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파출소가 위치해 있던 꿈나무소공원을 두고 논란이 크다. 용산구는 이촌파출소를 폐쇄하면서까지 공원을 지키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이마저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애초 용산구는 이촌파출소 현 위치 존치를 약속해왔다. 하지만 이촌파출소를 존치하면 소공원을 포기해야 하고, 소공원을 유지하면 이촌파출소를 폐쇄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자 후자를 택했다.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개발해 잇속을 챙기려는 토지주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용산구가 이촌파출소 존치가 어렵다는 걸 알았음에도 최근까지 존치를 공언해 온 정황이 나와 주민 반발을 사기도 했다(관련기사 돈 문제가 아니었다? ‘고승덕 땅’ 위 이촌파출소 폐쇄의 진실).
이촌파출소가 위치한 ‘꿈나무소공원’ 땅은 현재 고승덕 변호사의 아내가 대표로 있는 유한회사 마켓데이 소유다. ‘고승덕 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땅은 공원일몰제 실시로 오는 7월 1일부터 공원용도 설정이 해제된다. 이에 마켓데이는 꿈나무소공원 개발을 허용해준다면 파출소를 신축으로 지어 기부채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용산구는 이를 거절했다.
용산구는 대신 이촌파출소가 포함된 꿈나무소공원 땅을 수용 보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파출소와 소공원 모두 지키겠다는 생각이었지만 현행법에 부딪혔다. 용산구가 공원 용도로 문제의 땅을 수용한다면 ‘소공원에 파출소가 있을 수 없다’는 공원녹지법 시행령에 따라 파출소는 폐쇄될 수밖에 없었다. 용산구는 결국 파출소 존치를 포기하고 문제의 땅을 공원으로 강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용산경찰서는 이에 따라 이촌파출소를 폐쇄하고 인근 이촌1동주민센터에 4월 28일 사상 첫 ‘거점형 치안센터’를 열었다.
#240억 원으론 턱없다?
용산구는 특단의 강수를 뒀지만 공원 강제 수용 보상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용산구가 240억 원의 토지 수용 보상 예산을 책정할 당시 ‘고승덕 땅’을 대지가 아닌 공원으로 감정 평가한 것이 발목을 잡는다. 부동산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공익사업법)에 따라 공원이 아닌 대지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대지로 다시 감정평가된다면 문제의 땅은 240억 원보다 최소 2~3배는 비쌀 전망이다. 주변 땅 시세를 따진다면 최대 700억~800억 원에 달할 수도 있다. 240억 원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폐쇄된 이촌파출소. 사진=박현광 기자
‘고승덕 땅’이라고 불리는 땅은 꿈나무소공원(1412m²)과 이촌소공원(1736m²) 두 필지다. 두 필지 모두 오는 7월 1일 공원용도 설정이 해제된다. 공익사업법 시행규칙 23조엔 ‘그 공법상 제한이 당해 공익사업의 시행을 목적으로 하여 가하여진 경우에는 제한이 없는 상태를 상정하여 평가한다’고 돼 있다. 이 법에 따라 ‘고승덕 땅’은 공원 설정이 해제된 상태로 평가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토지감정평가사는 “‘고승덕 땅’이라고 불리는 두 필지는 공원일몰제로 제한이 풀리는 도시공원이다. 공익사업법에 따라 공원이 아닌 대지로 보고 감정평가하는 게 맞다”며 “당장 명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이촌1동이 부촌이고 주변 시세를 고려하면 240억 원보다는 훨씬 비쌀 것”이라고 전했다.
용산구가 애초에 ‘고승덕 땅’을 공원이 아닌 대지로 평가해 보상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있다. 용산구는 구의회 예산을 확보하기 전인 2018년 9월 토지감정평가 업체 두 곳에 ‘고승덕 땅’ 탁상감정을 의뢰하기도 했는데, 이때도 토지를 대지가 아닌 공원으로 설정해 평가해달라고 의뢰했다고 전해진다.
