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지역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우리만 왜…한남3구역 조합원은 부글부글
“원안설계를 보셨더라면 건설사들이 왜 대안설계, 혁신설계를 제안했는지 아실 거다. 원안설계에서는 동과 동 사이가 9m밖에 되지 않아서 건너편 집 안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조합원들이 원안설계를 거부하면서 건설사들이 새로운 설계를 가져온 건데, 지금 상황에서 재입찰해버리면 아무 건설사가 들어와 닭장 같은 아파트를 지어놓고도 ‘정부의 뜻’이라고 하면 그만인 상황이 된다.”
지난 11월 28일 용산구 천복궁교회에서 열린 한남3구역 조합 총회 현장에서 한 조합원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조합원들은 시공사 선정이 불투명해지면서 사업이 지연되는 데다, 설계 조건까지 원안대로 진행하라는 서울시의 입장에 불만이 컸다. 서울시의 설계 원안에 따르면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건축면적 비율)이 42%로 높게 설정돼 건물 간 거리가 좁아 쾌적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앞서의 조합원은 “다른 곳들도 재개발을 하면 수주전이 치열하다. 우리 쪽에서는 과장광고가 문제였다면 문제였지, 건설사에서 조합원들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것도 없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다른 조합원 또한 “왜 하필 한남3구역, 강북에만 이렇게 제재를 가하는지 모르겠다. 그간 강남 재개발은 수주경쟁 논란이 있었어도 잘 진행됐지 않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와 국토부가 점검결과를 알리며 “이번 조치가 불공정 관행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도 정부가 한남3구역에 강하게 목소리를 낸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도제한 및 높은 건폐율이 적용 된 데다, 분양가상한제까지 도입돼 수익성도 크지 않았다는 것. 입찰에 참여했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시는 원안설계를 고집했지만, 조합원들 입장은 다르기 때문에 대안설계를 제시했던 것”이라며 “서울시가 예상외로 강한 목소리를 내면서 건설사들이 당황스러운 측면이 있다. 조합의 결정 전까지 건설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검찰 수사결과 위법 판결이 나오면 건설사 3곳은 각각 2년간 정비사업에 대한 입찰 참가 자격 제한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조합은 이날 총회에서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 입찰제안서 수정과 재입찰 등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받았다. 앞서 지난 26일 정부가 한남3구역 수주전에 참여한 건설 3사에 대한 점검 결과를 알리며 입찰 무효화 방침을 밝히자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 이날 총회에서는 현 조합의 강행 의사를 비판하며 전면 재입찰을 주장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수 조합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의 주장과 달리 위반 사항을 제외한 입찰제안서 수정에 동의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이날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은 12월 초 대의원 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서울시는 같은 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재입찰을 재차 권고했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기획관은 “국토부와 함께 입찰중단 및 재입찰을 조합에 명확하게 권고했다. 깔끔하게 문제를 털고 재입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가 강제할 권한은 없다”면서도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고 입찰을 강행할 때는 추가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합이 3사를 제외한 재입찰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입찰을 강행하게 되면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 혐의로 조합에 대한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으름장에도 조합이 재입찰 수용 여부를 고민하는 까닭은 사업 지연 때문이다. 조합에서는 현재 입찰제안서 수정을 택해도 사업이 지연되지만, 재입찰시에는 시공사 선정 공고부터 시작해 입찰 과정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새롭게 참여하는 건설사들이 설계안을 준비하고, 제안서를 접수 받아 조합이 이를 검토하는 등의 과정만 해도 6개 월가량이 소요된다. 일부 조합원들은 앞서 수주전에 참여한 건설사 세 곳에 대해 강력한 철퇴가 내려진 만큼 새롭게 참여하는 건설사들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시공사 선정 과정 철퇴, 무엇이 문제였나
국토부와 서울시가 한남3구역 재개발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과열 수주전에 강력한 제재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설계변경과 재산상의 이익 제공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건설사들의 제안내용 가운데 20여 건에 대해 도정법 제132조의 ‘그 밖의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사업비 및 이주비 등과 관련한 무이자 지원은 재산상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봤고, 분양가 보장 및 임대주택 제로 등은 시공과 관련 없이 간접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약속한 것이라 판단했다.
재산상 이익 제공 관련 일단 현대건설은 △사업비 무이자 지원 △이주비 금융비용 무이자 지원 및 최저 이주비 보장 △특별품목 보상제 △분양가 보장 △분담금 유예 △금융비용 지원 △임대 후 분양 등을 제시한 내용이 위반사항으로 지적됐다. 현대건설은 LTV(Loan to value ratio, 담보인정비율)의 70%에 가구당 최저 5억 원의 이주비를 보장한 데 이어 30%에 해당하는 추가 이주비를 무이자로 대출해주겠다고 내걸었다.
