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8일 차를 맞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1월 27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천막에서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여보, 여보!’
지난 11월 27일 밤 11시. 단식 8일째를 맞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단식 농성 장소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몽골텐트에서 황 대표를 수시로 점검하던 부인 최지영 여사는 깜짝 놀라 대기하던 의료진에게 상황을 알렸다. 의료진은 즉시 구급차를 불렀다. 들것에 실려 가는 황 대표를 쫓아가던 최 여사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신발을 못 찾을 정도로 당황했다.
황 대표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다. 한국당 김도읍 당대표 비서실장, 김명연 수석대변인 등 핵심 당직자들은 이송 과정에 함께 했다. 뒤이어 나경원 원내대표도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의식 불명 소식에 의원들 표정은 급속히 굳어갔다. 다만 황 대표의 건강 상태를 지켜본 의료진들은 “의식은 잃었지만 맥박, 혈압 등 생체활력 징후는 있었다”고 전하며 안심을 시켰다. 이후 2시간쯤 지나 황 대표 의식은 회복됐다.
단식은 이렇게 일단 8일차에서 멈춰 섰다. 입원 다음 날인 28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측에서는 황 대표의 건강 상태를 브리핑하려 했으나 취소했다. 일각에선 상태가 상당 부분 회복했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해석이 일기도 했다.
입원 중 황 대표는 단식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비쳤지만 부인, 아들 등이 “그러다 죽는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28일 단식을 중단했고 미음을 조금씩 섭취하기 시작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건강악화에 따른 가족, 의사의 강권과 당의 만류로 단식을 마쳤다”며 “황 대표는 향후 전개될 공수처법,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저지와 3대 친문농단의 진상규명에 총력 투쟁해 나가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11월 20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철회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를 내세우며 단식을 시작했다. 이 중 지소미아는 ‘조건부 유예’로 목표를 일단 달성했으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법과 공수처법은 아직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이번 단식 자체는 황 대표에게 ‘절반의 성공’을 가져다 줬다는 반응이다. 리더십 위기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단식이라는 초강수로 반전을 이뤄냈다는 분석과, 냉철한 전략이 없고 외연 확장에도 미흡한 ‘강경일변도식’ 투쟁의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이 공존하는 것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1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 중 몸에 불편을 느껴 사랑채 앞 천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하지만 단식에 돌입하자 반발 목소리는 잦아들고, 당내 결속력은 강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사실 단식을 처음 시작할 때는 ‘생뚱맞다’라는 반응이 많았고 측근들 반대도 많았다. 그럼에도 단식이 시작되니까, 일단 내부 총질은 뒤로 하고 대표를 한마음으로 응원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황 대표 성격상 단식을 쉽게 결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를 결정하기 전에 수백 번을 고민하는, 지나치게 신중한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식 시작과 함께 불어 닥친 한파는 극적 효과를 더했다. 황 대표는 초기에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바닥에 스티로폼과 돗자리만 깐 채 앉아서 단식을 하다가 3일 만에 자리에 드러누웠고, 이후 몽골 텐트를 설치해 안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당직자들이 텐트 내부에 난로 등 단열 기구를 넣으려 했으나 황 대표가 거부했다고 한다. 한 측근은 “냉기가 텐트 밖이나 안이나 똑같았다. ‘황제 단식’이라고 얘기했던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찾아와선 ‘이렇게 추운데서 어떻게 있느냐’고 깜짝 놀라더라”고 말했다. 추위에 따라 급격한 체력 약화도 동반됐다. 단식 5일쯤 부터는 신장 기능이 떨어지며 단백뇨 증상(신장에 생긴 건강문제로 소변에 단백질이 나오는 것)이 나타났다.
이 사이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여권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야권에서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통합 파트너인 유 의원과는 첫 직접 대면을 이뤄 보수통합의 기대감을 다시 키우게 했다. 이러한 만남들은 보수 주자로서의 황 대표 존재감을 높이는 효과를 낳게 했다는 평가다.
반면 이번 단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탄력’을 받아야 할 쇄신론이 ‘단식 블랙홀’에 빨려들어 종적을 감췄다는 비판이다. 한 수도권 비박계 의원은 “영남권 중진 용퇴론이 전면에 나오고, 당의 쇄신 바람이 겨우 불었다. 한국당이 여론에 어필할 절호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니냐”며 탄식했다.
단식에 따른 ‘당심’과 일반 여론의 ‘민심’은 차이가 있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당력은 한군데에 모았을지라도, 일반·중도 여론을 붙잡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대안과 전략 없이 장외 농성, 삭발 등 ‘강경 일변도식’ 투쟁에 대한 회의론도 겹쳤다. 또 다른 수도권 초선 의원은 “지금의 한국당은 늘 ‘전시 상태’를 방불케 한다. 태극기 세력(강성우파)들에겐 소구할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이 바라는 정당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지역에 가면 ‘단식을 대체 왜 하느냐’는 말도 듣는데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종교가 기독교인 황 대표와 전광훈 목사와의 관계도 이번 단식 농성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간 두 사람의 친분 관계는 ‘설’로만 가득했다. 하지만 단식 과정에서 전 목사는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황 대표를 만나러온 다른 정치권 인사들이 3~5분가량 텐트에서 머물 때, 전 목사는 40분 이상을 텐트 안에서 자리하기도 했다. 전 목사는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직을 맡는 등 기독교 강성 우파 세력을 이끌고 있다. 한국당 내에선 황 대표가 단식을 통해 전달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전 목사의 개입으로 퇴색될까 우려하는 눈치다. 전 목사가 황 대표의 ‘비선실세’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도 악재 중 하나다.
황 대표가 단식을 일단 멈췄지만 ‘강경 투쟁’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한국당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 수사 논란, 우리들병원의 금융농단을 ‘3종 친문 농단 게이트’로 규정하며 여권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는 필리버스터와 의원직 총사퇴 등이 저지 전략으로 거론되고 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