 불통…이세돌법 생겼나?
임시이사회에서 정관의결이 이뤄진 이틀 후. 농심신라면배 대표선발전이 있었다. 이세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바둑을 두러 나왔다. 이겼다. 복기를 마치고 한국기원 건물을 나서는 이세돌 9단을 잡았다. 그는 ‘이미 기사회에서 탈퇴했다’고 못을 박으며 ‘적립금 반환소송도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세돌이 형 이상훈 9단과 함께 한국프로기사협회(기사회)에 탈퇴서를 낸 시점은 약 3년 전, 2016년 5월이다. 기사회가 프로기사 행위를 부당하게 강제하고, 적립금 명목으로 공제하는 금액이 형평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최근엔 기사회 탈퇴 후 3년 동안 공제한 상금일부를 돌려달라면서 한국기원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한국기원은 기사회 요청으로 지난 3년간 상금공제액(국내 기전 5%, 해외 기전 3%)을 보관하고 있다. 반환요청금은 약 32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7월 12일 한국기원 임시이사회가 열렸다. 한국기원 이사 29명 중 24명(위임 9명 포함)이 참석했고 기사회가 요청한 한국기원 정관 신설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추가한 한국기원 정관 제4장(기사회) 제23조는 ‘1)본원이 정한 입단절차를 통해 전문기사가 된 자는 입단과 동시에 기사회의 회원이 된다 2)본원이 주최·주관·협력·후원하는 기전에는 기사회 소속 기사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세계대회 오픈기전에 참가하는 아마추어나 여자리그 등에 나오는 외국선수들은 기사회 소속이 아니다. 한국기원은 “신설된 정관 제4장 23조는 한국기원 소속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해외 초청 기사나 아마추어의 대회 참가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사회에 참석한 모 프로기사는 “원래 ‘기사회 탈퇴시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문구를 넣으려고 했지만, 변호사 의견을 참조해 ‘기사회 소속 기사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문구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기원은 정관 추가 이유에 대해서 “기사회는 한국기원의 모태다. 그동안 한국기원 정관에 기사회 관련 내용을 기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발맞춰 명문화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3년 전 기사회 탈퇴선언 당시 이세돌 9단.
#이세돌 vs 기사회 ‘반외전쟁’ 제2라운드
기사회 손근기 회장은 일요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기사회는 이세돌 9단이 현재도 회원이라고 본다. 새 정관이 문체부 승인이 나면 마지막으로 의사를 확인할 예정이다. 그때도 탈퇴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사회에 참석한 모 프로기사는 “이세돌 측 주장을 따르면 기사회 존재기반이 붕괴한다. 기사회는 친목단체가 아니라 한국기원 운영주체다. 정관에 대해선 이사회에서 법적 검토를 마쳤고, 문체부 승인도 문제 없다. 원래 기사회 탈퇴(은퇴)는 본인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세돌은 대회는 계속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탈퇴 여부를 확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사회는 ‘전문기사자격=기사회소속’이라고 둘을 동일하게 보는 관점이다.
아직 주무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 승인이 남아있다. 이세돌 측을 자문하는 손수호 변호사는 “우리는 기사회 법적성격을 친목단체로 보고 있다. 정관에 새로 의무가입조항(1항)을 만든 자체가 그동안 행위가 불합리했다는 걸 시인한 셈이다. 신설한 정관 두 조항 모두 문제가 있어 문체부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리라 예상한다”고 주장하면서 “반환금에 대해선 소송 제기 준비단계다. 소장은 이미 작성했고, 제출시기를 조율 중이다”라고 답했다. 이세돌 형 이상훈 9단도 “기사회가 무슨 근거로 상금을 공제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한국기원과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사회 소속 여부와 프로기사 자격보유 및 대회출전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이세돌, 나간다면 따뜻하게 보내자
이번 정관변경은 한국기원(이사회)이 기사회 쪽 손을 들어준 결과다. 이사회(한국기원 최고의사결정 기구)에서 기사회 의견을 거부한 적은 드물었다. 기사회가 수상전을 만들었지만, 이세돌은 버림돌 작전이다. 만약 문체부 승인이 나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와도 이세돌은 ‘한국기원이 나를 등 떠밀었다’는 은퇴명분이 하나 더 생긴 셈이라 잃은 게 없다. 바둑계 일각에선 새 집행부가 초기부터 ‘이세돌 암초’에 걸려 개혁동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러나 서로 대마 명줄을 잡고 노려보다가도 기가 막히게 타협하는 게 고수의 바둑이다. 이세돌과 기사회가 마지막 순간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묘수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동안 ‘이창호’, ‘이세돌’은 일반 바둑팬에겐 바둑 자체를 상징하는 단어였다. 이세돌이 실제로 ‘은퇴’카드까지 쓴다면 그때는 서로 옳고 그름을 내려놓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줬으면 한다. 그동안 공로를 생각해 한국기원이 나서 ‘은퇴기’ 같은 이벤트 대국이라도 열어주자. 축제와 같은 은퇴식을 선물하고 새 앞날을 축복해주는 아량이 바둑계에 남아있길 바란다.
박주성 객원기자
[승부처 돋보기] 착각과 묘수 제21회 농심신라면배 국내선발전 4라운드(2019.07.16.) ●이세돌 9단 ○이호승 4단-297수, 흑 12.5집 승 농심신라면배 한국대표는 다섯 명이다. 랭킹 1위 자격으로 시드를 받은 신진서 9단이 이미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전체 기사가 참가할 수 있는 국내선발전을 통해 세 명을 뽑는다. 후원사가 선정하는 와일드카드는 선발전을 마친 후 발표한다. 이번엔 프로기사 217명이 출전했다. 지난 대회 대표 4명(박정환·신민준·이세돌·최철한)과 랭킹 상위자 2명(김지석·이동훈)은 조별 16강(4라운드)부터 출전했다. 이세돌 9단 첫 대국 상대는 이호승 4단이었다. 지난 GS칼텍스배 8강에서 이호승은 이세돌을 꺾어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번은 이세돌이 빚을 갚았다. 국후 이호승은 “승부를 떠나 이세돌 9단에게 한판 배운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라면서 웃었다. 장면도1 #장면도1 ‘노림’ 우하귀 패(흑 세모표시)가 서로 신경 쓰인다. 패싸움 과정에서 좌하귀 흑 모양이 아주 두터워져 백이 불만이다. 중반까진 인공지능 승률로 6 대 4 정도로 흑이 약간 앞선 형세였다. 백1부터 7까지 절단이 이호승이 준비한 노림이었다. 참고도 #참고도 ‘착각’ 이호승 생각은 흑1로 두면 백2로 따낸다. 흑이 다음에 어디를 둬도 4로 잇는 게 흑대마 사활과 관계있어 선수라고 생각했다. 흑5를 두지 않으면 백A, 흑B에 이어 백C가 좋은 수다. 상변 백 네모 표시 돌이 급소를 겨냥하고 있는 저격수와 같다. 장면도2 #장면도2 ‘묘수’ 실전에서 이세돌은 흑1로 누르고, 쓱 밀어간 흑3이 평범한 듯 보여도 묘수였다. 백은 숨통이 콱 막힌다. 어떻게 변화해도 빠져나갈 길이 없다. 애초에 돌을 끊은 의미가 없이 상변이 모조리 흑의 수중에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