GS건설의 경우 △사업비 무이자 지원 △이주비 금융비용 무이자 지원 △분양가 보장 △단지 내 공유경제 지원 △혁신설계안 기반시설비 무상제공 △특별 제공품목 이주 시 선지급(마이너스 옵션) △역신설 타당성 조사 △임대 후 분양 등이 위반 사항으로 지적됐다. GS건설은 이주비 LTV 90% 수준 이주비 대출을 보장했고, 분양가 상한제 미적용시 일반 분양가를 3.3㎡당 7200만 원 확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림산업은 △사업비 무이자 지원 △이주비 금융비용 무이자 지원 △특별 제공품목 마이너스 옵션제 △임대주택 제로를 약속해 위반 사항으로 지적됐다. ‘임대주택 제로’의 경우 자회사로 임대아파트를 사들인 뒤 8년 후 분양 전환하는 방식으로 임대가구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건설사가 무이자로 이주비 대출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하다. 국토부의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30조 ‘건설업자등의 금품 등 제공 금지’ 3항에 따르면 ‘건설업자등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하는 금리 수준으로 추가 이주비를 사업시행자 등에 대여하는 것을 제안’할 수 있다. 다만 재건축사업은 제외된다. 더욱이 정부는 2017년 8·2 대책을 통해 서울 전약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LTV를 기존 60%에서 40%로 축소한 바 있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건설사의 ‘혁신설계안’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수주과열을 초래한 데다,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보 주택기획관은 한남3구역 입찰 건설사들의 혁신설계에 대해 “과거 지적됐던 특화설계가 혁신설계라는 이름으로 다시 들어온 것인데, 이것은 없어져야 한다”며 “10% 경미한 변경을 통해 시공 품질 개선으로 단가를 조정하거나, 시공사가 더 돈을 들여 퀄리티를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룰을 지키면 된다”고 설명했다. 현 건설사들이 제시한 혁신설계안이 과장‧허위광고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 제9조 및 형법 제315조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
혁신설계안에 대해서는 GS건설과 대림산업이 입찰제안서에 혁신설계안을 포함해 제출해 지적을 받았다. GS건설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단지 전면에 테라스를 배치한 유럽형 아파트, 전망대 등을 적용한 특화설계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197개동을 97개동으로 변경하고, 최고층수를 22층에서 29층으로 높였다. 또 조합에 조합원 전원이 한강 조망세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대림산업은 입찰제안서에 혁신설계안 두 건을 포함해 제출하고, 한강 조망권 가구 수를 기존 1038가구에서 2566가구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남3구역에 대한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의 조합 비리는 꾸준히 이어져왔기 때문에 국토부가 칼을 빼든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비리가 드러났고, 검찰에 고발까지 한 이상 국토부 또한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재건축 시장까지 강력한 규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면, 재건축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주택 공급 부족을 심화시켜 기존 주택 시장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대중 교수는 “한남3구역의 경우 12월 29일 이전에 분양승인을 받지 못하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중장기적으로 사업이 연기되거나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부가 향후 재개발‧재건축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접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16년 숙원사업” 한남3구역 재개발 뭐길래 사업 지연 위기를 맞이한 ‘한남3구역’은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내 5개 구역 가운데 한 구역이다. 한남동 686번지 일대 38만 6395.5㎡ 규모 부지에 공동주택 197개동, 5816가구를 건설하는 정비사업이다. 공사비만 2조 원, 사업비는 7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강북권 재건축 ‘최대어’로 꼽혔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는 지난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2009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한남3구역은 2012년 조합설립인가, 2017년 서울시 건축심의 통과로 일대에서 가장 빠르게 사업시행인가를 얻었다. 한남3구역이 인가를 받았던 지난 3월 29일에도 나머지 2, 4, 5구역은 서울시와 정비계획 변경안을 협의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빠르게 사업이 진행됐다 하더라도, 용산구와 주민들에게 한남3구역 재개발은 ‘숙원’이었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 16년이 지난 뒤에야 재개발이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용산구는 지난 4월 1일 사업시행 인가 소식을 알리며 “보름여 간 주민공람을 마치고 한남3구역 사업시행인가를 최종 승인했다”며 “나머지 2, 4, 5구역에 대해서도 조속한 시일 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수주전 과열양상에 예상치 못한 제재를 가하면서 용산구의 ‘숙원’ 해결은 불투명해졌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