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섞여 나온다.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정책이 기대되는 반면, 지나친 경영권 개입으로 인한 경영 위축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더욱이 지난해 7월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안착하면서 일부 기업은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기관투자자가 고객 대리인으로서 기업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행동지침’이다. 큰 저택에서 주인 대신 집안일을 맡아 보는 집사(스튜어드)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의미다.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협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강성부 KCGI 대표는 “학자들 중심으로 포럼 이야기가 나온 것이 와전된 것 같다”며 “주요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사진=KCGI 홈페이지 캡처
행동주의 펀드들의 협회 설립 추진 상황은 일부 언론에서 꽤 구체적으로 언급됐으나, 관계자들은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참여사로 언급된 한 운용사 관계자는 “한국투자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과 KCGI 등이 주축이 돼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우리 회사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참여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주요 참여자로 꼽힌 강성부 KCGI 대표는 “학자들 중심으로 포럼 이야기가 나온 것이 와전된 것 같다”며 “주요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협회의 설립 여부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그간 각개전투를 벌이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단체로 목소리를 내게 되면 일부 기업에는 적잖은 위협이 될 수 있다. 국내 주요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업 승계의 핵심이 되는 계열사나 지주사 격인 회사들에 대해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거나 기업 지배구조에 지적을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2018년 5월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 촉구를 위한 상장회사 호소문’을 발표하고 행동주의 펀드의 과도한 경영 간섭과 경영권 위협을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행동주의 펀드의 활발한 활동이 주주가치 환원과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먹튀’나 ‘공격’으로 간주되던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 지난 1월 10일 신한금융투자의 리포트 ‘행동주의 시대’에서는 이 같은 인식 변화가 잘 드러난다.
신한금융투자 김상호 퀀트 애널리스트는 리포트를 통해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적었던 이유는 기업들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지배구조가 탄탄했기 때문이 아니”라며 “행동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제도적 문제점들로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밝혔다. 또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가치 제고는 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행동주의 투자자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기업들은 낮은 지배주주 지분율을 갖고 높은 FCF yield(잉여현금흐름 비율)와 낮은 배당성향, 피어그룹 대비 낮은 성과 및 밸류에이션의 조건을 만족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리포트에서는 네이버와 대림산업, 컴투스, 현대차, KT, 동국제강, LG상사 등을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한 기업으로 꼽았다.
행동주의 펀드의 긍정적 기능이 조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협회가 설립될 경우 연대를 통해 그간 겪어왔던 주주활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적은 지분율 탓에 주주활동에 한계를 겪었던 일부 행동주의 펀드는 다른 소액주주 및 행동주의 펀드와 연대전략을 펼치는 등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왔다.
협회의 주요 참여사로 언급되는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연대전략을 펼쳐 효과를 본 대표적인 행동주의 펀드다. KISCO홀딩스 지분을 1% 수준으로 보유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 2017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KISCO홀딩스에 수차례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했지만 KISCO홀딩스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소액주주들과 연대에 나서며 KISCO홀딩스의 답변과 면담을 얻어냈고, 주주총회에서는 의결권 대리행사 등을 권유하며 표대결까지 펼쳤다. 또 지난 3월 현대홈쇼핑 주총 당시 달튼인베스트먼트, VIP자산운용 등과 연대해 주주환원정책 등을 요구했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연대전략을 펼쳐 KISCO홀딩스의 답변과 면담을 얻어냈고, 주주총회에서는 의결권 대리행사 등을 권유하며 표대결까지 펼쳤다. 사진=KISCO홀딩스 홈페이지 캡처
적극적인 주주행동주의가 예고되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도 보인다. 대표적인 기업은 대림그룹이다. 대림그룹은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KCGI는 지난 9월 통일과나눔재단으로부터 대림그룹의 지주사격인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32.65%를 인수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해당 지분은 이준용 명예회장이 지난 2016년 그룹 외부 공익재단법인인 통일과나눔에 기부했던 것이다. 통일과나눔 재단은 증여세 부담으로 이를 처분해야했고, KCGI는 공개입찰을 통해 이를 매입했다.
KCGI가 대림코퍼레이션 2대 주주로 오르면서 대림그룹과 KCGI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KCGI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계획을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KCGI가 대림코퍼레이션 상장이나 배당확대 등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더욱이 대림그룹은 최근 대림산업의 외국인 지분율 증가로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림산업 측은 “지배력 우려는 기우일 뿐이고, 외인 지분 확대는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내년 3월 주총에서 이해욱 회장 연임 이슈가 떠오를 경우 경영권 분쟁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
KCGI는 한진칼 총수일가와도 경영권 분쟁을 진행 중이다. KCGI는 2018년 11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 9%를 보유했다고 밝히며 경영참여를 선언했고, 이후 꾸준한 지분 매입으로 보유 지분을 15.98%로 끌어올렸다. 한진칼 공시에 따르면 KCGI는 지난 1월 주주명부열람등사가처분을 신청하며 한진칼 오너일가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이후 지난 8월에는 고 조양호 회장에 대한 퇴직금 등 급여 지급과 조원태 대표이사 회장 선임 과정 등에 대한 검사인 선임을 신청하고, 지난 9월에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한진칼에 대한 KCGI의 공세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로 시들해지는 듯했으나, 최근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로 재점화될 조짐이다. 법원은 지난 8월 KCGI의 검사인 선임 신청에 대해 일부 인용을 결정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KCGI는 한진칼이 조 전 회장에게 지급한 퇴직금 관련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KCGI는 조 전 회장 퇴직금이 승계자금으로 활용됐다고 보는 만큼, 이번에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내년 3월 주총 표대결에서 해당 이슈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최근 반도건설까지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면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지난 10월 8일 한진칼 공시에 따르면 반도건설은 계열사를 통해 한진칼 지분 총 5.06%를 확보했다.
과거 국내 최초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바 있는 태광그룹은 다시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6년 고려대 교수 재임 시절 ‘장하성 펀드’를 통해 태광산업에 지배구조 개선안을 제안하고 대표이사 해임 소송 등을 제기한 바 있다. 또 태광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지난 2018년 3월 주총에서 한국투자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으로부터 배당성향 확대 및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받고 배당성향을 확대했다.
태광그룹은 최근 계열사를 정리하고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마무리했으나 연이은 오너리스크로 바람 잘 날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지난 6월 횡령 및 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 실형을 확정 받았고, 지난 10월 22일에는 시민단체 등에 의해 골프접대 의혹 관련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돼 검찰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혐의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내년 주총에서 또 다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우려에 태광산업 관계자는 “이호진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돼 이번 의혹이 회사와 크게 관련이 없는 데다, (한국투자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때와 같은) 행동주의 펀드 측의 움직임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