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최근 사면설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된 것은 두 건의 파기환송심이 최근 병합됐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사건 파기환송심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을 한 재판부에 병합해서 진행키로 결정했다. 아직 본격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미 대법원에서 유무죄를 다 판단해서 내려 보낸 점과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응하고 있지 않아 별다른 심리가 필요 없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빠른 진행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변수가 남아 있다면 여전히 파기환송심에서 다투고 있는 공범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다.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할 당시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고성준 기자
#파기환송심 병합의 의미
2019년 1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사건 파기환송심을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에서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로 재배당했다. 그 뒤 기존 형사6부에 배당돼 있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병합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진행 중인 2개의 파기환송심은 함께 선고가 내려지게 됐다.
바로 거론된 것은 양형이다. 통상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면 양형이 줄어든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도, 롯데그룹의 각종 횡령·배임 범죄 사건과 국정농단 뇌물 사건의 병합을 통해 집행유예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서로 다른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면 박 전 대통령에게 형이 따로따로 선고돼 형이 무거워질 수 있는 것을 막았다는 추론이다.
박 전 대통령은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국정농단 사건 2심에서 징역 25년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에선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는 2018년 유죄가 확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모두 32년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내려 보냈기 때문에 양형은 오히려 늘어날 확률이 높다. 병합된 두 사건 모두 ‘뇌물 분리선고’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등 공직자가 재임 중 뇌물 혐의로 기소됐을 경우 다른 범죄 혐의와 구분해, 양형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2심을 파기 환송한 것도 뇌물 분리선고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국정원 특활비 사건 역시 파기환송하면서 뇌물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만큼, 2개의 별도 양형이 생기며 나머지 2건이 합쳐지는 구조라 파기 환송심에서 양형이 증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법원 관계자들은 박 전 대통령 사건은 ‘양형’이 관건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정치적인 사건이라 ‘양형은 별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현재 받은 징역을 다 채우려면 정권이 4~5번 이상 바뀌어야 하는데 고령과 건강까지 감안할 때 실제 형을 다 살겠느냐”며 “결국 문재인 정부가 언제 사면을 하느냐가 관건이기에 양형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강남성모병원 앞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 천막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사면설 나오는 이유 많지만…
2월 사면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대목은 파기환송심 병합이다. 이제 한 재판부의 판단만 받으면 끝난다. 게다가 대법원이 이미 유무죄를 가늠해 줬다. 대법원이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을 ‘유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지 않을 경우 검찰이 재항고할 가능성은 낮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부터 일절 재판을 거부하고 있어 다툴 여지도 없다. 재판부가 마음만 먹으면 1~2회 심리로 곧바로 결심 공판과 선고 공판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통상 공판준비기일과 1주 간격으로 열리는 심리를 감안할 때 빠르면 1월 초에도 결심 공판이 가능하다. 결심 공판 후 한 달 내외로 선고 일정을 잡는 점을 고려하면 2월 사면설이 완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추론이다. 게다가 법원은 2월 인사를 앞두고 있어, 인사 전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우리공화당 등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주장하는 이들은 박 전 대통령 건강도 언급한다. 올해 두 번의 형집행정지 처분 신청을 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대신 법무부는 어깨 관절 부위의 회전근개 근육이 파열돼 수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9월 16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조치하고 어깨 수술과 함께 73일간 입원치료를 받게 하기도 했다. 2월 사면설은 보수 세력 정치인들이 박 전 대통령을 언급할 때마다 조금씩 확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섣부른 정치권의 희망사항”이라는 게 판사들 대다수의 진단이다. 일정이 너무 빠듯하고 사건의 양이 방대하다는 설명이다. 정치사건 경험이 많은 한 판사는 “이렇게 양이 방대한 사건의 경우 자료를 검토하고 재판부끼리 의견을 나누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며 “판결문을 쓰는 것만 해도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데 재판부가 사면까지 고려해 재판을 빨리 진행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맡은 재판장과 담당판사가 이번 인사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가능성을 낮추는 대목이다. 오석준 부장판사는 지난 2월부터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를 맡고 있는데 보통 법원은 2년 동안 한 보직을 유지한다. 대법원 실·국장으로 가는 인사가 아니고는 이번 인사에 해당되지 않아 억지로 2월 전에 재판을 끝낼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사건 주심판사도 이번 인사에 해당하지 않는 1년째여서 3~4월 즈음에 재판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분석이 법원 내에서 지배적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는 최서원 씨. 사진=최준필 기자
#같은 재판부서 다투는 공범 최서원도 변수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서원 씨의 재판 또한 박 전 대통령에게는 불리하다. 최 씨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곳도 서울고법 형사6부. 공범(박 전 대통령과 최 씨)에 대해 하나의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씨는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잘못된 사실 관계 판단이 있었다며 다투고 있다. 증인으로 박 전 대통령, 최 씨의 딸 정유라 씨, 손석희 JTBC 사장 등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가 재판부가 거절해 이뤄지지 않기도 했다. 그러자 최 씨는 12월 18일 열린 파기환송심 두 번째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인사를 도운 것이고, 어떤 기업도 알지 못했다고 하늘에 맹세할 수 있다”고 호소했고, 최 씨 측 변호인은 “뇌물 사건에서도 뇌물을 받은 사람이 없고, 뇌물을 제공한 측 또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이익도 받은 바가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앞선 법원 고위 관계자는 “하나의 사건의 경우 비슷한 시점에 하나의 판단을 하는 게 가장 좋고, 그를 위해 최서원 씨 재판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물려 박 전 대통령 공판도 마무리 짓고 결심을 진행할 것”이라며 언급했다. 최 씨는 2020년 1월 22일 결심공판이 열리는데, 사건 성격 상 공범인 최 씨 재판을 먼저 마무리 짓고 박 전 대통령 결심 등을 진행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환한 객원기자
이석기 사면설에…“정치적 부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힘들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사면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세 번째 특별사면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사범 중심으로 특별사면 대상자를 파악하라고 공문을 내려보냈다. 법무부는 2019년 10월 말, 일선 검찰청에 특사 대상자 파악을 지시했는데, 국보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사범이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말 용산참사 피해자 25명 등 6444명을 사면·감형했고, 2019년에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시위·밀양송전탑 반대 등 7개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 107명 등을 포함해 4378명을 특별사면 했지만 정치인을 사면한 적은 없다.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에 참석한 이석기 전 의원.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공문에 공직선거법 등이 포함되면서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에 대한 사면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5년 1월 징역 9년형이 확정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사면 주장도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거론되지만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법무부 흐름에 밝은 한 관계자는 “사면 카드를 선택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오히려 이석기 전 의원 석방과 같은 카드는 박 전 대통령과 시점을 맞출 수도 있다는 추론도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되면 우리공화당에 힘이 실려서 자유한국당이 오히려 불리해질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 사면 시점은 결국 법원 형 확정 뒤 여당과 청와대가 불리한 시점에 자유한국당 힘을 빼는 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