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연예계에서 홍보 관련 업무를 담당해온 중견 연예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연예계에서 누구보다 경찰과 검찰 포토라인을 잘 아는 이다. 함께 일하던 소속 연예인들을 따라 경찰서를 다니기 시작해 나중에는 부탁을 받아 다른 회사 소속 연예인이 경찰서를 갈 때도 도움을 주곤 했다. 경찰서에 갈 때 차를 어디쯤에 세워서 연예인이 내리고 어느 포인트에 서서 어떤 얘기를 어느 정도 분량으로 해야 하는지를 경찰서 정문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계산해낸다. 그는 아무리 검찰과 경찰을 개혁해도 연예계 포토라인은 사라질 수가 없다고 얘기한다.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 앞에서 대기 중인 취재진. 이제 검찰의 포토라인은 폐지됐다. 사진=박정훈 기자
“지금 포토라인을 폐지한다는 것은 검찰과 경찰이 언론에 피의자나 참고인 소환 일정을 미리 알려주는 편의상의 절차를 없앤다는 것에 불과하다. 기자들의 자발적인 취재까지 막을 수는 없다. 소환 조사를 받으러 오는 연예인이 뒷문 등으로 몰래 들어갔다 나올 수 있게 배려해줄지라도 거기까지 찾아가는 기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포토라인에서 다 같이 찍는 똑같은 사진이 아닌 단독 촬영이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잠복해서 데이트 현장까지 몰래 찍는 게 연예 기자들인데 그보다는 이런 게 더 쉬울 거다. 이렇게 연예인이 하나둘 경찰서나 검찰청에서 기자들에게 사진 찍히는 일이 생기다 보면 점차 그 범위가 넓어져 결국 다시 도돌이표처럼 제자리(포토라인이 있던 시절)로 돌아오게 될 거다.”
너무 과장해서 하는 얘기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냉정히 보면 그의 말처럼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몇 년 전에는 브로커가 검거되며 몇몇 여자 연예인이 성매매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워낙 예민한 사안이라 실명도 아닌 익명으로 보도됐고 검찰도 최대한 조용히 소환 조사 등 수사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당시 성매매 혐의를 받던 유명 가수 A가 소환조사를 받으러 몰래 검찰청에 들어가는 모습이 한 매체의 카메라에 담겨 보도됐다.
이런 우려 섞인 전망이 이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연예계가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포토라인 폐지, 피의사실 공표 금지 등이 거론되는 까닭은 바로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다. 유명인이 포토라인에 설 때마다 괜한 망신 주기라며 인권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연예인은 다르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직업이니 포토라인에 서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연예인을 방송, 영화, 음원 등을 통해 소비하는 상품으로 여기다 보니 그들에게 인권이 있다는 점을 잊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연예인은 쉽게 돈 잘 버니까 물의를 빚으면 크게 망신을 당해야 된다’는 편견 때문일까. 포토라인에 선 연예인을 두고 여론은 ‘아니 잘나가는 연예인이 도대체 왜 그랬대?’ 등의 신변잡기적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가까운 시일 내에 연예인이 출두하면서 ‘포토라인 폐지’ 원칙이 깨질지라도 ‘피의자 인권 보호’가 거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연예관계자들의 비관 섞인 전망이다.
지난 3월 성관계 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정준영이 포토라인에 섰다. 사진=고성준 기자
피의사실 공표 금지로 넘어가면 더욱 참담하다. 어떤 연예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는 불법이지만 피의자가 연예인이면 피의사실이 아닌 연예정보라 공표해도 된다는 슬픈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심지어 연예계에선 관련 문건이 유포되기도 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설리의 사망 동향보고서처럼 연예인 관련 공문서는 아예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확산되기도 한다.
연예인의 피의사실은 그냥 공표되는 수준을 뛰어넘기도 한다. 그 자체로 공표가 금지된 피의사실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부풀려지는 것은 기본, 허위 사실까지 더해 유포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이 반복돼 왔던 터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특정 시기에 연예인 연루 사건사고를 터뜨려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늘 ‘누구의 어떤 의도인지’에 대한 논란만 있을 뿐 연예인의 피의사실 공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따라서 ‘피의자 인권 보호’ 등 중요한 의미를 갖고 시작하는 검찰 개혁이 자칫 연예인에 대한 지나친 취재 경쟁과 대중의 폭발적 관심으로 인해 허물어져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진정한 검찰 개혁 성공을 위해서는 연예인 인권 보호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연예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