토지감정평가 A 업체와 B 업체는 평가서에 “귀청과 협의한 대로 공법상 제한을 받는 시설이 완료된 공공용지(공원 등)로 탁상감정했으니 유의 바란다”며 “감정평가액과 가격 차이가 클 수 있으므로 필히 유의 바란다”고 썼다. ‘고승덕 땅’ 두 필지에 대한 A 업체와 B 업체의 평균 탁상감정 평가액은 160억 3500만 원이었다.
용산경찰서는 이촌파출소를 폐쇄하고 인근 이촌1동주민센터에 사상 첫 거점형 치안센터를 열었다. 사진=박현광 기자
용산구는 탁상감정 평가액보다 80억 원 많은 240억 원을 산정해 2018년 12월 4일 구의회를 거쳐 예산을 확보했다. 서울시 공원 용지 보상지침에 따라 공시지가의 3배를 적용한 결과다. 결국 ‘고승덕 땅’을 대지가 아닌 공원으로 감정평가해 강제 수용 보상하겠다는 말이었다.
240억 원에 강제 수용 보상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진숙 미래통합당 용산구의원은 “용산구가 240억 원에 강제 수용 보상한다면 마켓데이가 추후 행정소송으로 제값을 받아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음 구의회의 구 살림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제대로 된 감정평가를 받으면 700억~800억 원 정도 예상되는데 공원을 유지하는 데에 그 정도 예산을 들이는 게 타당한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관련 지적을 들은 바 없다. 전혀 모르고 있던 사안”이라며 “예정대로 강제 수용 보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기 잘못” vs “나와 무관”
고승덕 변호사를 향한 비판도 있다. 이번 21대 총선 용산구 지역구에서 ‘이촌파출소 존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권영세 미래통합당 당선자는 “법을 떠나서 이제까지 공원이었고, 앞으로도 공원일 땅을 대지로 평가해 수용 보상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고승덕 변호사를 두고 “공직자라는 사람이 공원을 투기 목적으로 산 뒤 높은 차액을 요구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많은 이익을 챙겼으니 양보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고승덕 변호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촌파출소 존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용산구에서 당선된 권영세 국회의원 당선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공직자로서 땅 투기는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어 권 당선자는 이촌파출소 존치 공약에 관해선 “임기가 시작하는 4월 30일 이전에 이미 이촌파출소가 폐쇄됐다. 이제 떠나는 걸 막을 순 없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겠다”며 “공원녹지법 시행령을 개정해 소공원 안에 파출소가 위치할 수 있게 한 뒤 용산경찰서에 파출소가 다시 이전해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실제로 고승덕 변호사 아내가 대표로 있는 마켓데이는 문제의 땅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마켓데이는 2007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게 42억여 원을 주고 문제의 땅 두 필지를 샀다. 이후 마켓데이는 용산구를 상대로 낸 ‘공원 사용 부당 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해 18억 원을 보상받았다. 또 2019년 4월 29일엔 용산경찰서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매월 1650만 원의 이촌파출소 임대료를 1년 동안 받아왔다. 무엇보다 13년 만에 땅값이 최대 20배가량 올랐다. 42억여 원을 주고 산 땅이 현재 최대 700억~800억 원으로 평가된다.
고승덕 변호사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문제의 땅은 내 개인의 땅이 아니다. 나는 마켓데이의 변호를 맡고 있을 뿐 사실 마켓데이와 나는 전혀 관계가 없다. 2007년 당시 마켓데이가 땅을 살 당시 전혀 개입하지도 않았다. 문제의 땅이 ‘고승덕 땅’이라고 불리는 것도 맞지 않다. 아내가 마켓데이 대표가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라며 “땅을 살 때 위법이 없었고, 자연적으로 오른 땅값을 두고 토지주에게 차액을 용산구에 넘기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고 변호사는 “청소년 쉼터 협의회 활동을 7년 동안 해오고 있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토지의 차액을 용산구에 넘기기보단 마켓데이 차원에서 사회 환원에 힘쓸 수 있도록 마켓데이에 설득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