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극 ‘스토브리그’에서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 분)이 안하무인 선수를 향해 던진 이 한 마디는 유행어가 됐다. 2019년 12월 5.5%로 시작한 이 드라마의 전국 시청률은 1월 17일 기준 17.0%(닐슨코리아 기준). 넘치는 재미에 매번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선을 넘고’ 있는 셈이다.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한다)들도 한 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이 드라마가 가진 마성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2019년 12월 5.5%로 시작한 ‘스토브리그’는 매번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1월 17일 17.0%를 찍었다.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한다)들도 한 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드라마로 호평받고 있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홈페이지
#스포츠 드라마는 망한다? NO!
스포츠는 통상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린다. 8회까지 끌려가던 팀이 9회말 2아웃에서 역전 홈런을 때려 승부를 뒤집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너무 극적이기 때문에 각본 있는 드라마와 영화를 이렇게 쓴다면 오히려 대중은 “비현실적이다”고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스포츠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 경기보다 재미있게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브리그’는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非) 시즌에 꼴찌 프로야구단을 재건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비리 혐의가 적발된 스태프를 방출시키고, 붙박이 4번 타자 임동규(조한선 분) 역시 팀 분위기를 저해하고 팀 성적 기여도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트레이드한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고, 파벌 싸움이 심각한 코치진을 정돈하며 30% 삭감된 연봉 총액에 맞춰서 선수들과 협상을 진행한다.
매회 쫀쫀한 스토리와 끊이지 않는 사건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토브리그’는 과연 현실 속 스토브리그와 얼마나 닮았을까? 이에 대해 실제 프로야구단 프런트들은 “60∼70%는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이 팀을 강화하기 위해 밟아나가는 과정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디테일한 내용에서는 다소 차이가 난다.
극 중 국내 프로야구 최초 여성 운영팀장 이세영은 아직 현실에서는 요원한 존재다. 물론 향후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판타지에 가깝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홈페이지
예를 들어, ‘스토브리그’처럼 국내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귀화해서 메이저리거가 된 길창주(이용우 분)를 외국인 선수로 다시 영입하는 것은 절차 상, 국적 상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개인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귀화해 군복무를 기피한 인물을 다시 국내 리그에서 뛰게 한다는 것은 국내 정서상 불가능에 가깝다.
총 연봉을 전년 대비 30% 삭감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히 직전 시즌의 성적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겠지만, 전체 연봉 규모를 30%나 줄인다는 것은 선수단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똑 부러지는 일처리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세영이라는 운영팀장도 아직 현실에서는 요원한 존재다. 극 중 그는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여성 운영팀장.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성 운영팀장이 등장한 전례가 없다. 물론 향후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상황으로 볼 때는 판타지에 가깝다.
귀화한 메이저리거 길창주(이용우 분)를 외국인 선수로 영입하는 것은 절차 상, 국적 상 문제가 없지만 군복무 기피 인물을 KBO 리그에서 뛰게 한다는 것은 국내 정서상 불가능에 가깝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홈페이지
반면 야구 경력이 전무한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이 부임한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극 중 백승수는 “선수 출신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무시와 질시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 프로야구단장 중 야구인 출신이 아닌 경우는 있다. 야구단 운영 역시 큰 틀 안에서는 ‘기업 경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문 경영인이 단장으로 부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디테일한 대본은 신인 이신화 작가의 치밀한 취재와 고증을 통해 완성됐다. 이 작가는 지난 2016년 하반기 MBC 극본 공모에서 이 드라마의 시놉시스로 우수상을 탔다. 이후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등 프로야구단의 자문을 받으며 대본을 살찌웠다.
#이 시대가 바라는 리더, 백승수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압니다.”
백승수 단장의 자리는 위태롭다. 위에서 쪼고, 아래에서 치받는다. 하지만 그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할 말은 다 하며, 이성과 합리로 답한다. 부당한 일을 시키는 구단주 대행 권경민 상무(오정세 분)에게 백 단장은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압니다. 뭐 그럴 필요는 없지만 자랑스러워하는 꼴은 보기 좀 민망하죠”라고 꼬집는다. 모기업 회장의 조카로서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는 권 상무를 비꼰 것이다. 이 한마디는 애매한 위치에서 갑질과 을질을 오가는 권 상무의 정체성을 크게 흔든다.
“야구를 몰라서 책으로 배우는 게 창피한 게 아니라, 1년이 지나도 야구를 모르는 게 창피한 겁니다.”
오랜 기간 야구단을 지킨 이들은 백 단장을 향해 “야구를 모른다”고 타박한다. 그는 솔직하게 이를 인정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야구를 알아가겠다고 말한다.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WPA(승리확률기여도) 등 정교한 통계수치를 통해 야구를 분석하는 세이버매트릭스를 바탕으로 팀에 대한 통찰력 있는 대안을 내놓는 백 단장을 보며 직원들은 혀를 내두른다.
촌철살인 멘트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키는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은 자기 몸과 자리를 지키는 데 연연하지 않고 솔선수범해 조직을 바꿔나가려는 리더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홈페이지
“누가 누굴 돕습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남들만큼만 해주세요.”
이세영 운영팀장은 백 단장의 든든한 조력자다. 가끔은 백 단장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운영팀장으로서 반기를 들기보다는 곁을 지키며 백 단장에게 힘들 실어준다. 백 단장은 “누가 누굴 돕습니까?”라며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 또한 “저를 못 믿으세요?”라는 이 팀장의 질문에는 “믿음으로 일하는 거 아닙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힘든 일을 잘 해결한 뒤 백 단장은 “제가 표현이 인색한 편인가요?”라고 묻곤 “믿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해 이 팀장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숱한 걸림돌 앞에서도 백 단장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항상 험로를 택한다. 드림즈의 스타 선수 출신으로 후배들의 지지를 얻던 스카우트팀장의 비리를 밝혀내고, 과감하게 선수단을 정리한다. 그를 지켜보던 감독이 “임동규도 그렇고, 단장님은 가장 단단하게 박힌 돌만 건드리네요”라고 말하자, 백 단장은 “박힌 돌이 이끼가 더 많을 겁니다”라고 답한다.
이 외에도 백 단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쳐야죠. 안 고치면 다시는 소 못 키웁니다”,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지게 됩니다” 등 촌철살인 멘트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 자기 몸과 자리를 지키는 데 연연하지 않고 솔선수범해 조직을 바꿔나가려는 리더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