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2월 10일 28번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6일 동안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코로나19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2월 16일 29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해외 여행력이 없고 기존 확진자와 접촉도 확인되지 않은 지역사회 감염자로 보이는 첫 사례였다. 하루 뒤에는 29번 확진자의 아내가 30번째 확진자로 확인됐다. 그리고 다시 하루 뒤인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등장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매일 수십 명 이상의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 신천지 대구교회 인근에서 남구청 보건소 관계자들이 방역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우선 중요한 현안은 31번 확진자가 슈퍼전파자(Special One)인지 여부다. 그렇다면 31번 확진자를 중심으로 방역 계획을 세우면 된다. 반면 아직 슈퍼전파자는 드러나지 않았고 31번 확진자 역시 슈퍼전파자에게 전염된 한 명(One of Them)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재 방역당국은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슈퍼전파가 이뤄졌다는 사실만을 토대로 방역 계획을 세우고 있다.
2월 20일 정은경 중대본 본부장은 정례브리핑에서 “31번 환자의 발병일을 7일 아니면 10일로 보고 있는데 전체 신천지 관련 환자의 발병일을 분석하면 이 환자가 초반(에 감염된) 환자라고 보기 어렵다”며 “유사 시기에 발병한 환자들이 몇 명 더 있어 이들이 어딘가에서 공동 노출됐고, 이 사람들이 9일과 16일 예배를 통해 2차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가정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31번 확진자가 ‘One of Them’이라면 전국 각지에 분포해 있는 신천지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신천지와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 우한의 연관성까지 드러났다. 2019년 신천지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해외 교회를 설립한 것. 이는 신천지 홈페이지 연혁에 공식적으로 기록돼 있다. 중국 우한의 신천지 교회를 오고간 사람을 통해 신천지 내부에 코로나19 감염이 시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은경 본부장 역시 “감염원 발병 지역으로 분류된 중국 후베이성 등에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신천지를 통해 우한과 대구, 청도를 잇는 ‘코로나19 로드’가 실재할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로드’가 전국 각지 신천지 교회로 이어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1번 확진자 둘러싼 의혹
세간의 관심이 31번 확진자에게 쏠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동선이 매우 복잡하다. 31번 확진자는 1월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의 C 클럽 본사 세미나에 참석했으며 2월 초에는 경북 청도를 방문했다. 6일에는 직장인 C 클럽 대구 지점에 출근했고 7일부터 17일까지 새로난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기간인 9일과 16일에는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했다. 15일에는 퀸벨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에도 갔다.
게다가 31번 확진자는 동선 정보 공개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청도를 방문한 사실은 다른 동선보다 이틀 늦은 2월 20일에야 공개됐는데 청도에서의 구체적인 동선은 아직도 물음표다. 드러나지 않은 추가 동선이 존재할 수도 있다.
CBS 노컷뉴스는 신천지 탈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31번 확진자가 신천지 평신도가 아닌 중간관리자급 이상의 간부, 또는 고위층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근거는 그가 모바일상품권 회사인 C 클럽 직원이라는 점이다. 신천지에서 포교 활동비 개념으로 쓰이는 모바일상품권 관련 회사를 다닌다는 얘기는 31번 확진자가 직업까지 신천지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을 만큼 평신도보다는 더 깊게 연관된 인물이라는 게 신천지 탈퇴자의 설명이다. 실제 31번 확진자가 간부 내지는 고위층 인사라면 최대한 동선을 안 밝히려고 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구, 청도, 우한, 그리고 신천지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추세는 대구에서 경북 일대로 확대됐다. 그 여파는 경남과 제주 등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경북 청도가 눈길을 끈다. 특히 청도 대남병원에서만 확진자가 16명이나 나왔고 국내 최초의 코로나19 사망자도 나왔다.
대남병원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것은 2월 19일이다. 대남병원 입원 환자 2명이 확진자로 확인됐는데 이들은 한 달 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고 외부 면회도 없었다. 사실상 병원에 격리돼 있던 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터라 미스터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곧 대남병원과 신천지의 접점이 드러났고 31번 확진자의 방문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도에 있는 이만희 총회장 친형의 묘. 사진=연합뉴스
청도는 ‘빛의 성지’라고 불리는 신천지의 성지다. 청도 풍각면 현리리가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의 고향으로 그의 숙소 ‘만남의 쉼터’가 있고 그 너머에 이 총회장 양친이 묻혀 있는 선산이 있다. 이런 까닭에 많은 신천지 신도들이 청도를 찾곤 한다. 게다가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청도 대남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총회장 친형의 장례식이 있었다. 2월 21일 오후 4시 기준 128명의 확진자가 나온 신천지와 16명의 확진자가 나온 대남병원 사이에 연관성이 제기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31번 확진자는 2월 2일 청도를 찾았다. 18일에 발표된 동선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고 질병관리본부가 31번 확진자의 휴대전화 GPS를 조사해서 알게 된 동선이다. 이에 신천지 측은 “31번 확진자가 지인과 함께 2일 청도의 한 찜질방에 들렀으며 이후 대구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31번 확진자가 동선 파악에 협조하지 않고 있는 까닭에 정말 청도의 찜질방에만 방문한 것인지 이 총회장 친형 장례식장이 있는 대남병원에도 방문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결국 31번 확진자의 대남병원 방문 여부 확인을 위해 청도군과 방역당국은 청도경찰서에 대남병원장례식장 CCTV에 대한 조사를 공식 요청했다.
#불에 부은 기름이 된 이단 논란
‘신천지’라는 키워드가 갖는 화제성이 워낙 컸다. 신천지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비롯한 다수의 기독교 교단과 오랜 기간 이단 논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이런 화제성은 결국 다양한 가짜뉴스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흐름에 대해 신천지는 공식입장을 통해 감염 사태 해결보다 신천지 비방에 집중되는 여론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언론이 신천지 신도들이 바닥에 밀착해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게 ‘코로나 감염의 주범’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 신천지 측은 “신천지라는 이유로 당연히 받아야 할 건축허가도 받지 못해 좁은 공간에서 수용인원을 최대화하기 위해 바닥에 앉아 예배드리는 현실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신천지 신도라는 사실을 주위에 숨긴다거나 신천지 교인들이 폐쇄적이라는 등의 보도에 대해서는 ‘단지 신천지 성도라는 이유로 젊은이와 부녀자를 납치·감금·폭행하는 것을 넘어 살인까지 저지른 강제개종의 주동자들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보건당국의 지침에 따라 철저한 조사와 진단이 이뤄질 수 있게 하고, 진단 및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입원 및 자가 치료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방역당국이 여전히 31번 확진자를 비롯한 신천지 확진자들의 동선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31번 확진자의 예배 동석자 가운데 400여 명은 아예 연락 두절 상태다. 신천지 측의 공식 입장과 달리 대구 신천지 신도들은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감염보다 ‘신밍아웃’(신천지+커밍아웃)이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신천지는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방역당국에 협조하라”며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면 감당 못할 후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을 정도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