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TK’, ‘낙하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김 전 비대위원장의 어정쩡했던 행보가 일단락되자 일찍부터 지역구에서 표밭을 갈아온 같은 당 토종TK 예비주자들은 일제히 반겼다. 빅매치가 사실상 결렬되면서 ‘김빠진’ 선거가 될 것이란 관측이 오는가 하면, 대항마로 나선 한국당 토종TK 주자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21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 출마를 저울질해 왔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 등 험지 출마의 뜻을 밝혔다. 사진=일요신문DB
대구 수성갑 출마를 저울질해 왔던 김병준 전 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19일 대구 출마를 공식적으로 접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한국당이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신 지도부를 포함, 당 안팎에서 권고한 서울지역 험지 출마 등 당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7월 TK징검다리포럼을 시작으로 11월 북콘서트까지 수차례 대구·경북을 오가며 보수재건 역할론을 강조해와 언론을 통해 수성갑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방향을 험지 출마로 돌리면서 김 의원과의 빅매치가 사실상 결렬됐다.
그러자 당장 대구 정치 일번지의 내년 총선 흥행이 시들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하는 반면, 한국당 토종TK의 매운맛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표출되고 있다. 이 같은 기대감은 앞서 두 차례 지역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다.
10월 대구CBS와 영남일보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한 2020년 총선 대구 수성갑 가상대결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한국당 후보들에게 모두 패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과의 양자 가상대결에서는 이 전 구청장이 49.7%로 김 의원의 34.8%를 14.9%p 차이로 앞섰다. 정순천 한국당 수성갑 당협위원장과의 가상대결 역시 정 위원장이 47.9%로 김 의원의 35.9%보다 12.0%p 우세했다.
이진훈 전 대구 수성구청장(왼쪽)이 토크 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순천 한국당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과 문재인 대통령의 사죄를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연합뉴스
험지 출마로 방향을 전환한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가상대결에서는 김 전 비대위원장이 52.1%의 지지율를 얻어 33.2%에 그친 김 의원을 18.9%p 차이로 앞질렀다(대구 수성구갑 선거구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2명 대상, 표본 오차 95%신뢰 수준에 ±4.4%p, 응답률 5.4%,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두 달 앞서 브레이크뉴스가 알앤써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전 구청장은 김 의원과의 양자대결에서 40.7%를 얻어 35.5%를 얻은 김 의원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정 위원장은 36.5%를 얻어 38.1%를 얻은 김 의원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뒤졌지만 두 달 후 여론조사에서 12%p 차로 역전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대구 수성갑 선거구 거주 만 19세 성인 남녀 551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2%p, 응답률 6.7%,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지역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이슈로 진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김 의원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한 것으로 풀이했다. 또 “그동안 (김 의원이) 중앙에 있으면서 TK를 위해 한 것이 뭐가 있느냐”는 지역 주민의 원성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김 의원도 지난 7월 지역기자 오찬에서 내년 총선 준비를 공식화하며 “대구 민심이 어렵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지역구를 돈 후 이제 호흡을 조절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TK홀대론’ 등 생각보다 냉랭한 지역 민심을 감지한 김 의원은 지난 4월 초 고성 산불현장에서 민방위복을 입은 채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넘겨주고 서둘러 지역구로 돌아와 12개 동주민센터를 돌며 바닥 민심을 훑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감도 내비쳤다. 김 의원은 기자와의 자리에서 “대구·경북 민심과 수도권 민심에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내년 총선에 TK 모든 지역구에 민주당 후보를 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같은 자신감은 앞서 있었던 지역 유력 일간지의 여론조사 결과도 한몫했다.
같은 달 매일신문이 창간 73주년을 맞아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한 ‘TK를 이끌어 갈 대표 정치지도자’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은 1위를 차지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은 7위를 차지했다(대구·경북 만 19세 이상 남녀 28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수성갑 탈환을 노리는 한국당 토종TK의 매서운 초반 기세에도 김 의원이 수성(守城)하리란 분석이 나오는 것은 김 의원이 ‘지는 이유도 이기는 법도 아는’ 유연함과 뚝심을 두루 갖춘 정치인이란 점 때문이다. TK에선 초선으로 통하는 김 의원이지만 19대 때 수성갑에서 이한구 전 의원에게 패하기 전까지는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4선 중진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사진=김부겸 의원실
이한구 전 의원에게는 12%p 차로 패했는데, 당시 새누리당이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보수심장에 출마하는 것을 두고 모두 불가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진보정당에게는 험지 중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이곳에서 재도전에 성공했다. 2016년엔 3선 의원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어 승리를 거두는 뚝심을 발휘하면서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지는 이유도 이기는 법도 아는 그다.
20대 때는 야당 후보였지만 지금은 여당 후보란 점도 본선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TK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문재인 정부 초 같지 않은 상황에서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의 험지 출마 선회에 대해 김 의원 측은 최근 지역 언론 등을 통해 “경쟁 후보가 누구인가보다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인정을 받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늘 그랬듯 수성구와 대구·경북의 미래 발전을 위한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총선에 임하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대구=김성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